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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Nov 17. 2019

부부 1

효도 라디오

   


 저녁밥을 많이 먹으면 눈꺼풀이 고등학교 때 수학 시간이요, 몸은 체육시간. 장거리 달리기를 하고 골인 지점에 도착한 몸이 된다. 꽈배기처럼 배배 꼬이는 몸은 간절하게 눕기를 원하나 "걸으러 가자"라는 소리가 비몽사몽 들리면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워야 강시처럼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오일장 입구에는 트로트 노래가 항상 흘러나온다. 어르신 몇 분은 늘 계신다. 주로 남자분이다. 장날 맛도 나고 흥겹다. 걸을 때 들으면 지루하지 않겠다 싶었다. 주로 사랑노래인데 수백 가지의 사랑은 절절하다. 이 나이가 됐는데도 묻기에 어색했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아저씨 7080 노래는 없어요?"라고 물었다. 주머니 속에서 작은 통을 꺼낸다.  몇 개의 칩이 있는데 한 개를 골라 라디오에 끼우니 세상에나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노래 제목은 생각나지 않으나 "바람 부는 저 들판 끝에는 산보로 가는 길 있겠지~ 구비구비 산길 걷다 보면 한발 두발 한숨만 나오네."들었던 멜로디이다. 나보다 조금 나이 많으신 부부도 멈춰 서서 이 노래 하나 달라고 하니 다음 주 장날에 오란다. 많이 찾지 않아서 그런지 한 개뿐이 없단다. 다음장에 오면 가사가 적혀있는 쪽지도 준단다. 좋기도. 추억의 음악이 하루를 신나게 한다. 내친김에 팝송을 하나 부탁하고 왔다.  


나는 빨간색 남편은 파란색 호주머니에 쏙 집어넣고 걷기와 함께 듣기 시작하면 눈이 초롱 해지면서 그 시절 그곳으로 새총 쏘듯 한방에 날아간다. 광화문 덕수제과 곰보빵과 슈크림 빵  광화문 미리내 쫄면 집 우리에게도 10대 있었다고 맞장구치면서 군대 얘기처럼 침 튀기며 자신의 영웅담에 소설을 쓴다. 과거 남편은 탤런트도 울고 갈 미남이었단다. 도무지 믿기지 않지만 들어준다.


신나는 팝송 전주곡"Will be one by two  today"에 남편은 고고장에서 써먹던 어깨춤을 시작으로 모든 음악에 딱 맞는 맞춤형 이상한 스텝은 본인이 개발하셨는지 어김없이 나온다. 잘한다고 좋아하면 아예 판을 깐다. 어두우니 망정이지 용감무쌍 주책바가지이다. 그런데 이 춤은 중독성이 있어서 보고 있으면 웃음이 절로 난다. 한 곡이 끝날 때까지 춘다. 참 죽겠다. 한참을 웃었다.


그러게.

조물주께서는 넉넉히 주신다면  100년을 허락하셨다.  소금에 무지막지 절여진 짠지 같이  짜들짜들한 살림살이에 아등바등 거리며, 부질없이 티격태격에 한껏 용쓰며 살아온 시간들이 사그라든다. 남편을 마치 동지처럼 생각했더라면 고개를 끄덕여 주었을 텐데. 세월에 흐름도 놀랍고 옆모습 슬쩍 보니 친구도 많이 늙었다. 먹먹한 가슴에 안경  눈시울이 붉어진다. 부부는 살다 보면 오래된 동무가 된다. 효도 라디오 덕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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