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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Nov 08. 2019

가을1

가울날 쓸쓸하다면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버스 타고 30분가량 더 들어가면 별들이 하늘 도화지에 틈새 없이 한 바닥 꽉 차있는 촌이 보인다. 촌의 어둠은 더 깊고 검어서 운이 좋은 날에는 머리를 뒤로 젖히고 한참 하늘을 쳐다보면 마치 별들이 눈앞에 바로 있는 것처럼 느낄 때도 있었다. 그런 촌에서 촌사람 치고는 핸섬하고 닭똥 냄새보다는 깨끗한 비누 향이 날 것 같은 말쑥한 중년 남자가 그곳에 살고 있었다. 뱃살은 없고 길쭉하며 평범한 이목구비의 아저씨. 닭을 키우는 L 씨는 100일 동안 마음을 졸여가며 닭을 키워서 건강한 닭을 출하시키고 나면 홀가분한 마음으로 시내에 나와 술을 한 잔씩 했다. 농촌마을에서 닭을 잘 키워 출하하면 성공한 사람이며 유능한 축산업자가 된다. 이처럼 L 씨는 두 아들을 키우며 동굴 동굴 한 아내와 평범하게 가장 보통 사람으로 살아갔다. 촌은 한가롭고 때론 넉넉한 인심에 푸근하다. 동네 분들이 조금씩 들고 나오는 고구마 배추 그중 깻잎장아찌는 바쁜 나에게 구세주 같았다. 그런 나는 주섬주섬 식용유며 들어온 양말 등을 챙겨 정을 나누었다. L 씨는 내가 사는 곳에 들르면 천장에 달려있는 고장 난 전구 세트를 가뿐히 고쳐내고, 망가진 농기구도 없어진 나사와 비슷한 것으로 끼워 넣어 멋들어지게 고쳐낸다. 커피 한 잔으로는 안되니 더블로 마신다면서, L 씨는 웃음도 말수도 적었다. 참는 것이 몸에 배었는지 아니면 성격인지 몰라도 침 튀기며 얘기하는 동네 아저씨와는 사뭇 달랐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을 먹고 슬슬 졸음이 몰려올 때 휴대폰 소리가 울리고 남편의 목소리도 들린다."어 이사장 웬일이야! 에고 너무 늦었어! 어이 들어가 조심해서 들어가 그래그래 내일 보자고! 잠이 오는 듯 걸걸한 목소리로 남편은 "이사장인데, 낮에 커피 한잔하고 갔는데 뭐 할 말이 있나 술을 한잔하자고 하네" 하며 나를 향해 얘기했다."술 먹었으면 어떻게 운전해?"남편은 대꾸하지 않았다. 실수하지 않는 사람,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람이니 아무 걱정 없다는 묵언이다. 그렇게 L 씨는 신뢰를 주는 사람이었다. 다음날 해는 뜨고 일상의 시계는 똑같다. "쿵쿵 쿵" 남편이 하얗게 질려서 계단을 뛰어올라온다. 핸드폰을 든 손은 떨리고 L 씨가 죽었다고 술을 마시고 저녁에 운전하고 집으로 들어가다가 가로수를 들이받았다고."누가 그래?" "이사장 부인이 전화 와서 어제 만났냐고 묻네." 아이고 어제 좀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지 그랬냐"라고 애꿎은 남편과 소리를 질러가며 후회의 껄껄을 얼마나 되새김질했는지 모른다.

