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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Kim Mar 21. 2021

부린이와 산새의 대화

 

산새처럼 온종일 지저귀던 아들이 중학교에 가더니 수도승처럼 입을 닫았다. 묻는 말에만 최대한 짧게 대답할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1년지 지나 2  아들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아들: 아파트가 이렇게 많은데 왜 가격은 계속 오르는 거예요? 이유를 아빠는 아세요?


 말하자면 나는 부린이다. 수도권 재개발 소식은 다 꿰고 있고, 지역별 대장 아파트가 뭐며 앞으로의 전망은 어떠한지 막힘없이 브리핑이 가능한 부동산 전문가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중에서도 한 지인은 전국구다. 제주도, 세종시, 대구, 부산 등 우리나라 영토가 모두 레이더망 안에 있다. 얼마 전에는 부산의 한 아파트에 대해 열을 올리며 한참을 설명하던데, 천지개벽이란 단어를 문장마다 집어넣으며 열변을 토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아파트가 아니라 호텔이다. 그런데 또 알고 보면 호텔처럼 분양을 하지만 아파트처럼 쓰면 된단다. 나는 끝끝내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비단 이 친구뿐이겠는가. 요즘 부동산 박사님들이 너무나 많기에 그에 비해 나는 부린이의 범주에 들어감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아들이 무려 1년 만에 묵언 수행을 끝내고 입을 열었는데 '아니, 잘 몰라.' 하고 대화를 끝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 아빠도 어려서 그게 궁금했는데, 아빠랑 똑같네? 네 생각에는 왜 그런 것 같아?


아들: 수요와 공급이 가격을 결정한다고 학교에서 배웠는데 뉴스에서 보니 가구 수보다 집의 수가 더 많대요. 집의 수가 더 많은데 어떻게 가격이 점점 올라요?


나: 그건 집의 수는 많지만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집은 부족하기 때문인 것 같아. 집의 종류는 크게 주택, 빌라, 아파트로 나눌 수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중 아파트를 유독 좋아하거든, 그런데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하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의 수요를 모두 만족시킬 만큼 아파트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아. 둘러보면 아파트가 엄청나게 많은데 그 보다 더 더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하는 거겠지.


아들: 그런데 아파트 중에서도 가격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잖아요. 아파트가 부족하다면 모든 아파트의 가격이 올라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나: 그건 아파트 중에서도 사람들이 더 살고 싶어 하는 곳으로 사람들이 쏠리기 때문인 것 같아. 기왕이면 지하철이 있고, 자녀가 초등학교에 걸어서 갈 수 있고, 믿을만한 대기업이 최신식으로 지은 아파트에 살고 싶겠지. 거기에 큰 공원, 도서관, 영화관, 쇼핑센터도 있으면 더 좋을 테고. 그런데 이러한 조건을 하나도 갖추지 못한 아파트도 있단 말이지. 변두리 지역의 산비탈에 나 홀로 수십 년 서있는 아파트는 아무리 아파트래도 가격이 오르기 쉽지 않겠지. 물론 극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겠지?


아들: 그러면 요즘 코로나 때문에 경제가 어렵다고 하는데 왜 아파트는 계속 값이 올라요? 유튜브에서 보니까 코로나 때문에 경제가 안 좋아서 이제 아파트값이 폭락할 거라고 하던데 맞아요?


나: 부동산 전문가라고 모두 같은 말을 하는 게 아니더라. 폭락할 거라 예견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주야장천 오를 거라는 사람들도 있어. 이 둘의 이야기를 각각 들어보면 나름의 근거가 분명해. 너도 양쪽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보고 네 생각을 정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아빠는 어떻게 정리했냐면, 코로나 때문에 경제가 어려워지니 모든 나라는 일제히 전례 없는 엄청난 양의 돈을 찍어냈어. 돈을 덮어놓고 찍어대면 인플레이션이 오잖아. 돈을 마구 찍어대면 돈의 가치가 점점 떨어지고, 그러면 결국 빵 1개를 사기 위해 돈을 수레에 싣고 가는데 강도가 돈은 놔두고 수레를 훔쳐간다는 짐바브웨처럼 망하지. 이를 모르지 않지만 지금 당장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돈을 찍어내고 있어.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고, 우리나라 경제와 연결되어 있는 미국은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돈을 찍어내고 있어. 이렇게 세상에 돈이 많아지니 돈의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어. 돈의 가치가 반토막이 난다는 말은 예전에는 5억을 주면 살 수 있던 집을 지금은 10억을 줘야 살 수 있다는 말이야. 그러니 부동산 가치가 올랐다기보다 돈의 가치가 떨어져서 아파트의 값이 올라갔다 표현하는 게 합당하다 생각해.


아들: 흠... 그러면 저도 빨리 집을 사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나: 우리나라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바보가 아니잖아. 일단 위기만 넘기면 금방 정상화될 거야. 그러면 집값도 안정화되겠지. 게다가 네가 어른이 되어 집을 사야 할 시점이 되면 우리나라 인구도 많이 줄어서 얼마든지 집을 살 수 있는 시대가 될 거야. 물론 모두가 살고 싶어 하는 특정 지역 특정 아파트의 값은 여전히 비싸겠지만.


아들: 나는 모두가 살고 싶어 하는 그런 집에 살고 싶은데요.


나: 나도 네가 그런 집에 살았으면 좋겠구나. 다들 이런 생각을 하니 부동산 양극화가 발생하나 봐.


아들: 3기 신도시는 어때요? 제가 어른이 되면 1기 2기 신도시보다 3기 신도시가 더 새 거니까 더 좋지 않을까요? 그런데 모두가 살고 싶어 하는 환경을 갖춘 3기 신도시를 만든다는데도 왜 계속 아파트 값은 비쌀까요?


묵언수행을 끝낸 아들은 다시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산새가 되어 온종일 지저귀기 시작했다. 아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내용의 객관적인 가치를 떠나 나와 그의 히스토리에서 매우 가치 있는 시간이기에 모두 빠짐없이 기록해놓고 싶지만, 도저히 한 번에 다 기록할 수는 없어서 다음번을 기약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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