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by 바보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와 [죽어도 좋아]는 노인의 사랑이라는 동일한 소재를 다룬 영화인데, 이 영화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사뭇 다르다. 전자는 정신적 사랑에 후자는 육체적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인데 관객의 평가는 극명하게 갈렸다. 나이가 들어서도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며 동경하고 응원하면서도 노인의 섹스에 대해서는 불편한 마음이 든다면 이율배반 아닌가?


북한의 일상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다 한 북한 주민의 "이 마을에는 늙은이들이 많이 삽네다."라는 말에 흠칫 놀랐다. 아마도 나 자신이 늙은이 또는 노인이라는 단어에 대한 부정적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젊은이, 청년은 괜찮은데 늙은이, 노인은 왠지 어떻게든 우회적으로 표현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 역시 이율배반 아닌가? (북한에서는 늙은이란 단어를 일상에서 흔히 사용한단다. 일례로 '늙은이 박대는 나라도 못한다.'는 속담도 있다 소개했다.)


우리 모두는 노인이 된다. 노인들의 행복을 저해하는 편견이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데 그것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가진 편견의 잣대로 언젠가는 우리 자신을 찌르고 짓누르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무엇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편향된 생각인지 찾아 가지를 쳐내고 때로는 뿌리를 뽑는 일이 우리 모두의 유익이 된다 생각한다.


꼬맹이 시절에 어른이 된다는 건 무척 기대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노인이 되어가는 건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무서운 속도로 날아드는 질병, 가난, 상실, 고독이란 이름의 화살 가운데 몇 개나 비켜나갈 수 있을지 걱정스러운데 거기에 사회적 편견까지 여전하다면 참 답답한 노년기가 될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행복한 노년을 보내는 건 꿈같은 이야기인가? 개선의 여지가 없는가? 만약 포기하거나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다면 지금의 노인세대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우리도 고스란히 겪게 될 것이다. 불행한 노인이 많아지면 우리 사회가 '노인' 그리고 나아가 '늙어감'을 바라보는 시각도 점점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그러면 더욱 '늙어감'을 두려워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미래에 대해 우리가 그리는 상은 우리 사회의 전반적 행복도에 지대한 영향이 있다. 인간이 고통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음은 인내함으로 밝은 미래를 그려낼 수 있다는 긍정적 사고에 근간이 있다. 또한 인간을 절망에 빠트리는 것은 현재 겪고 있는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체념이나 내게 남겨진 삶은 구렁텅이나 낭떠러지뿐이라는 암울한 믿음이다. 즉, 현재의 상태가 아니라 미래의 자화상이 관건이란 말이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가 그릴 수 있는 노년기의 그림이 암울하다면 그 사회가 행복할리 만무하다는 말이다.


돈이라도 수십억 있다면 뒷방 늙은이로 전락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돈을 움켜쥔 표독스러운 늙은이가 되는 것이 우리 모두의 목표가 되어서야 되겠나? 돈으로 붙들어놓은 가짜 관계 말고 마음으로 소통하는 관계를 갖고 싶은 게 지나친 욕심인가? '은퇴하고 더 행복해졌어! 하루하루가 행복해! 삶은 즐거워!'라고 말하는 노인이 많은 세상에서 살고 싶은 건 나뿐인가? 노인이 되어도 정신적인 사랑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멋진 사랑을 할 수 있다 꿈꾸는 나는 몽상가인가? 어르신이나 영감님 등의 지나친 높임이나 꼰대라는 비하로 나를 밀어내지 않고, 똑같이 존엄하고 동등한 사람으로 대해주기를 바라는 건 반사회적인 발상인가?


일단 노인의 바운더리에 들어가면 노인의 인권을 높이자는 구호가 아전인수격 편협한 주장으로 비추어지며 힘을 잃게 될 것이 염려되어 아직은 젊을 때 미리미리 이러한 글들을 게시한다. 미래의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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