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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msnghwn Jan 26. 2017

아직 왕은 이르다

영화 <더킹>

박태수(조인성 분)는 대한민국의 검사다. 그의 배경이나 성장과정이야 어찌 됐든, 그는 성공하려는 야심이 있었고 그러기 위해 결국은 부패하는 쪽을 택한다. 처음 검사가 됐을 때부터 그가 부패했었던 것은 아니다. 그 역시 일반적인 검사들처럼 사건서류 더미를 전전하며 착실히 살아왔다. 약간의 정의감과 소신을 가진채로 말이다. 계기는 '우연히' 혹은 '사정이 있어서'라는 핑계일 뿐이다. 계기야 어찌됐든 박태수가 한강식(정우성 분)으로 대변되는 부패한 검사들의 '라인'을 타기로 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의 왕'처럼 군림하고자 하는 세력의 배를 같이 탄 것이다. 그리고 한 번 같이 배를 탄 후에는 그것을 되돌리기 어려웠다.

<더 킹>, 출처-Daum 영화

<더 킹>은 비교적 시기적절하게 개봉한 영화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대한민국 권력 부패 사상 가장 큰 사건이 터진 후, 사람들은 각종 권력들의 부패에 염증마저 느끼고 있다. 그런 때에 권력의 라인을 이렇게 저렇게 옮겨타면서 출세가도를 달리는 '부패한 세력들의 몰락'이라는 소재는 다소 진부하지만 매력적인 소재임이 틀림없다. '권선징악'이라는 어쩌면 당연한 이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영화의 마지막, "이 사회의 진짜 왕은 당신들이니까"하고 말하는 박태수의 이른바 '사이다' 발언은 어쩌면 관객들이 간절히 바라는 대한민국의 결말일 것이다. 그런 이유로 진부함 속에서 이 영화나름의 매력이 발산되고 있는 것이다.

<더 킹>, 출처-Daum 영화

하지만 엄밀히 따져본다면 대한민국에 단일한 '왕'은 없다. 그게 우리가 배워 온 민주주의의 이념이다. 국민 한 사람 한사람이 동등한 권리를 갖고 행사하는 세상. 사람위에 사람이 군림하지 않는 세상말이다. 국회의원들은 선거철만 되면, '국민이 왕이다'라는 식의 말로 국민들을 그야말로 극진히 대접한다. 허나 그들 역시 국회의원이기 이전에 국민이다. 그들이 우리를 왕으로 모실 필요는 없다. 바람직한 민주주의라면, 국회의원 또한 한 명의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하면 된다. 그렇기에 '왕'이라는 말은 아첨에 불과한 것이다. 이는 가게에 점원들이 써붙인 '손님은 왕이다'라는 문구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손님을 왕이라고 모시지만, 실상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다. 결국 '왕'이라는 말은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라는 우월의식을 심어 그들이 얻을 이익을 교묘히 감추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셈이다.

<더 킹>, 출처-Daum 영화

이런 이유로, 영화의 마지막에 정치인으로 변신한 박태수가 "이 사회의 진짜 왕은 당신"이라고 말 한 것을 단순히 '사이다' 발언으로 보기만은 어렵다. 그간 벌어진 수많은 사건들 속에서 국민은 한번이라도 왕이었던 적이 있었나. 어쩌면 '당신이 왕입니다'라는 문구에 속아 '국민'으로서의 권리와 지위조차 챙기지 못한 것은 아닐까. 실질적인 권리를 지니지 못한 국민을 왕으로 떠받드는 시늉을 하면서 아첨하는 이들은 그들의 배를 불려왔을 것이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하는 법이다.

<더 킹>, 출처-Daum 영화

단일한 왕은 없어도, 국민 개개인은 모두가 동등한 '왕'이다. 선거권을 비롯해 이 나라와 사회를 이끌어갈 권리와 지위를, 한 명 한 명이 지니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의 권리와 지위를 인지하고 나아가 적극적으로 영위하지 않는다면, 허수아비 왕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부패한 권력에 온 국가가 몸살을 앓고 있는 지금, '우리가 이 나라의 진정한 주인'이라는 말 한마디로 통쾌해하기에는 아직 이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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