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사 월급은 지난 20년 동안 물가 상승률을 한 번도 넘어서지 못했다. 사실상 20년간 월급이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단 뜻이다. 더 심한 건 부장 수당이다. 20년째 7만 원으로 동결이다. 자그마치 20년이다.
2. 쥐꼬리만 한 부장 수당 7만 원에 비해 해야 할 일과 짊어지어야 할 의무는 끝도 없다.
3. 쥐꼬리만 한 승진 가산점을 주지만 그걸로 승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래 설명은 왜 그런지 궁금한 사람만 읽도록 하자. 아무리 간단히 설명하려 해도 이게 한계다.
*이유 설명: 부장 점수라며 0.015점의 쥐꼬리 같은 점수를 준다. 그걸 12년간 차곡차곡 잘 모으면 교감 선생님으로 승진할 수 있다며 꼬드긴다. 여기에는 간과하기 쉬운 세 가지 함정이 있다. 첫째, 승진 점수는 부장 점수만 있는 게 아니다. 학교에 힘든 과업을 누군가에게 전가해야 할 때마다 하나씩 생겨나서(예를 들면 돌봄 교실을 운영한다거나, 각종 청소년 단체를 운영한다거나 할 때) 인플레가 심하다. 다시 말해 12년을 차곡차곡 모아도 다른 점수도 채우지 않는다면 12년의 고난의 시간은 헛수고가 된다. 둘째, 승진점수 체제를 최근에 갈아엎으면서 그동안 기존체제에서 각종 점수를 따놓은 사람들에게 매우 유리해졌다. 다시 말해 현재 20~30대 교사들은 선배 교사들의 승진 적체가 모두 해소될 때까지 기다려야 기회가 온다는 말이다. 결국 어지간해서는 못한다는 이야기이다. 셋째, 여차저차해서 각종 승진가산점을 잔뜩 모아놓았다 하더라도 마지막 관문인 근무성적에서 100점을 받지 못하면 말짱 꽝이다. 마지막 학교에서 교무부장을 하면서 3년 이상 교감, 교장 선생님의 총애를 받아야 한다는 말인데, 교무부장을 할 수 있는 학교를 찾아가는 것이 꽤나 눈치싸움이고, 교감, 교장 선생님 두 명의 입맛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일도 여간 성가신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교감, 교장의 눈치만 보느라 동료 교사들의 미움을 사는 날에는 다면평가 점수를 받지 못해서 모든 고통의 시간이 수포로 돌아간다.
4. 담임을 맡으면 교과만 전담하는 교사들에 비해 각종 민원에 시달릴 가능성이 훨씬 커진다. 그리고 부장 교사를 맡으면 담임교사만 할 때보다 각종 민원, 특히 악성 민원에 고통받을 확률이 훨씬 커진다. 전담 교사는 본인 담당 과목 수업 시간만 책임지면 된다. 담임교사에게는 모든 수업시간, 모든 쉬는 시간, 심지어 방과 후 시간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책임이 지워진다. 부장 교사는 본인 담당 학급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에 타 학급에서 발생한 중차대한 사건 혹은 그 경계가 애매한 사건들이 더해진다. 예를 들어 학생이 선생님 뺨을 때리는 등의 중차대한 사건 혹은 현장체험 학습 때 단체 도시락을 주문해 주면 안 되냐는 답변하기 애매한 민원이 여기에 해당한다. 중차대한 사건은 누가 봐도 힘들 것 같다만, 애매한 사안에 답변해 주는 건 그다지 어려울 게 없어 보이는가? 그렇다면 다음 문단을 탐독하기 바란다.
5. 부장은 학년에서 일어나는 정답이 없는 애매한 사항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요구받는다. 어렵게 궁리해서 답변하면 그 답변이 또 다른 민원을 야기한다. 그래서 민원은 끊이지 않는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체험학습 하루 전날 민원전화가 왔다. 맞벌이 가정에서는 도시락 싸는 게 힘드니 학교에서 단체급식을 해달라는 민원이었다. 안 싸던 도시락을 싸려고 보니 갑자기 짜증이 났던 모양이다. 체험학습장 내에 식당이 있으면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이번에는 식당이 없어 곤란하다 답변하니, 어린이집에서는 도시락을 주문해 주는데 학교랑 무슨 차이가 있어서 못해주냐며 물러서지 않았다. 학교에서 학부모의 돈을 모아서 집행하기 위해서는 일련의 절차를 따라야 하는데 도저히 하루 만에는 불가능하다 답변했다. 그제야 수긍을 하고 한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다음번에는 맞벌이 가정을 고려해서 도시락 싸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강조했다. 다음번 체험학습에서는 이러한 민원전화에 시달리기 싫어서 식당 시설이 있는 체험학습장을 섭외해서 단체급식을 주문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다른 학부모로부터 민원 전화를 받았다. 한 학부모는 우리 아이가 체험학습에 엄마표 도시락을 싸가지 못해서 실망했다고 예전처럼 도시락을 싸면 안 되냐 했고, 다른 한 학부모는 메뉴가 돈가스 세트 한 가지면 돈가스 싫어하는 우리 아이는 어쩌라는 거냐며 압박했다. 해당 식당에서 제공하는 단체 식사 메뉴가 한 가지라 어렵다 하니, 도시락 업체에서 다양한 메뉴로 주문을 하면 안 되냐며 압박을 이어갔다. 이 와중에 옆반 학생은 편의점에 가서 컵라면을 먹고 오는 게 안 되냐 했고, 옆옆반 학생은 배달의 민족에서 치킨을 배달시켜 먹는 건 안 되냐 물었다. 안된다고하니 왜 안되냐고 또 물었다.
