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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Dec 06. 2019

삶 6

시골 터미널

 


 

 나름 멋들어지게 차려입고 나갔다가 머리는 까치집 틀고 옷은 후줄근해져서 들어오는 곳이다. 헤어짐이 아쉬워서 시커먼 커피가 뭐 그리 좋은 보약이라고 커피집 앞에서 실랑이를 한다."차 한 잔 사줄게. 아니 됐어. 아냐 아냐 한잔 마셔." 한참을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한잔을 사서 반씩이라도 마시고 헤어지면 어떨까?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웃고 있다. 큰 목소리도 들린다. "빨리 좀 오셔! 화장실은 일찍 갔다 오지, 꼭 버스가 떠나려고 하면 간다. 정말.  "손녀인지 딸인지 한껏 욕을 얻어먹은 할머니는 뒤뚱대며 말없이 버스를 타러 간다. 여기는 고속버스터미널이다.


 날씨가 매섭게 춥다. 어제 김장 담근 것은 예지력이 충만한 탁월한 선택이었다. 김치통을 열어보며 코 평수를 넓히고 거울을 심하게 쳐다보고 운동화를 신는다. 서울에 독후감 상을 받으러 간다. 주는 상은 좋으나 추운 날씨에 상을 받으러 오라 하니, 그냥 상장과 상금을 보내 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저질 체력에다가 나이까지 붙으니 힘이 든다. 고속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에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사람 구경을 할 수 있다. 터미널에는 유난히 정신 줄 놓은 분이 꼭 등장한다. 내가 앉아 있는 의자 곁에 앉는다. 자리도 많은데 내 옆으로 오는 것은 아마도 내가 향수를 뿌려서 그러가보다. 옷을 한 달은 안 빨았는지 시궁창 냄새가 난다. 가름할 수 없는 냄새를 굳이 더 즐기고 있을 이유가 없다. 숨을 참고 일어났다. 머리를 숙인 아저씨는 눈을 감고 졸려고 한다. 오른쪽 구석에서는 허름한 아저씨가 커피를 마시려 하는데 돈이 없나 보다. 커피 머신 앞에서 주머니를 뒤지고 또 뒤지며 커피가 나오는 곳을 머리 숙여 자꾸 쳐다본다. 이 분도 정신줄을 놓은 분이신가? 한참을 보고 있는데 여전하다. 마음 같아서는 한잔 사드리고 싶으나 말을 섞고 나면 그다음이 감당이 안 된다. 정면 앞쪽에서는 뉴스가 나오는 TV를 조용히 시청한다. 의자 뒤로 보이는 아주머니들 뒤통수의 짧게 볶은 파마머리가 똑같은 미용실에서 오늘 세트로 한 것 같다. 보따리 하나가 아까부터 그대로 있다. 나는 버스시간 보다  한 시간쯤 일찍 도착해서 책을 보는지 마는지 하고 있다. 서두르면 더 힘들어서 일찍 도착했다. 사람은 없고 시래기 보자기가 그대로 있다. 누가 두고 갔을까 머리를 돌려본다. 통화를 하는 사람, 표를 끊는 사람들이 보인다. 시래기를 말린 것을 보면 아까 그 할머니 인가?  생각이 든다.  이곳에 온 지가 30분이 지났는데 그 자리에 누가 앉아있었는지 모르겠다. 정신줄 놓은 두 분이 신경 쓰여 서울도 가기 전에 지친다. 할머니라면 버스를 타고도 까맣게 잊으셨을 거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으니 말이다. 에구 내가 다 속상해서 시래기 보자기를 한참 쳐다본다.


 그렇다. 이렇게 살아가며 계절과 함께 늙어간다. 어쩌다 보면 잊기도 하고, 나사 하나 빠진 것처럼 매가리 없이 실수도 한다. 가끔씩 싱크대 가스불을 켜놓기도 하고, 속옷도 뒤집어 입고, 짝짝이 양말을 신기도 한다. 급하게 마음먹으면 화장실을 들락날락한다. 할머니의 바쁜 마음이 시래기를 까맣게 잊고 차를 타는 것처럼,  바쁘고 고달픈 세상살이가 터미널 풍경처럼 어수선하다.



12월 06일 맑고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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