내가 알았던 L 씨는 절대 술 먹고 운전할 사람이 아닐 텐데 동네는 왜?, 뭐? 소리만 요란했다. 황당한 시간은 흘렸고 3 일상을 치르고는 부인이 찾아왔다. 남편에게 무슨 얘기를 들은 것이 없는가? 물었지만 남편은 해줄 얘기가 없었다. 낮에 조용히 커피 한 잔을 먹고 갔고, 저녁에 술 한잔하자고 전화가 왔을 뿐 내색하지 않는 L 씨의 마음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말없이 신중하며 절제된 행동들을 했던 L 씨에게 절대 있을 수도 없는 소문들은 퍼져나갔다. "여자가 있다고" "빚이 있다고" 털어내지 못했던 사연이 있었는지 아니면 너무나 단정했기에 무엇이 그토록 밤늦게까지 술을 먹게 했을까? 하는 억측과 추측이 무성한 풀처럼 한동안 동네는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닭을 키우니 은행융자 많았다는 등 보험 아줌마와 썸을 탄다는 등 구체적인 이야기에 처음에는 펄쩍 뛰었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어찌 알겠는가? 죽은 자는 말이 없는데. 술렁술렁 파도 타듯 마을은 한동안 술렁였고 부인은 몇 번을 찾아와 차를 마시고 하소연과 슬픔을 같이 나누었다. 하지만 내 궁금하다고 힘든 부인에게 따져 물어볼 수는 없었다. 부인도 말을 아꼈다. 처리할 계사를 걱정했고, 산사람은 산사람대로 그렇게 슬픔과 함께 살아갈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곳을 떠나 시내 아파트로 나와야겠다고 했다. 시간은 어김없이 흘렀고 동네도 일상으로 돌아가 천천히 아물 어가는 상처처럼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닭이 울고 개가 짖었다. 그날 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었을까? 그냥 위로받고 싶었을까? 밤이 되면 소설을 쓰느라 나는 한동안 안 달란 사람이 되어 더부룩한 속마음에 밥을 먹고 커피 대신 가스명수를 몇 박스 마셨다. 추측과 억측은 소문인 듯 진실인 듯 뒤엉켜서 풀지 못한 덩어리가 되어 각자의 마음대로 L 씨를 남겨놓았다. 그리고 우리는 차츰 L 씨를 놓아주었다.

 어쭙잖은 위로는 나는 싫어했다. 마치 누구의 사정을 안다는 것을 무기 삼아 얕잡아보는 이들을 종종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차 한잔하자, 술 한잔하자”라는 말을 헤아리지 않았다. 대부분 인사치레이며 수박 겉핥기 식 얘기도 나는 별로였다. 하지만 L 씨를 보며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이야기한다는 것이 이승과 저승의 건널목에서 이승으로 당겨올 수도 있고, 별것 아닌 위로가 누구의 인생을 살려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물어봐도 말을 하지 않았을 것 같은 L 씨였지만 말이다. 그가 떠난 지 수년이 흐른 지금도 이 가을에 문득 스치고 지나간다. 은행잎이 노랗고 바람이 꽤 차가웠던 그날처럼 오늘이 그렇다. 오늘도 사람을 만나고 사람 때문에 상처를 받는다. 싸움도 하지 못하고 마음이 뒤숭숭하다. 시시콜콜 따지자면 내 마음 같지 않다는 거다. 그리고 그 상처를 위로받기 위해 사람을 다시 만난다. 이번에는 내 마음을 위로해 달라고 말이다. 이렇듯 사람에게 질려서 절로 들어가고 싶을 때도 있고, 그리워 밤새 핸드폰 속 사진을 보고 또 볼 때가 있다. 벽에 걸려 있는 괘종시계는 중심을 잡으려 왔다 갔다 멈추지 않고 움직인다. 우리의 흔들림도 살기 위한 과정이다. 흔들림에 어지러워 드러눕기도 했지만 그래도 살만한 것은 내 마음에 달렸다. 강조하고 싶어"내 마음에 달렸다"를 반복해서 힘차게 외친다. 흔들이며 사는 것이 어쩌면 흔들려야만 부러지지 않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흔들리는 코스모스가 약해 보여도 참으로 강하고 현명하다. 버티면 큰 고목도 쓰러진다. 도끼질 몇 번이면 쓰러지고, 기계톱 한방이면 맥없이 꺾어진다. 고독하고 쓸쓸한 이들이여! 유연하자. 찬 기운이 온몸을 뒤 덥혀도 내일 해는 뜰 것이고, 아침이 되면 기적같이 고민이 사라질 수도 있지 않겠는가! 오늘 밤 그대들이 믿는 신께 빌고 자면 말이다. 그때의 L 씨처럼 힘이 들고 흔들린다면. 



2019년 11월 02일 토요일 장날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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