이렇듯 체험학습에서 먹는 밥 한 끼를 가지고도 이토록 꼬리에 꼬리를 무는 민원이 계속된다.
6. 부장은 내 잘못이 아닌 일로도 죄인이 되곤 한다. 세월호 사건 이후로 초등학교에서는 생존수영 수업이 의무가 되었다. 3학년과 4학년 부장교사는 생존수영 수업을 10시간 이상 추진하는 게 의무란 말이다. 다시 말해 이와 관련한 학부모들의 각종 민원에 대응하며 어떻게든 추진해야 한다는 말이다.
생존수영을 왜 해야 되느냐부터 시작해서, 우리 학교는 왜 이렇게 추울 때 수영수업을 하느냐, 의무교육인데 수영 장비는 왜 학교에서 준비해주지 않느냐, 우리 아이는 평영까지는 할 줄 아는데 고급반에서 배울 수 있느냐, 우리 아이가 부끄러움이 많으니 남자와 여자를 다른 공간에서 수업받게 해 달라, 사이가 안 좋은 @@이와는 꼭 다른 그룹으로 해달라, 아이가 생존수영 갔다가 수경을 잃어버리고 왔으니 찾아 달라, 머리가 다 안 마른 채로 와서 감기에 걸렸다, 수영장에 다녀오면 너무 배가 고프다고 하니 간식 먹는 시간을 마련해 달라는 등 다양한 민원에 대응해야 한다.
때로는 수영장과 버스에 대한 민원도 더해진다. 기사님의 운전이 부드럽지가 않아서 멀미가 난다고 한다, 우리 아이 버스 자리를 앞자리로 바꿔줄 수 없느냐, 버스 자리 주머니에 담뱃갑이 들어있었다는데 회사 통근버스로 사용되지 않는 버스 회사로 바꿔달라, 수영장 시설이 노후하다, 옷장이 너무 좁다고 한다, 드라이기 숫자가 너무 적다, 탈의실 바닥이 미끄러운데 물을 닦아주시는 분이 자주 닦지 않는다고 한다, 샤워실에 샴푸를 설치해 달라, 강사가 너무 무섭게 말해서 우리 아이가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아직 코로나가 완전히 끝난 게 아닌데 강사가 마스크를 끼지 않는 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느냐, 수영장에서 낄 수 있는 마스크가 있으니 그걸 착용하라고 해라.
어떤 학부모는 우리 아이가 생존수영 수업 이후에 코로나에 걸린 게 분명하다. 그리고 아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코로나에 전염됐다. 그러니 연로하신 두 분이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당신이 책임져야 한다며 소리 지르던 학부모도 있었다. 교육부에서 의무라며 하라고 하니 나도 하는 건데, 이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 대해 답변하고, 민원에 대한 해결책 혹은 대안을 찾고, 해결책이 없는 민원에 대해서는 감정 쓰레기통의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는 단 하나, 부장이기 때문이다.
7. 부장직은 사실 승진의 개념이 아니라 보직이다. 올해는 부장이더라도 내년에 신청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러다 보니 별다른 권위가 없다. 그래서 소속 선생님들 중에 비협조적인 분들이 있다면 그분이 협조하지 않는 만큼의 일도 부장의 업무가 된다. 그리고 그 비협조적인 선생님이 구멍을 내면 뒷수습을 하는 것도 부장의 역할이다. 그 구멍이 교장 선생님의 눈에 띄면 교장실에 불려 가서 잔소리를 듣는 것도 부장이다.
8. 이상하리 만큼 부장을 맡고 아픈 사람이 많다. 몸이 아픈 사람도 많고, 마음이 아픈 사람도 많다. 면역력이 떨어져서 걸리는 각종 병에 걸리고, 때론 암에 걸리고, 협심증, 고혈압 등 몸에 병이 먼저 발생하는 경우와 우울증, 불면증 등 마음의 병이 먼저 걸리는 경우로 나뉘는데 결국 둘은 연결된다. 그중에서도 교무부장을 맡은 선배교사들 중 아프지 않은 경우를 한차례도 보지 못했다.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분도 교무부장이었고, 학교에서 목을 매고 자살하셨던 분도 교무부장이었다.
9. 부장을 하게 되면 마음의 여유도 시간적 여유도 없다 보니 수업 준비와 학급 운영에 아무래도 빈틈이 생긴다. 수업준비가 안되면 수업에 대한 재미가 줄어든다. 학급 운영이 잘 안 되면 아이들과 호흡하며 얻을 수 있는 기쁨이 줄어든다.
10. 위와 같은 치명적인 수많은 단점을 매일 곱씹으면서도 승진에 대한 알량한 욕심 하나로 부장직을 지속하노라면 자긍심이 하루하루 깎인다. 그래서 내년에는 교감 교장 선생님이 어떠한 감언이설로 나를 설득하려 해도 절대로 절대로 부장을 하지 않으리라 오늘도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