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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Mar 21. 2020

삶 14

마음이 허한 날


 봄이라 한들 요란한 치장으로 달래볼 위인도 못되고 낭비라는 단어 하고도 거리가 멀게 살아왔다. 만만한 하얀 머그잔에  믹스커피  개를 넣고 더운물을 부어  남향 창가 쪽으로 다가가 밖으로 고개를 빠끔히 내밀어본다. 가슴이 시린 건지 아린 건지 명치끝을 왼손으로 꾹 누르며 커피를 목으로 넘긴다.


지금 뭘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미루고 있던 화분을 들고나가서  길가 큰 나무 밑에 부었다. 엉겨 붙은 뿌리를 고르고 있으니 지나가는 아주머니가 내 머리 위에서 쳐다본다." 한 뿌리 가져가서 심으세요"하고  비닐봉지에 몇 뿌리 챙겨드리니 선물을 드린 듯이 흐뭇하다.  큰 나무 밑과 화분에 한 바가지씩 물을 확 부었다. 넓어진 공간에서 화초가 편안해 보인다. 오랜만에 목욕과 이발도 하니 내 마음도 시원하다.  내친김에 100m 옆에 있는 꽃집으로 걸어가 햇빛을 좋아하며 옹기종기 모여있는 허브 중에서 두 개를 데리고 왔다.








15년 전쯤 남편과 신나게 싸우고 100만 원을 현금으로 챙겨 나를 위해 다 쓰리라 굳게  마음먹은 적이 있다. 남편의 저지레에 나를 위로한답시고  시내라는 시장으로 나갔다. 해보지 않은 짓을 하려니 지갑은 열리지 않았다.  이것저것 물어만 보고  내 것은 하나도 없이  남편 속옷과 아이들 양말만 사 가지고  어둡기 전에  들어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저녁밥을 하며  한심하게 살아가는 내가 가엾어서  펑펑 울었다. 주변머리가 왜 이 모양인지 지금도 그다지 달라진 것은 없다.  느닷없이 떠 오른 밉지도 싫지도 않은 덤덤한 추억이다.

 

좋은 날과 기쁜 날에 눈물이 나듯이 마음이 울컥한다. 살아온 것도 신통방통하고 살아갈 날들은 젊어서는 몰랐던 아름다움과 소중함이 그득하기에 그렇다. 시력은 나빠졌지만 흐릿하던 자연은 푸르고 사물들은 오히려 선명하다. 지나간 시간들보다 더 빨리 갈 것 같은 남은 시간들이 아까워서 조바심이 나는 모양이다.


봄에 허함은 달달한 봄날을 그리 달콤하게 보내지 못해서 일 것이고 나이 탓도 있으며 짧디 짧은 봄 탓도 있다. 공갈빵처럼 텅 빈 마음을 메꾸어줄 수 것 중에서 추억이 한몫을 한다.  이왕이면  온기가 있고 등짝을 두드려준 기억들로  삶이 덜 허허롭게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굳이 힘들게 소환해야 하는 추억이 하나 있다.  결혼초 장미 한 송이를 등 뒤에 숨기도 들어왔던 남편. 어쩌면 그 끄나풀로 여태껏  살아가는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2020년 3월 21일 낮에는 포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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