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뒷발만 페인트통에 빠진 거니? 너도 더워서 그늘에서 쉬고 있구나~ 편하게 쉬렴 고양이야. 나에게 기쁨을 줘서 고마워! 행복하렴~"
Anne의 대사라 해도 믿을법한 이런 류의 말을 수시로 하는 우리 엄마는 종종 손녀들에게 부끄럽다는 핀잔을 듣는다. 할머니랑 다니면 보이는 풀, 꽃, 참새, 열매, 시냇물, 산들바람이랑 일일이 인사를 하며 다니는 통에 사람들이 미친 사람 혹은 치매노인 보듯 한단다. 그러니 손녀들의 반응도 이해가 된다. 할머니가 그러면 부끄러울 수 있다. 하지만 엄마가 되면 완전 다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엄마는 곧 세상이다. 자연과 이야기하며 다니는 게 당연한 줄 알고 자라다가, 좀 커서는 우리 엄마가 다소 유별난 사람이란 걸 알게 됐다. 그렇다고 '알고 보니 우리 엄마는 미친 사람이었구나!'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감수성이 유독 풍부한 사람이라 생각할 뿐이다. 우리 엄마는 시를 쓰지도, 그림을 그리지도, 작곡을 하지도, 노래를 부르지도 않지만 예술가의 심장을 가진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감수성이 남다른 예술가 엄마를 둔 덕분에 행복 감수성 영재교육을 받으며 자랄 수 있었으니 큰 행운이라는 생각도 든다.
'행복은 선택이다.' '행복은 자세다.'라는 말을 많이들 하지만 막상 행복을 선택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존재가 참 많다. 하지만 이러한 행복을 감지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이 또한 역량이고 반복된 훈련이 필요하다. 정말 운 좋게도 나는 행복 영재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하지만 엄마 품을 떠나 세상을 살다 보면 자주 까먹는다. 그러다 엄마를 만나면 다시 예전 감각이 살아난다. 행복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일상 곳곳에 숨어있는 행복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엄마를 보며 나도 모르게 동화된다.
"참새야! 오늘 노랫소리가 즐겁구나! 무슨 좋은 일 있는 거니? 참새들아, 나에게 행복을 줘서 고마워~ 너희들도 행복하렴~"
혹시 이런 말을 하며 다니는 할머니를 목격한다면, 안심하시길. 아마도 우리 어머니일 테니. 그리고 우리 엄마는 예술가의 심장을 가져서 조금 남다를 뿐 지극히 정상이다. 미치지 않으셨을 뿐 아니라 아주 행복하게 살고 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