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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Dec 21. 2019

삶 10

공방 가는 길

 안동시 서후면 교리,  터미널이 이곳 근처로 옮기기 전에는 깊은 시골이었다. 터미널이 이전된 지금은 터미널에서 살방살방 걸으면 등짝으로 땀이 날 정도의 짧지도 길지도 않은 길이다. 햇볕이 따사로운 오후지만 한유한 풍경과 적적함이 그저 고즈넉하다. 씽씽 지나가는 자동차만 없으면 더 느긋하게 걷고 싶다. 배추가 다 뽑힌 골이 파인 작은 밭 자락은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짚을 태워 거름으로 쓰려했는지 검게 그을려 있다. 하얀 개가 집을 지키다가 객이오니 목소리 높여 크게 짓는다. 노인들 두 분이 거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 쪽을 쳐다본다. 


  여기는 공방이다. 한적한 곳에 젊은 공방 주인이 인사를 한다. 이곳에서 태어나서 이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지금은 장가를 가서 살림도 살면서 공방을 한다. 조립식 건물에 자신이 만든 나무와 연탄을 연결한 화로를 소개하며"제가 불장난을 좋아해요"하며 웃는다, 작업실 건물 천장 쪽에 먼지가 희끗희끗 묻어있는 스피커에서 클래식을 음악이 나온다. 딸아이 도자기를 배울 동안에 나는 책을 읽고 있었다. 난로 옆에 코를 바짝 대고 있는 내가 불편해 보였는지 전시실로 데리고 간다. 전시실은 나무로만 때는 화로였는데 아랫목처럼 따뜻했다. 몸에 불기운이 눈이 녹듯 노곤하고 나른해진다. 병아리처럼 꾸벅 졸다가 도자기 쪽으로 머리를 돌려보고 기절해서 눈을 떴다. 도자기 쪽으로 쓰러졌으면 도자기 값 다물어주고 올판이었다. 애를 쓰며 찾아온 초행길이 힘이 들었나 보다. 딸아이 시골길을 혼자 보내기 걱정돼서 따라왔는데 나무 타는 냄새와 타오르는 불빛을 보며 쓸쓸하지만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를 본다. 시골 마을을 운행하는 버스 안은 온통 어르신들이다. 두꺼운 외투 속에서 스며 나오는 어른들의 오래된 집 냄새와 어른들의 독특한 채취는 시내버스와는 달랐다. 창문을 조금 열려고 하니 옆에 서 계신 할머니와 눈인사를 하게 됐다. 딸아이 예쁘다 말씀하시면서 자신의 며느리가 사준 빨간 잠바 얘기를 하신다."이렇게 새빨간색만 사주네"하면서 이곳에 시집와서 74살이 되었다고, 버스에 움직임에 따라 소리를 높였다가 줄였다가 조절하면서 감을 따는 아들 얘기 마감 못하고 버스에서 인사하고 내렸다. 


 어른 들과 얘기는 편안하다. "네네' 하면 되고 이해타산도 없다. 머리 굴릴 일 도 없고 그저 무엇인가를 얘기하고 싶을 뿐이다. 나도 곧 오고야 말 내 모습이다. 찬바람에 목도리를 휘감고 찾아왔던 공방에서 칙칙했던 마음을 무상무념으로 건너뛰고 돌아온다. 진한 페퍼민트 향이 목을 타고 넘어가는 기분이랄까.



 2019년 12월 21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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