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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Nov 13. 2019

나 8

건강했던 눈물









 두 번은 없을 내 인생에 오늘이라는 날은 나도 손주처럼 처음이다. 며느리라는 이름도 처음이었고, 엄마라는 이름도, 할머니란 이름도 처음이었다. 어느 것 하나 연습하고 만난 것은 없었다. 마치 연습하고 만나는 것처럼 밀려오는 밀물을 당연한 듯 그냥  몸으로 받아들이고 세 가지의 이름표를 감당하며 살아갔다. 어느 때부터인지는 딱 꼬집어 얘기할 수는 없지만 예순을 넘기면서 아주 조금씩 마음이 흔들렸다.  손주랑 똑같이 맞이하는 하루지만  손주하고 다른 것은 꼴까닥 넘어가는 해를 보며  가슴 시리도록 아쉽고, 낙엽이 노란색으로 짙어질수록 왠지 호젓했다. 사랑할 때 헤어짐이 아쉬워 버스 창가에 서로가 손을 마주치며, 떠나는 버스를 절절히 쳐다보는 연인들처럼  세월이 너무 빠르다는 것을 눈치와 피부로 알아버린 나이가 도래했음을 짐작해했다. 지난 시간들이 아쉬워  옛날 사진을  꺼내놓고  연연하는 짓을 하는 걸 보면 더더욱 그렇다. 스치며 지나갔던 인연들도 생각나고, 고래 힘줄보다 질긴 인연들도 생각난다. 하지만 내  머릿속 노트에는  들싸매고 누워서 엉엉 울던 젊은 새댁이 나를 괴롭게 한다.  모질게 대했던 시댁 식구들이 미워할 수도 원망할 수도 없는 가족으로 남아있고, 한 번에 연습만 있었어도 이렇게는 살지 않았을 것 같은  생각 때문에 후회라는 바보짓도 종종 한다. 


  매일 해가 뜰 거라는 착각 속에 속절없이 보낸 내가 내 앞에서 서있다. 지긋지긋하게 시간이 안 갔다. 매일 똑같은 삶이 너무 힘들어서 이불을 머리 위까지 뒤집어쓰고 누웠었다. 원망 거리가 없으면 아이 날 때 고통스러운 것까지 데려와 놀았다. 내 마음과 똑같을 거라는 착각은 세상이 온통 거짓에 놀아나는 노름판 같았다."하늘이 노란색으로 보여야  애가 나온다"라는 말 역시 거짓말이었다. 노란색이 뭔 노란색. 똥 색도 아니고. 설사할 때 아픈 배일까? 상상도 해보기도 하고,  급체했을 때 장이 꼬여 힘든 배일까? 상상도 했다. 노란색을 상상하며  애를 낳고 알았다. 노란색이 어떤 색인 줄. 형용할 수 없는 색이었다. 지금 누군가 나에게 애날 때 얼마나 아프냐고 물어보면  죽을 만큼은 너무 잔인해서 하늘에 별들이 내 눈앞에서 왔다 갔다 보이면  아이가 나온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나만에 노란색은 각각 차이는 있겠지만 고통은 온전히 내 몫이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늘 힘들다고 징징댔다.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흘린 눈물도, 세상에 왜 슬픔이라는 것이 있냐고 흘렸던 눈물도 기쁨보다는 훨씬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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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단법석 같은 마음을 잠재울 방법으로  스스로 처방전을 내린 건. 하루를 익히고, 살아가기 바쁜 작년 겨울 어느 날. 느닷없이 글을 쓰면서부터였다.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로 뜻밖에 일인데 나는 스스로 찾았다. 영원할 것 같은 체력도 바닥이 슬슬 드러나고 변화하는 날씨에도 코를 훌쩍이며 평생 앓어본 적이 없는 독감이 찾아왔다. 반찬 가짓수가 줄어들고 아이들이 떠난 빈 공간에 무엇으로는 채워야겠다고 허둥대는 내가 보였다. 오지 못할 다리를 건너는 이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며 동창생들은 아프다고 아우성이고. 형제 들고 슬슬 병들을 끼고 살아간다. 벗은 옷 그대로 남긴 채 돌아가신 시어머니 친정엄마가 더도 아닌 내 나이였다는 사실이  도드라지게 돌출되어서 내 앞에 서있고, 불안해하는 눈빛도 안경으로는 감출 수 없었다. 죽음과 병 앞에 장사가 있겠냐마는 괜찮다고 보듬어줄 사람을 찾았으나 온통 내 사랑만 바라보는 가족이 보였다. 버거워서 놓고 싶은데  간신히 끌고 가는 짐이 가득한 니어 카도 보였다. 나도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말이다. 글쓰기는 나에게 토해놓고 싶은 도구가 기꺼이 돼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얘기한다. 리어카의 필요 없는 짐을 내려놓으라고. 한 번도 해주지 않았던 스스로의 위로가 활자로 바뀌어서 편지처럼 나에게 전달됐다. 하루에 한 통씩 내가 좋아하는 일관성과 연속적으로 공감을 싣고 배달된다. 희로애락을 담은  회고록을 한 줄씩 쓰면서 민감하게 반응했던 삶들과 형형색색  인연들을 만난다. 2020년에도 아마 나는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손주처럼  방실방실 웃을지도 모른다. 글쓰기에게 기대도 해본다. 그날의 상처와 슬픔이 건강했기에 흘린 눈물이라고.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면 날씨의 간을 보며 최대한 하루를 즐기라고. 오히려 일관성 없이 두려워하지 말고 지치고 여려도 괜찮으니 너답게 살아가라고. 




2019년 11월 13일 가을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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