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미용실

마지막 미용실 방문을 앞두고

지난주부터 하노이에 있는 미용실이 문을 열었다. 7월 말부터 시작된 가장 높은 단계의 사회적 격리가 최근에 해제됐기 때문이다. 근 두 달만이다. 평소에 미용실에서 샴푸와 두피 마사지를 즐기는 베트남인들에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문을 연 첫날 나도 이마를 덮어버린 아들의 머리 손질을 위해 미용실로 향했다. 오랜만에 온 손님에 미용사의 손길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보였다. 나도 오랜만에 펌을 하기 위해 동네에 있는 한국 미용실로 예약을 했다.


나에겐 가기 싫어도 피할 수 없이 주기적으로 가야 하는 곳이 바로 미용실이다. 타고난 심한 곱슬머리 때문이다. 매직펌의 주기를 줄이기 위해 나름 매직기를 사서 열심히 펴보지만 뿌리 속까지 박힌 '곱슬'기운은 비전문가의 손질로는 역부족이다. 일 년에 세네 번 정도 미용실에 가는데 그때마다 빼놓지 않고 듣는 소리가 있다.

'어머, 곱슬이 엄청 심하시네요.'

애써 웃음 지으며 '네. 맞아요. 좀 심하죠?'라고 대답하지만 결코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다. 그 덕에 원장님은 '곱슬머리를 한 올도 남기지 않을 테다'라는 기세로 내 머리를 정성껏 펴주시지만 말이다.


제멋대로 꼬부라져있는 곱슬머리 탓에 난 목을 덮을 정도만 돼도 묶기 일쑤다. 한술 더 떠 내 머리색은 칠흑같이 까맣다. 검은색 머리가 하얀 피부를 돋보이게 한다기에 부럽다는 사람도 있지만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내겐 해당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검은색 머리는 나를 더욱 촌티나게 만드는 주범인 셈이다. 화룡점정은 따로 있다. 적은 머리숱에 가늘고 힘없는 머릿결. 어떤 스타일링을 해도 축 쳐지고 빈약해 보인다. 이 세 가지가 콜라보를 이루면 시간이 지날수록 내 머리는 화산 폭발 후 까만 재로 덮인 모습처럼 처참하게 변해있다.


머리 상태가 이러하니 내가 미용실에 가는 주된 목적은 오직 매적 펌과 커트때문이다. 제각각인 곱슬머리를 가지런한 상태로 펴주고 끊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해 최대한 깔끔하게 보이기 위함이다. 요즘에는 예쁘게 스타일링해주는 펌들도 많이 나왔다지만 나에겐 그림의 떡이다. 꼬불거리는 펌을 했다간 한 달 후면 다시 폭탄머리가 될 것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용실에 가면 머리를 깔끔히 손질할 수 있어 즐거울 법도 한데 나는 미용실 가는 것을 그다지 즐겨하지 않는다. 미용실 다녀오는 일이 큰 숙제인거 마냥 가기 전에는 긴 한 숨부터 나오고 다녀온 후에는 '몇 달은 좀 편히 지낼 수 있겠구나'란 후련함마저 든다. 한 번 가면 지출이 클 뿐만 아니라 예약을 하더라도 기다림은 필수고, 펌을 하기 위해 약 처리하고 샴푸하고 말리는 데까지 거의 3~4시간은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 한다. 그 시간이 얼마나 아까운지 의미 없이 핸드폰을 뒤척이는 것 외에는 그다지 할 것도 없다. 게다가 머리를 하는 사이 원장님과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 부담감도 미용실이 불편한 이유 중 하나다.


특히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한국인을 만나면 반가움에 저마다의 사정이 궁금하기 마련이다. 미용실에서 거울을 보며 하는 대화는 그 장벽을 무너뜨리기에 최적의 장소처럼 보인다.'여기에 언제 오셨어요?', '어떻게 오셨어요?', '남편은 무슨 일 하세요?', '아이는 몇 명이세요?', '아이들 학교는 어디 다녀요?', '다시 한국으로 언제 가세요?'등은 하노이 미용실에서 듣는 단골 멘트들이다. 정작 머리를 하러 왔건만 서로의 TMI를 더 많이 알게 되는 이상한 곳, 의미 있는 말과 의미 없는 말들이 마구 섞여 난무하는 혼돈의 장이 나에겐 미용실이다.


