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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Kim Jul 26. 2023

드러난 교권침해는 빙산의 일각

 교권 침해 상황에서 교권 보호 위원회를 요구하는 등의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는 교사는 매우 매우 드물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참고 견디다 몸과 마음의 병을 앓고 만다. 계속 참기만 하다 몸이 먼저 무너지면 심장병으로 돌아가시고, 마음이 먼저 무너지면 스스로 생을 마감하신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아동 학대로 신고를 당하는 경우의 대부분은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을 제지하는 과정에서 가해학생에 의해 발생한다. 이는 교직 사회에서 '참 교사는 단명한다.'는 씁쓸한 말이 회자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문제 행동을 교육하거나 제지하지 않고 묵시한다면 화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의 기쁨과 행복이어야 할 학생과 제자 관계가 어쩌다 이지경이 된 건가? 그리고 참 교사와 문제 학생이 맞붙었을 때 승산은 어떻게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참 교사의 참패다. 한 담임 선생님이 문제 행동을 일삼는 학생을 제지할 방법이 없어서 부장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부장 선생님도 뾰족한 수가 없으니 교감 교장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했단다. 그랬더니 그 학생이 하는 말이, 어른 네 명이 아이 한 명을 어찌 못하냐고 했단다. 그 아이 학부모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 전하니 똑같은 말을 하더란다. 어떻게 어른 네 명이 아이 한 명을 어찌 못하냐고. 이게 오늘날의 학교 현장의 현실이다. 이유가 무엇인지 학생과 교사의 입장에서 사안을 바라보자.


<학생 vs 교사>

학생 :  선생님이 기분 나쁘게 하면 학대로 신고할 수 있다.  거창하게 신고할 필요도 없다. 교직원 누구에게든 학대를 당했다고 말하면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된다. 왜냐하면 모든 교직원은 아동학대의 사실을 알게 되거나 의심되는 정황이 있다면 즉시 신고해야 하는 신고 의무자이기 때문이다. 이를 어기면 1천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게다가 교육청에서 손쉽게 신고할 수 있도록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줬다. 그래서 아주 간편하게 손가락 까딱거림만으로 신고가 가능하다. 신고하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느낀다면 엄마 아빠에게 나의 분통함을 알려서 합동 폭격을 가할 수 있다. 엄마 아빠에게 전달할 때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기보다 나에게 조금 더 유리한 방향으로 왜곡해도 괜찮다. 촉법소년이기 때문에 나중에 걸려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왜곡을 넘어 없는 이야기를 더해도 문제없다. 아니 완전 창작해도 아무 문제없다. 어차피 학생을 대상으로 무고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아동학대 신고로 내 기분을 상하게 한 저 선생님이 유죄가 확정되어 벌을 받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손해 볼 건 없다. 선생님은 경찰과 교육청 등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본인의 죄 없음을 스스로 증명하며 수개월간 고통을 받았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혼쭐을 내주면 다시는 내 기분을 상하는 짓은 하지 못한다. 아니 상상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교사: 신고를 당하면 사실무근이라 해도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한다. 내가 뻘소리와 허튼짓만 삼가면 문제없을 거라 생각하다면 큰 착각이다. 학생에게 호통을 치거나, 벌을 주는 등의 학생지도는 말할 것도 없고, 청소 시간에 아이들만 청소를 하고 선생님은 하지 않았다는 신고 사례도 있고, 나는 손들지 않았는데 발표를 시켰다는 것도 실제 신고 사례다. 즉, 내가 하는 거의 모든 말과 행동이 신고감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니 선생님을 골탕 먹이겠다고 덤비는 학생에게서 신고를 피할 재간이 없다. 일단 신고를 당하면 죄 없음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데,  "나는 하지 않았습니다."라는 나 자신의 증언 외에 나를 구제해 줄 증거를 스스로 찾는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인데, 안타깝게도 나의 증언은 힘이 없다. 그러니 월급의 두 세배도 넘는 수임료를 지불하며 변호사를 고용하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속 시원한 승소는 기대할 수 없다. 상대는 무고죄가 성립되지 않는 촉법소년이기 때문에 무혐의 처분을 받는 것이 최선이다. 그렇게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면 그 학생의 심기를 다시는 건드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이번에는 잘 넘어갔지만 또다시 신고를 당한다면 보복성 아동학대가 적용되어 유죄 판결을 받을지 모를 일이니 말이다. 이렇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싸움이니 애초에 피하는 게 상책이다. 문제 행동을 봐도 못 본 척 넘어가는 게 상책이다. 참 교사는 단명한다. 학생이 욕을 하면 욕을 맞받아 치지 말고 겸허히 들어라. 때리면 저항하지 말고 그냥 맞아라. 그게 상책이다. 아니 어쩌면 방임이라고 신고할 수 있으니 기분 나쁘지 않은 어조로 "선생님한테 욕하면 안 돼요~ 선생님 때리면 안 돼요~" 정도로만 대응하도록 하자.


<학부모 vs 교사>

 촉법소년인 학생과의 분쟁에서는 전혀 승산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학부모와의 분쟁에서는 그 양상이 어떠할까 예상해 보자. 운이 좋아 자녀가 했던 말이 모조리 거짓말로 밝혀낸다 해도 자녀는 물론이고 학부모에게도 아무런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아이 말을 믿어서 신고했을 뿐이라며 발뺌하면 끝이기 때문이다. 반면 그 거짓말을 밝혀내지 못한다면 선생님의 인생은 나락이다.


<정서학대 신고 vs 교권보호위원회 신고>

 교사를 지켜주는 장치가 있기는 있다. 그 이름은 교권보호위원회이다. 이 제도로 교사는 보호받을 수 있을까? 일단 교권보호위원회를 개최하는 게 교사 기분이 상했다고 신고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학교장이 개최할 의지가 있어야 열수 있는데, 교권침해의 증거가 분명한 경우가 아니라면 학교장이 행정쟁송을 당할 수 있기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교실을 CCTV로 24시간 촬영하고 있는 게 아니니 명확한 증거란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학교장이 본인이 고소당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교권보호위원회를 연다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우리 아이를 선생님이 문제아로 보고 있다는 등의 이유로 아동학대 신고를 하면 교권보호위원회는 곧바로 무력화된다. 그리고 교사는 위에서 설명한 수개월의 고초를 겪게 된다. 다행히 학부모가 고소로 대응하지 않고 교권보호위원회도 무리 없이 진행되어 학부모가 사과하는 것으로 결정이 나도 아무런 강제력이 없다. 안 하면 그만이란 말이다. 그러니 교권보호위원회가 교사를 보호해 줄 거라는 생각은 순진한 생각이라 하겠다.


 악의적이고 반복적인 아주 극심한 교권침해 사안이라면 전학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는 폭탄 돌리기 내지는 폭탄 나눠 갖기이다. A학생를 보내고 B학생을 받아서 새로운 고통이 시작된다. 문제가 돌고 돌뿐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니 교사들은 입을 모아 드러난 교권침해는 빙산의 일각이라 말하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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