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정

by kmsnghwn

가끔 나는 생각해본다

어쩌면 나는, 너를 떠나보낼 때

너를 가장 사랑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이별은 내게 있어 사랑의 절정이었다

가장 사랑하던 그 순간, 나는 너를 놓았다

내 사랑이 가장 부풀어 오르던 그 순간이,

나는 외려 풍선처럼 터져버렸다

잘 가라 나는 이제 그만 살게

손을 흔들어 주진 못했지만

그 순간 너를 향한 마음이 절정이었음을

절정이 지난 다음엔 모든 게 다 내리막이었다

내 삶도 나의 인생도


-이정하, <절정>



이정하 시인은 사랑을 대하는 다양한 방식을 잘 포착해낸다.

섬세한 듯 무심하다.


그의 시에는 잊고 있던, 잊으려 했던 사랑의 기억을

다시 꺼내보게 하는 어떤 힘이 담겨있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내게 물처럼 떠밀려 오라' - 낮은 곳으로 中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 사랑의 이율배반 中

'혼자 뜨겁게 사랑하다 나 스스로 사랑이 되면 그 뿐 그대 굳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 그대 굳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中


사랑을 하는 사람의 마음이야 시시각각 달라지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때 그때 달라지는 순간의 마음을 모두 알아차리기는 어렵다.

이정하 시인은 그 순간 순간의 사랑의 모습과 결을 포착해 우리에게 전달한다.



<절정>이라는 시에 담긴,


사랑하기에 보내는 것.

그리고

떠나가는, 떠나보내는 그 순간이 사랑의 정점이라고 말하는 것.


이 시는 결국, 관계 앞에 선 우리 모두의 민낯이 드러난 자화상인 셈이다.


모든 관계는 일정하지 못하고 늘 요동친다.

진폭의 차이는 있지만, 폭이 없는 관계는 있을 수 없다.

그곳에는 절정도 있고 상승도 있겠지만 하락 역시 있다.


절정을 지나면 끝없는 하락만이 올 것이라 생각하기에

우리는 절정을 맞이했을 때 소중한, 소중했던 이를 그냥 떠나보내는 지도 모르겠다.

아니 오히려 우리 스스로 이별하는 그 순간을 절정이라 규정해버리는 것 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곤 뒤에야 생각한다. '이별과 상관없이 이 관계의 하락은 언젠가 오는 것이었구나' 하고.

'이 구간만 지나서 그 하락을 같이 견딜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면서 말이다.


섣불리 지금을 서로의 절정이라 규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관계에 있는 진폭을 있는 그대로 느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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