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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Mar 19. 2020

흰머리로 살아가기 2

선택은 힘들다.

 엄두도 내지 못했던 흰머리로 살아가기를 하고 있다. 4개월째 염색을 하지 않았으니 어느 정도는 버텼다. 늙어가면서 제일 귀찮은 것이 흰머리 염색이다. 내 나이에 누구를 붙들고 물어봐도 똑같이 대답할 것이다. 지겹고 싫다고. 수십 년 동안 두피에 독한 약물을 많이도 먹였다. 두피가 얼굴이었다면 가당치 않았을 거다.


염색과 전쟁을 치르며 살아왔다. 염색을 하고 하루 이틀 지나면 이마 앞쪽에서 이쁘지도 않은 흰머리가 인사를 했다. 염색할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성격대로 흰머리 올라오는 꼴은 못 보겠고 뒷머리는 놔두고 앞머리만 염색을 자주 했다. 그래서 그런지 앞머리 머리카락이 많이 빠졌다. 이러다가 이마가 하염없이 넓어질 추세였다. 흰머리도 흰머리지만 머리숱이 줄어드니 왜 이리 마음이 쭈그러들던지 우울하기 짝이 없었다. 흑채로 감추기도 하고 어디 가려면 염색부터 하느라 마음이 바빴다. 머리카락에 신경을 쓰니  지나가는 사람 머리를 유심히 보게 되고 수챗구멍에 고여있는 머리카락을 물끄러미 보고 또 봤다.


아버지는 백발로 노후에 멋있어 보였다. 반면 엄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염색을 하셨다. 염색을 하지 않은 엄마는 어디 아픈 사람처럼 보였고, 너무 늙어 보여서 자식들이 성화를 댔다. 빨리 염색하라고 말이다. 남녀가 이상하게 달랐다. 나 역시 '염색을 안 하리라'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두피가 벌게지고 머리숱이 적어지니 어쩔 수없이 염색에서 손을 놓았다. 쑥쑥 잘도 자라던 흰머리는 빨리 자랐으면 좋겠는데 한치에 오차 없이 한 달에 1센티씩 자란다. 염색한 머리와 흰머리 경계선이 얼마나 보기 싫은지 모른다. 쉬운 것은 하나도 없다. 모자를 쓰니 멋을 내려고 쓴 줄 알다가도 모자를 벗으면 이웃들의 얼굴 표정이 기운 빠지게 한다. "괜찮은데" 하면서 웃는 그 웃음을 모르겠는가.

선택은 늘 힘들다

영락없이 할머니가 됐다. 골목 안 아주머니들이 얼마 전까지 새댁이라 불러줬는데 이제는 틀렸다. 다행인 것은 앞머리가 덜 빠지고 검은 머리는 아니지만 흰머리가 올라온다. 선택은 늘 힘들다.  나름 어떻게 멋있게 꾸미며 살아갈까 고민도 한다. 칠순이 넘은 언니가 못하겠다고 했던 흰머리로 살아가기.  아직은 해내고 있다.




2020년 3월 19일 맑음 강풍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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