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목소리를 잃고 결국엔 목숨마저 잃은 인어공주의 영혼은 바람 요정과 함께 세상을 떠다니며, 하루는 아주 무더운 나라로 날아가서 더위로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시원한 선물을 주고, 또 하루는 꽃향기를 싣고 가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며 오래오래 살았답니다.
아주 오래오래 사는 동안 세상은 참 많이 변했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기쁨을 나르는 일과 이따금 나누는 이야기가 바람 요정과 인어 공주에게 변함없는 행복이 되었습니다.
"공주님은 그런 생각 안 해보셨어요? 왕자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목소리를 내어주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그런 생각 안 해보셨냐고요."
"글쎄, 왕자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도 다른 누군가는 만났을 거라 생각해. 그래서 사랑에 빠졌을 테고. 그리고 사랑에 빠지면 그 무언가는 내어주게 되어 있어. 내 경우엔 그게 목소리였고, 다른 누군가는 젊음이든 건강이든 성공의 기회든 뭐든. 내가 가진 것 중에서 아주 귀한 그 무언가는 내어 주게 되어있단 말이야. 그러니 목소리를 내어준 건 아무것도 아니지."
"무언가는 내어주게 되어있다는 말이 무슨 말이에요? 가장 귀한 것을 빼앗는 게 사랑이라면 사랑 같은 건 아무도 안 할 것 같은데요?"
"누가 내놓으라는 사람은 없어. 그런 마음을 조금이라도 품는다면 그건 이미 사랑이 아닌 거야. 아무도 시키지도 바라지도 않는데 모든 것을 주고 싶은 게 사랑이야."
"사랑은 참 비싸네요. 차라리 사랑 말고 다른 것들을 누리며 사는 삶은 어떨까요? 게다가 공주님이라면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을 살 수 있었잖아요. 세상에서 가장 예쁜 진주 목걸이를 목에 걸고, 귀한 대접받으며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곳에 가서 멋진 사람들과 파티도 하고요. 저는 그게 너무 아까워요."
"바람아. 그런 건 어린아이들 장난감 같은 거야. 어린아이들 장난감을 어른에게 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니? 사랑은 말이야 그런 시시한 것들과 비교할 수 없는 거야."
"그래도 장난감을 마음껏 가지고 놀다가 질리면 그때 사랑을 했어도 됐잖아요. 너무 빨리 사랑을 했다고 후회하지 않으세요?"
"바람아, 저 민들레 홀씨를 봐. 어떤 홀씨는 하늘 높이 날아 세상 곳곳을 여행하고, 다른 홀씨는 여우 등에 붙어서 산속 깊은 곳까지 여행을 하는 동안 어떤 홀씨는 곧바로 땅에 떨어졌어. 그리고 예쁜 민들레 꽃을 피웠지. 그렇다면 민들레 꽃을 피운 홀씨가 다른 홀씨들을 부러워할 거라 생각하니?"
"..."
"난 사랑을 했어. 그거면 충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