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그 무엇보다 자비의 파문으로
위 영상은 AI 입니다
바다는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그 숨결 위로, 비늘처럼 반짝이는 무언가가 스며듭니다.
그러나 그것은 살아 있지 않고,
오히려 살아 있는 존재들을 위협하는
정교하게 조형된 '죽음의 흔적'입니다.
그것은 물고기의 형상을 하고 유영합니다.
그러나 그 유영은 의지 없는 부유일 뿐 —
몸짓은 자연을 모방하지만, 본질은 자연을 훼손합니다.
불식(不識)의 응시, 공존의 실패.
이 장면은 지각(識)이 낳은 망상(妄想)의 형상입니다.
보이는 것은 생명처럼 보이되,
그 속엔 무상(無常)도, 연기(緣起)도 끊긴 채 —
오직 무명(無明)이 남아
해양 생명의 고통으로 화답합니다.
이 가짜 생명은
‘살지 않지만 죽임을 만든다’는
비살생의 패러독스.
형상은 있으나, 본질이 없습니다.
색은 있으나, 그것은 곧 空.
空은 있으나, 그것조차 묘유(妙有)로 존재합니다.
그 떠 있음은 자유가 아닌 윤회의 부력,
떠다니며 생명을 낚는 또 하나의 업(業)입니다.
우리는 말하지 않습니다.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이 말해졌고,
아무도 듣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유령의 흔들림을 감정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無聲의 자비,
침묵의 고발로 받아들일 뿐입니다.
그는 바다 위를 떠다닙니다.
형상을 지녔으나, 의식을 지니지 않고
생명을 닮았으나, 윤회를 끊습니다.
그 無意識의 부력은
곧 우리 인간의 탐(貪)을 반영합니다.
그 업(業)의 수면 끝에서 — 우리는 창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