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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Dec 27. 2019

나  13

 잃어버린 이름


 아주 식상한 얘기지만  두 번은 없을 내 인생에 오늘이라는 날은 나도 손주처럼 처음이다. 태어나서 풋풋한 학창 시절 처음이었고, 딸로서 살아본 것도 처음이다. 청춘이라는 절절한 단어들도 처음이었다.  매일매일이 처음이면서 마치 살아본 것처럼 오늘도 살아간다. 그나마 가지고 있던 이름은 결혼을 하면서 헌 고무신짝처럼 며느리라는 딱지와 아이 엄마라는 이름으로 36년 전 엿 바꿔 먹듯 바꾸어졌고, 할머니라는 이름도 연습 없이 추가됐다. 마치 모든 것이 준비하고 만나는 것처럼 어색해하지도 않고 놀라지도 않는다. 온데간데없어진 내 이름은 엄마와 할머니로 변해서 딱 맞는 신발처럼 나에게 신겨졌다. 어느 때부터인지는 딱 꼬집어 얘기할 수 없지만 손주랑 똑같이 맞이하는 하루가 손주 하고는 확연히 다르다. 꼴까닥 넘어가는 해를 보며 가슴 시리도록 아쉽고, 낙엽이 노란색으로 짙어질수록 왠지 호젓하다. 사랑할 때 헤어짐이 아쉬워 버스 창가에 서로가 손을 마주치며 떠나는 버스를 절절히 쳐다보는 연인들처럼, 세월이 너무 빠르다는 것을 눈치와 피부로 알아버린 나이가 도래했음을 짐작해했다. 지난 시간들이 아쉬워 옛날 사진을 꺼내놓고 연연하는 짓을 하는 걸 보면 더욱 그렇다. 스치며 지나갔던 인연들도 생각나고, 고래 힘줄보다 질긴 인연들도 생각난다. 그리고 내 머릿속 한 귀퉁이에는 싸매고 누워서 엉엉 울던 젊은 새댁이 나를 괴롭게 한다. 그 새댁에게 모질게 대했던 시댁 식구들이 미워할 수도 원망할 수도 없는 가족으로 남아있고, 한 번만 연습이 있었어도 이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후회라는 바보짓을 무한 반복하고 있다.

결국은 내가 불쌍하다는 얘기다.


 야단법석 같은 마음을 잠재울 방법으로 스스로 처방을 내린 건, 하루를 익히고 살아가기 바쁜 작년 겨울 어느 날. 느닷없이 글을 쓰면서부터였다.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로 뜻밖에 일인데 끄적이면 시원했고, 아침이면 찢어버렸다. 그리고 또 일 년 썼다. 영원할 것 같은 체력도 바닥이 슬슬 드러나고 변화하는 날씨에도 코를 훌쩍이며 평생 앓어본 적이 없는 독감이 찾아왔다. 반찬 가짓수가 줄어들고 아이들이 떠난 빈 공간을 허전해서 먹을 것으로 채우는 나도 보인다. 오지 못할 다리를 건너는 이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며, 동창생들은 아프다고 아우성이고 형제들도 슬슬 병들을 끼고 살아간다. 벗은 옷과 떨어진 머리카락도 줍지 못하고 그대로 남긴 채 돌아가신 시어머니와 친정엄마가 더도 아닌 내 나이였다는 사실이 도드라지게 돌출되어 내 앞에 서있고, 불안해하는 마음은 지옥불에 떨어진 나를 상상하며 손은 밥을 하고 있다. 죽음과 병 앞에 장사가 있겠냐마는, 그래도 잘 살아왔다는 얘기를 누군가에게 엎드려 절 받기라도 듣고 싶고. 천당의 꽃길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듣고 싶었다. 괜찮다고 보듬어줄 사람을 찾았으나 온통 내 사랑만 바라보는 가족이 보였다. 밥하고 빨래하고 일하고 자식 걱정에 하나 더 보태서 손주 똥 잘 싸나 걱정까지 늘었다. 버거워서 내려놓고 싶지만 구닥다리 짐들이 가득한 니어 카를 끌고 가는 있는 내 뒷모습도 보인다. 아무 쓰잘머리 없는 것들 그냥 줘도 안 가지고 가는 미련 후회 아쉬움 억울함 불안 걱정의 시커먼 보따리들이다.

나는 58년생 김가람이다.

 

 토해내지 못한 꾸역꾸역 참았던 미련과 억울함이 들락날락하며 변덕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마음은 멧돼지가 밤새 헤집고 간 고구마 밭이 된다. 눈물 콧물 짜내며 써 내려간 글들은 들어줄 수도 없는 한풀 기이며, 똥바가지 같은 인연들에 대한 뒤끝 작렬이다. 어쩌면 쭈그리고 울던 새댁이 너무 가엾어서 안아주고 싶은 몸부림 일지도 모른다. 희로애락을 담은 회고록을 한 줄씩 쓰면서 민감하게 반응했던 삶들과 형형색색 인연들을 만난다. 별별 인간들이 많았다. 2020년에도 나는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그날의 상처와 슬픔은 건강했기에 흘린 눈물이라고 자위(自慰) 하면서 말이다.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리어카의 짐들을 조금이라도 버려보려고  양광(陽光)이 비추든지  바람이 매섭게 불던지 매일 새로운 날에 창문을 열 것이다. 내 인생에 처음인 날씨 간을 보며 지치고 흔들려도 헌 고무신짝처럼 버렸던 잃어버린 내 이름을 찾아보려고 무진장 애를 쓸 것이다. 나에게도 학창 시절과 청춘도 있었던 내 이름은 58년생 김가람이다.




2019년 12월 27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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