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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Nov 23. 2019

부모 형제 자식1

선물 같은 딸



1980년대 산아제한 표어들이 기가 막히다.

"내일이면 늦으리 막아보자 인구폭발"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

"한 집 건너 한 명 낳자" 이런 시대가 있었다.


아들에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뜻밖에 모습들이 보였다.

대부분 동생들을 데리고 왔고 나이가 지긋하신 

남자 담임선생님께서도

'혼자는 외롭다'라는 말씀까지 들으니

 "한 집 건너 한 명 낳자"가 나였다.

최소한 두 명은 낳았고 내가 살고 있는 빌라에

현이네 집하고 나하고 아들이 한 명씩이었다.


현이 엄마에게 물었다. "현이 동생 안 낳아요?

우리는 쌍둥이가 태어날 확률이 있어서 안 낳아요.

" 그렇구나! 나는 나라에 충성하려 안 낳았나?

서로서로 하나 낳기 운동을 하고 있는

80년대에 풍경이다.


시기 질투심이었는지 뭔가 모르게 

손해 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딸은 선물인지도 모르게 태어났고

그 선물은 지금 친구가 되어 내 곁에 있다.

선물은 납작하고 밋밋하게 생긴 모습으로 태어났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오빠에 밀려서

예쁘다는 소리를 못 들었다.

납작 구리 하다는 말이 딱 맞는다.

가끔씩 "귀여운 현정이" 아니면

"똑순이"라고 애칭으로 불러줬다.


그렇게 불러서였는지 딸은 똑똑하게 자랐다.

중2병에 걸려서 학교 쉬는 시간에 화투를 가지고

친구와 놀다가 선생님께 걸려서 담임 선생님께서

전화가 온 일이 있었는데 딸아이는 

친할머니가 명절 때 뽕치기 화투를 했기에

 화투가 익숙에 있었다.

그리고 화투를 가지고 쉬는 시간에 

노는 것이 뭐 별일 인가!

이일을 마음 아파하는 딸아이는 지금도 말을 한다.


납작이는 크면서 인물이 났고, 숱 많은 머리카락, 

시커먼 눈썹, 동글한 얼굴.

폐지 줍는 아주머니 폐지를 같이 들어주고 

길 양이 먹을 캔을 사서 가방에 넣고 다닌다.

"너 무거운 가방이나 잘 들고 

너나 잘 챙겨 드셔"라고 나는 툴툴댄다.

엄마 생일 선물이라고 책 한 권을 만들어준다.

맨날 시험 못 봤다고 전전긍긍하면서 

공부나 할 것이지 이 짓 했다고

야단하면서도 감동이다. 

딸아이 지긋지긋하게 공부를 한다.

연애 얘기는 무시로 하면서도 연애 한번 못해보고

펜을 잡은 가운뎃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였다.

몰랑한 곰돌이 펜이 보여 조몰락거리다 

딸에게 보낸다.


무턱대고 받은 선물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힘에 겨워서 버둥대며 어쩔 줄 몰라서 

손에 놓지도 못하고 어쩌다 보니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선물들이 내 곁에서 친구 해준다.


크게 불러대는 아들의 목소리, 

낮게 부르는 딸에 목소리.

이중창처럼 조화롭게 오늘도 들려올 거다.


2019년 10월 08일 화요일

가을 날씨답게 선선하고 따사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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