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처리
교통사고는 해외 생활 중에 겪지 않았으면 하는 일 중 넘버원에 해당되는 큰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필자는 이런 큰 일을 쿠칭 살이 4개월 만에 겪으며 우리와는 매우 다른 사고처리 과정에 당황스러웠던 경험을 했다. 다행히 현지 지인들이 도와주어 큰 어려움 없이 사고처리를 할 수 있었고 교통사고가 났던 차량의 주인과는 친구가 되었다. 사고로 시작해 해피엔딩으로 끝난 필자의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매주 토요일 아침마다 아들이 골프 레슨을 받았다. 그 날따라 비가 많이 와서 레슨을 건너뛸까 고민하다가 시간을 조금 지체하게 되었고, 골프장에 도착해 주니어 프로그램이 열리는 쪽을 보니 이미 레슨이 시작되어 마음이 촉박한 상태였다. 레슨이 있는 연습장 쪽으로 내려가 급하게 주차를 하려고 후진하려는 순간 '쾅'하는 소리와 함께 사고가 나고 말았다. 뒤차 역시 레슨에 늦은 학부모였고 내가 사고를 낸 차량은 현지 가격으로 2억 원이 넘는 고급차량이었다. 사고로 너무 놀라 정신이 없었고, 렌트 차량 주인인 집주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영어로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행히 뒤차량은 매우 교양 있는 같은 학교 학부모의 차였고, 서로 다친 사람이 없음을 확인 후 아이들을 먼저 레슨에 참여시키고 사고처리를 시작했다.
본인이 든 보험회사에 전화로 사고를 알리는 것이 일반적이 우리나라와는 달리 여기는 사고 현장을 사진으로 찍고, 사고 24시간 내에 경찰서에 직접 가서 사고 경위를 리포트해야 했다. ( 심각한 사고일 경우 경찰이 출동하여 사고처리) 서로 같은 학교 학부모이고 매주 골프 주니어 프로그램에서 얼굴을 본 사이긴 했지만 인사를 나눈 적도 없는 사람이라 매우 어색하고 불편한 상황이었지만 사고를 당한 측에서 현지인이 아닌 나를 배려해 경찰서에 함께 가서 사고 리포트를 하자고 제안해주었다. (보통은 24시간 내에 각자 사고 리포트를 하고 사고 신고서를 바탕으로 보험사에 보험처리 신청을 해야 한다.)
말레이시아 정부의 말레이어 우선 정책으로 관공서에서는 영어가 아닌 말레이어를 사용하고 있고 사람마다 다르지만 경찰의 영어실력은 천차만별이다. 운이 없게도 필자가 리포트를 하러 갔을 때 영어를 잘하는 경찰이 없었고 사고를 당한 측에서 말레이어로 나의 사고 리포트를 도와야 했다. 나를 안심시키면서 말레이어로 경찰이 하는 질문에 영어로 통역해주고 필자가 영어로 얘기한 내용을 말레이어로 경찰에게 통역해주는 방식으로 리포트를 하느라 무려 4시간이나 경찰서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느리기로 유명한 말레이시아 관공서라 기다리는 시간이 많이 있었음) 사고 리포트 후 경찰은 사고의 가해자 피해자 판결을 내리고 가해자인 나에게 RM300의 벌금을 물렸고 보험사에 제출할 사고 관련 서류를 주었다.
경찰서에서 발급해준 서류를 가지고 보험사에 신청하고 보험사에서 사고 관련 평가를 한 뒤 차량 수리 비용을 받을 수 있다. 여기서도 말레이시아 타임이 적용되어 보험처리를 받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 필자의 차량은 도요타 소형차였고 수리비가 많이 나오지 않아 금방 처리되었지만 사고를 당한 측은 고급차량이고 수리비가 많이 나와 보험사와 실랑이가 길었다고 한다.
경찰서 리포트나 보험사와 실랑이를 피하기 위해 작은 사고일 경우 대부분 현장에서 현금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은데 필자가 사고 낸 차량이 고가의 차량이어서 수리비가 많이 나오는 상황이라 불가피하게 위의 사고처리 과정을 모두 겪어야 했다. 우리나라에서나 외국에서나 서두르지 말고 안전운전이 최고임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던 시간이었다.
https://www.comparehero.my/insurance/articles/claim-car-insurance
사고를 낸 건 나였는데 피해자 측은 오히려 나를 위로해주었고, 사고처리 과정에서 본인 일처럼 나를 도와준 준 집주인의(나에게 본인의 차량을 렌트해 줌) 따뜻함을 다시 한번 느꼈으며, 미안함에 제안한 식사자리에 흔쾌히 나와준 피해자인 '이멜다'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친구가 되는 진기한 경험을 하게 된 시간이었다. 이 에피소드를 쓰면서 언제나 좋은 것만 내어주었던 쿠칭이 더욱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