이래 저래로 미용실은 불편한 곳인데 어느 날 그 불편함이 배가 되는 일이 벌어졌다. 그날도 미용실에 앉아 펌이 될 동안 기다리는 사이 갑자기 원장의 호통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진원지가 어딘지 거울 속을 봤더니 카운터에서 원장이 베트남 직원에게 큰 소리를 치고 있는 게 아닌가. 보통 동남아에 있는 한국 미용실은 원장은 한국인이지만 직원들은 거의 현지인들을 고용한다. 그들은 샴푸와 헤어 마사지, 머리 말리기,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쓸기 등의 보조적인 일을 하며 원장을 돕는다. 한국 원장이 베트남인을 고용하는 이유는 한국의 선진 미용기술을 가르쳐주기 위함도 있지만 그들의 타고난 마사지 실력과 낮은 일당도 한 몫했을 것이다.


“너 제대로 일 안 할래?”

원장은 화가 잔뜩 난 상태였고 베트남 직원은 고개를 푹 숙인 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이것도 제대로 못하면 어떻게 해? 일 그만두고 싶어?”

원장님은 내 머리를 손질하는 와중에도 그 직원에게 눈을 흘기며 '어이구, 어이구'를 반복했다.

“그거 아니야.... 저기 있잖아!... 정말 못살아...”


원장은 나를 의식했는지 갑자기 얼굴 표정을 바꾸며 조용히 앉아 있던 내게 한마디를 던졌다.

“일을 한지 몇 달이 됐는데 아직도 저렇게 헤매요. 언제 정신 차리려나 몰라요. 싹 다 잘라야 해. 쟤는 애아빠인데도 아직도 정신도 못 차리고 저러고 있네요.”

"아... 네..."


원장은 그 직원뿐 아니라 다른 직원들에 대한 불만도 털어놓기 시작했다. 베트남 직원들은 원장이 하는 말을 다 알아듣지 못한 듯 원장이 짓는 표정과 행동을 살피며 눈치껏 행동했다. 이 상황은 원장의 질문에 대꾸해야 하는 어색함만큼이나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어떤 모습이 원장의 진짜 얼굴일까? 세계 최고의 눈치와 순발력과 빠릿빠릿함을 갖춘 한국인에 비하면 그들이 못마땅하게 여겨질 수는 있다. 우리는 뭐니 뭐니 해도 '빨리빨리' 민족 아닌가. 한국인이 얼마나 일을 신속, 정확하게 하는 민족인지 나도 베트남에 와서 여실히 느꼈다. 그런 사람들 틈속에 살다가 베트남인들의 행동을 보면 답답할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굳이 손님이 많이 있는 장소에서 직원을 저렇게 대해야 했을까? 어린아이들도 그런 상황에서는 창피하고 민망하고 부끄러울텐데, 저 직원들은 과연 일 할맛이 날까?


원장의 말투속에서 사장과 종업원의 관계를 넘어 '한국인이 베트남인보다 우월하다'는 무의식적인 생각까지 읽을 수 있었다. 미용실 원장처럼 베트남에 살면서 베트남인을 '무시와 하대'라는 감정으로 대하는 한국인들을 종종 본다. 정작 그들의 도움 없이는 현지에서 살아갈 수 없으면서 말이다. 내가 한국인임이 자랑스럽지만 그런 사람들을 볼 때면 부끄러워진다. 우리 민족도 불과 몇 십년 전 서양인에게 그런 대우를 받아 그 설움을 익히 알고 있으면서 말이다. 이번 마지막 미용실 방문에선 손님에게 대하듯 직원들을 존중하는 사장님의 모습을 볼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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