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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Dec 09. 2019

인연 3

동창생 계영이


 




 일상이'힘이 든다'라고 신호가 오면 가차 없이 내려놓기로 했다. 일요일은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할 판이다. 누룽지탕이 먹고 싶고, 찝찔한 것들이 먹고 싶은 것을 보니 건강 신호 등에 빨간불이 켜졌다. 은근히 겁이 난다. 전화가 온다. 반가운 계영이다. 계영이는 10년 전 뇌종양으로 감마 치료(정확하지 않다)라고 것을 받았다. 결과가 안 좋아서  모깃소리만 한 목소리로 말하니 따져 묻기도 미안하다. 거의 누워서 지낸다. 어지러워서 전화도 가끔씩 스피커폰으로만 가능하고 외출도 병원 갈 때만 한다. 아마도 뇌의 다른 부위가 손상을 받은 모양이다. 


 계영이는 고교 동창생이다. 고교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설렌다. 나에게 그런 시절이 있었나? 생각나게 해주는 유일한 친구다."미숙아!" 그렇지 않아도 누워서 엄마의 누룽지탕을 생각하고 있는데 내 이름을 불러주는 친구의 목소리에 울컥한다."어머 계영아 힘든데 어찌 전화했어?" 누워서 전화하는 친구와 누워서 전화받는 나는 이름을 한 번씩 부르고 먹먹해진다. "왜 잤어? 미숙아"라고 묻는 계영이에게  "응 일요일이라서 누워있었어"라고 대답했다. 어쩌다 저렇게 됐을까 속상해서 눈물이 난다. 하필이면 내가 힘들 때 전화가 오니 아픈 친구 붙들고 어리광이라도 떨고 싶다. 둘은 누워서 씩씩했던 나와 여성스러웠던 계영이를 소환해서 실컷은 못하고 아쉬울 만큼 하고 마친다. 서로는 안 들리게 누워있는 베개를 적실만큼 눈물을 흘렸을 거다. 계영이 본명은 웅빈이었는데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바꿨다. 계영이란 이름으로 자주 불러야 좋다고 하니 어색했지만 억지로라도 많이 불러줬다. 20살 때  처음 바뀐 이름을 부르고 어색해서 웃고 웅빈이와 계영이를 왔다 갔다 부르면서 많이 웃었다. 소똥 구르는 것만 봐도 웃을 나이였다. 바꿔도 별 좋은 것은 없었다. 저리 아파있는데 어디서 지었는지 그 작명소에게 화가 난다.



 삶이 불안하고 힘이 들 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연들이 있으니 위로를 하고 위로를 받나 보다. 기억해 주는 이가 있어 지난 시간들이 아깝지만은 않다. 그런 사연들마저 없었더라면 삭막하고 사그라져야 할 이 나이에 너무 덧없어서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을 거다. 늙어감을 자각하고, 어른이 되어야 하는 것이 힘에 부칠 때  기억 속에 사연들은 속력을 내서 달리는 세월이 잠시 멈추어 준 듯 편안하다.



2019년 12월 09일 맑고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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