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마 위드 러브]에 대한 과대망상 2

About Woody Allan's love

by 바보

영화 '로마 위드 러브'는 제목 그대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로마냐? 사랑은 어디에나 있는 게 아니냐? 이런 의문이 따르지요. 그 답은 감독만이 알고 있겠지만 영화가 말하고 있는 사랑을 표현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인 것만은 확실해 보입니다. 앞서 존과 잭이 보여준 이성 간의 사랑도 얼뜨기 시절과 꼰대 시절의 관점을 동시에 보여주는 연출을 표현하기에 시간이 멈춘듯한 도시 로마가 제격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술을 향한 사랑을 보여주기에도 로마만큼 완벽한 배경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디 앨런의 영화는 본인이 출연하는 영화와 감독만 하는 영화로 나뉩니다. 본인이 출연하는 영화는 자신의 색이 더욱 짙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아무래도 대중적인 것과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나름의 조율이 있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항상 대중이 원하는 것만 하는 삶도 허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대중을 외면하고 본인만의 길을 갈 수는 없을 겁니다. '로마 위드 러브'는 우디 앨런이 출연하는 영화이고, 우디 앨런의 색이 더 짙은, 다시 말해 대중의 시선보다 본인의 욕구에 보다 충실한 영화라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글은 논리적인 분석이 아닌 과대망상에 불과합니다. 오해 없으시기를..

우디 앨런은 퇴직한 오페라 감독으로 영화에 출연합니다. 그는 예비사돈이 샤워부스에서 부르는 오페라 소리를 듣고 사랑에 빠집니다. 우디 앨런은 예비사돈 제리에게 본인이 기획하는 무대에 서달라고 집요하게 설득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샤워부스 밖에선 전혀 실력 발휘를 못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페라 샤워부스를 무대에 설치하고 실제로 샤워를 하면서 공연을 하는데 이게 빅히트를 칩니다.


제리의 직업은 장의사입니다. 죽음과 가장 가까운 직업 중 하나라 할 수 있죠. 그런 그가 혼자만의 시간, 혼자만의 공간에서는 자신만의 예술을 펼칩니다. 아들들을 모두 변호사로 키워낸 장의사 제리, 언뜻 생각했을 땐 예술가의 삶과는 거리가 먼 사람일 것 같지만 사실 오페라를 사랑하고 있고, 샤워부스에서 쌓은 실력으로 로마 시민까지 사랑에 빠지게 만들죠. 예술은 생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살아있는 자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예술을 추구함을, 예술을 향한 사랑도 엄연히 사랑의 한 영역임을 이영화는 말하고 있습니다.

우디 앨런이 영화 만드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것처럼, 누군가는 오페라 만드는 일을 사랑하고, 또 누군가는 오페라를 부르는 것을 사랑합니다. 우리 모두는 예술혼이 있어 어떤 식으로든 표출하려 합니다. 누군가는 막히는 출근길에 운전대를 잡고 혼신을 다해 열창을 하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는 점심시간을 쪼개어 글을 쓴답니다. 식사 이후에는 좀 움직여야 소화가 잘되는데 가만히 앉아서 글만 쓰고 있으니 소화가 되겠습니까? 그러니 맨날 뿡뿡거리고 꺽꺽거리죠. 만성 소화불량을 호소하면서도 아무도 봐주지 않는 글을 씁니다. 제가 아는 사람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고요? 흠흠...


연인과의 상호적인 사랑과 예술을 향한 사랑 다음은 대중의 사랑입니다. 이를 위해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된 레오폴드를 등장시킵니다. 자고 일어났더니 유명해져 어리둥절하다는 스타들의 인터뷰는 뭔가 익숙하죠? 영화가 빵 뜨면서 오랜 무명시절의 터널을 빠져나온 배우도 있고, 어느 날 본인이 발표한 곡이 역주행한 경우도 있고, 올림픽 등에서 눈부신 성과를 내서 하루아침에 국민스타가 된 경우도 있습니다. 자고 일어났더니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어느 날 지하철을 탔더니 사람들이 모두 알아보더라. 그래서 기분이 얼떨떨하다는 인터뷰 내용은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그런데 레오폴드는 정말 아무런 이유 없이 스타가 됩니다. 말 그대로 자고 일어났더니 사람들이 알아보고, 그가 입은 옷, 그가 먹는 것, 그가 한 말 한마디 한마디가 대중의 관심사가 됩니다. 처음엔 당황하던 그가 점점 대중의 사랑을 즐기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대중의 사랑은 썰물처럼 빠져나가 또 다른 이에게 밀물처럼 몰려갑니다.


