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쓸데없는 걱정이 참 많다. 걱정을 하나도 안 하면서 이 험난한 세상을 살 수 있겠냐만은 필요 이상의 걱정으로 소중한 일상을 영위할 에너지를 갉아먹으니 문제다. 늘~ 필요 이상의 걱정을 하는 나는 늘~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간다.
언젠가 아들 녀석이 녹초가 되었다는 표현을 쓰기에 녹초가 뭔지 알고 쓰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아들이 미역 같은 거 아니냐는 답변을 해 솟아오르는 비웃음(푸훗 >0<)을 참지 못했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 녹초란 표현을 쓰면 녹아내린 초가 떠오르는 게 아니라 미역처럼 흐물흐물 흐느적거리는 나의 영혼이 떠오른다.
각설하고, 조류에 이리저리 흐느적거리는 미역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걱정을 줄여야 한다. 딱 필요한 정도만 하고 나머지는 잘라내야 한다. 어떻게 걱정을 잘라낼지, 필요한 정도의 걱정을 어떻게 판단할지 걱정이 앞선다면 이미 틀렸다. 업무경감을 위한 보고서와 프레젠테이션을 다음 주까지 준비하라는 사장님과 똑같은 실수를 범하는 것이다! 업무경감을 위한 업무라니! 이게 말이냐 방구냐! 부들부들..
아.. 그나저나.. 보고서 어떻게 쓰지.. 다음 주까지 할 수 있을까.. 프레젠테이션 하다가 실수하면 어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