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그 무엇보다 ‘드러냄이 없는 방식’으로
위 영상은 AI 입니다
조명이 닿는 곳마다 섬세한 쉼표처럼 형상이 멈춘다.
고개를 든 채, 그녀는 앞으로 걸으면서도 멈춘 것 같다.
목은 길고, 어깨는 정제되며, 천천히 — 한 마디 없는 언어처럼 움직인다.
그 속도는 느리지만 절대 멈추지 않는 업(業)의 흐름처럼.
카메라는 그녀를 따라 걷지만,
그녀의 내면은 멈춘 채로 서 있다.
의상은 흔들리고, 발걸음은 앞으로 나아가지만 —
눈빛은 뒤로 향한다.
마치 형상은 전진하고, 혼은 회귀하는 것처럼.
이 곳은 육체를 입은 無相(무상)이다.
무엇인가를 입고 있으나, 동시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듯한
그녀의 움직임은 ‘자아’가 아닌 ‘습기’를 따라간다.
아뢰야식 —
모든 기억과 감정의 저장소.
그녀의 워킹은 현재가 아니라,
지워지지 않는 지난 생의 흔적들이 이끄는 무의식의 길.
디자인은 존재를 드러내는가?
아니면 감추는가?
그녀의 의상은 한 벌의 '기억'이다.
입고 있는 것은 천이 아니라, 사념의 유풍(流風).
모든 자아는 결국 ‘非自性(비자성)’,
즉 타자의 시선에 의해만 존재하는 허상일 뿐.
그 발걸음이 종착하는 곳에서,
우리는 미학이 아닌 관조를 목격한다.
그녀는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그저 걸어갈 뿐이다 — 의미 없이, 그러나 비워내지 않음 없이.
오히려 창작 이전의 고요 속에서 감각을 기다린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런 발자국도 남지 않는다.
가장 오래 남는 감응(感應)의 언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