현실세계에서는 아무 이유 없이 스타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영화의 설정이고, 이 영화의 장르를 코미디이게 하는 장치입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 있습니다. 누군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서 하루아침에 국민영웅이 되었다 가정하고 편의를 위해 '국영'이라 칭해봅시다. 어제까지 아무개였던 국영 씨는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어 뉴스에도 나오고, 예능에도 나오고, 라디오에도, 광고에도, 유튜브에도 나옵니다. 그때부터 모든 사람들이 국영 씨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고 그가 어떤 옷을 입었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그가 어떤 음악을 듣는지 , 심지어 국영 씨의 반려견까지 덩달아 관심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점점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나 결국 사라집니다. 금메달을 따기 하루 전의 국영 씨, 그리고 금메달을 따고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한 국영 씨,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점 잊히다 끝내 사라진 국영 씨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국영 씨의 관점에서 생각해봅시다. 나는 늘 열심히 하던 일을 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이 엄청난 애정을 쏟아부어 당황스럽다가 조금 적응이 되자 무척 행복합니다. 나는 어제와 다를 바가 없는데 대중은 애정을 거두어 가버립니다. 어리둥절하죠. 이토록 큰 사랑을 받았던 이유도, 언제 그랬냐는 듯 무관심한 이유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아마도 대중의 사랑이란 아무 이유 없이 시작되었다 아무 이유 없이 끝난다 느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대중의 사랑은 달콤합니다. 하지만 그 사랑이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또한 언제 거두어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하기도 합니다. 마침내 거두어 갔을 땐 높은 파도를 타다 내동댕이 쳐지는 기분, 구름 위를 걷다 갑자기 곤두박질 쳐지는 기분일 겁니다. 그리고 그동안 실체라 믿었던 대중의 사랑이 허울뿐이었다는 생각이 들겠죠.


끝으로 순박한 신혼부부 안토니오와 밀리의 사랑입니다. 이 둘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바람을 피우게 됩니다. 안토니오는 콜걸과, 밀리는 동경하던 섹시 스타와 운명의 장난처럼(아마도 감독의 장난으로) 엮이고 또 엮입니다. 시골에서 올라온 순박한 부부이기에 유혹 앞에서 무척 망설입니다. 그러다 결국 유혹에 무너집니다. 그런데 그 결과 안토니오와 밀리는 더욱 행복해집니다. 들키지만 않는다면 각자의 호기심 혹은 판타지를 충족하는 게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건강한 부부생활을 위해 필요할 수 있다는 거겠죠. 어떻게 30년 동안 한 사람 하고만 섹스하냐는 유러피안적인 사고방식이 드러나는 부분이라 동방예의지국에서는 다소 낯선 대목이기도 합니다.


양녀 순이 프레빈과 결혼한 감독 본인의 사고방식도 유러피언적이죠. 수양딸이라고는 하나 어쨌든 딸과의 결혼은 아직 어떤 사회에서도 환영받지는 못했던지 욕을 많이 먹어야 했던 우디 앨런. 그는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요? 아마도 세상에 딱 한 가지 종류의 사랑이 있는 게 아니다. 정말 다양한 빛깔의 사랑이 존재하며 다르지만 모두 가치 있는 사랑이라 말하고 싶었으리라 망상합니다.


잭의 마음을 빼앗은 모니카 역을 맡은 엘리엇 페이지는 성전환을 해서 대중의 비난을 받습니다.(응원을 받기도 했습니다.) 모니카는 존의 첫사랑의 투영이기도 합니다. 첫사랑의 기억은 쌉싸름하기 마련이죠. 남자들은 이따금 첫사랑과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하는데, 그 삶이 너무 달콤했으리라 상상하게 되면 현실이 억울하게 느껴집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는데 어쩝니까. 차라리 '아마 엄청 싸우다가 헤어졌을 거야.' 생각하며 마무리하는 게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죠. 흔히 신포도 전략이라 일컫는 그것을 활용하는 겁니다. 그런데 만약 그 여자가 알고 봤더니 레즈비언이었음을 알게 된다면 어떻겠습니까? 완전 신포도였구나 싶어 현실에 대한 억울함이 눈 녹듯 녹아내리고 만족감이 차오르지 않겠습니까? 그런 맥락에서 모니카 역으로 엘리엇 페이지를 섭외함에 감독의 의도함이 분명히 있다 생각합니다.

감독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사실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이 글을 우디 앨런 감독님이 감명 깊게 읽으시고(혹은 깊은 빡침으로) 저에게 만나자고 한다면 속속들이 알 수 있겠죠. 그런 일이 없을 테니 제 마음대로 써봤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영화를 보고, 내가 사랑하는 행위인 글쓰기로 감흥을 표현함이 제게 행복을 주기 때문입니다. 딱 그뿐입니다. 독자님들은 전혀 다른 판단을 할지도 모르고, 이 영화에서 별다른 감흥을 얻지 못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란 사람은 우디 앨런의 근본 없는 코미디와 코드가 맞는 사람이고, 코미디라는 장르를 통해 가볍게 표현하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가벼운 건 아니라 판단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가 더 많이 사랑받으면 좋겠다 싶어 이 글을 쓰게 되었는데, 1편을 쓰고 2편을 쓰기 위해 다시 보려고 넷플릭스를 뒤져봐도 안 나오더군요. 아마도 '로마 위드 러브'의 넷플릭스 계약이 그새 끝난 것 같아요.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고,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한다는 교훈을.. 여기까지 '로마 위드 러브'에 대한 과대망상이었습니다. 오해 없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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