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분위기를 묻는 언어영역 주관식 문제의 보기에서 모르는 단어를 발견했을 때, 주로 베개로 사용하고 가끔 단어의 뜻을 찾는 용도로 사용하던 두꺼운 국어사전을 펼쳐 '목가적이다'의 뜻을 찾았다.
[농촌처럼 소박하고 평화로우며 서정적인 것.]
뜻을 반복해서 읽다가 한 풍경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나는 파스텔화로 그린 듯 평화롭고 서정적인 분위기의 목장 주인이다. 아리따운 아내는 통나무집을 둘러싼 화단에 물을 주고 있고, 토끼 같은 아이들은 연신 까르르까르르 거리며 무지개가 떠오른 풀밭을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오늘 낳은 신선한 달걀로 만든 토스트와 갖 짜낸 신선한 우유가 오늘의 간식이다. 언덕 위 아름드리나무가 만들어낸 큼지막한 그늘 아래 체크무늬 돗자리를 펴고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며 간식을 먹는다. 매일이 소풍이다.'
수학능력시험날이 가까워오며 조여 오는 긴장감, 거기에 재수할 여건이 안되니 무조건 한 번에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해져 신경이 쇠약했다. 시베리아 벌판에 홀로 서있는 듯 춥고, 사막에서 길을 잃은 듯 두렵고 막막했던 시기여서 '목가적'이라는 단어가 내 마음에 콕 박혔던 것 같다. 이후로도 마음이 유독 써늘해지면, 애써 '목가적'인 풍경을 떠올려 내 안에 온기를 불어넣곤 했다.
혹자는 고3 시절이야 누구나 겪는 건데 그게 뭐 대수냐 하겠지만, 타인의 통증은 결코 알 수 없는 일 아닐까? 혹자는 누구나 유치 20개가 빠지고 영구치가 나오는 건데 도대체 치과가 뭐가 무섭다고 유난이냐 하겠지만, 타인이 느끼는 통증은 그 사람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결코 모르는 게 아닌가? 혹자는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가는 군대인데 뭐가 그렇게 힘들어 자살을 하냐 하겠지만, 그 사람은 세상을 등질 수밖에 없을 만큼 잔혹한 마음의 통증을 오랫동안 참아왔던 게 아닐까?
이 글을 쓰는 목적이 내가 느낀 고통이 가장 크다 말하려는 게 아니라, 무신경하게 힐책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라, 당신의 고통을 내가 감히 안다고 말하지 못함을 고백하려 함이다. 그리고 내가 유난히 추웠던 그 시절 '목가적'이란 단어와 함께 불어온 온풍이 당신에게도 불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려 함이다.
실은 지금도 가끔 목가적인 풍경을 떠올린다. 시점은 내 삶의 의무를 마친 퇴직 후로 설정하고, 어떤 날은 개발도상국을 돌며 봉사활동을 하는 상상을 하고, 또 어떤 날은 슬로베니아에 정착해서 블레드 호수를 산책하는 상상을 한다. 좀 많이 힘든 날에는 '개도국 봉사활동'이나 '슬로베니아 이민'을 키워드로 폭풍 검색하며 상상의 날개를 펼치기도 한다.
예전에 한 후배 직원이 "부장님은 술도 안 하고 담배도 안 하고, 스트레스를 뭘로 푸세요?"라고 물었는데, 그냥 가만히나 있을걸 엉뚱한 대답을 했다. "아, 생각 안 해봤는데.. 나는 스트레스를 별로 안 받는 사람이 아닐까?"라 답하고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나는 엄청나게 걱정이 많고 엄청나게 예민한 사람인데 그런 말도 안 되는 답변을 한 자신이 어이없었다. 내일 출근하자마자 정정할까?
'생각해보니, 나는 오히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타입이야. 그런데 대부분의 스트레스를 상상놀이로 해소하지. 목가적 상상 놀이라고 혹시 들어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