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5일 이후로 하노이에 모든 식당은 문을 닫고 교통이 통제되고 외출도 자유롭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드디어 3개월 만에 희소식이 들려왔다. 최근에 배달만 가능한 상태로 풀렸던 식당이 이제 완전히 문을 열어 발을 디딜 수 있게 되었다. 3개월 동안 유령도시 같았던 하노이는 이전처럼 오토바이 부대가 활기를 치고 도보를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예전의 활기를 되찾은 듯하다.
이런 날을 가장 기다린 이는 뭐니 뭐니 해도 아이들이다. 특히 외식하기를 손꼽아 기다린 아이들에겐 밖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날이 어쩌면 하노이에 처음 온 날보다 더 기쁜날인지도 모른다. 그동안 밖에 나가지 못했던 아이들을 달래주기 우리 부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자주 했다. 그런 날을 상상하며 언제 끝날 지 모르는 감금(?) 생활에 조금이라도 활력을 주고자 한 노력이었다.
“코로나가 괜찮아져 돌아다닐 수 있게 된다면 어디를 가장 먼저 가고 싶어?”
“짜장면 먹으러.”
작디작은 두 입에서 동시에 '짜장면'이 흘러나왔다. 입맛이 다른 두 아이의 입에서 한 음식이 동시에 튀어나오는 일도 참 드문 일이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에 가고 싶은 곳이 중국집이라니. 난 바닷가나 동물원, 수족관과 같이 우리 가족이 추억을 쌓았던 여행지를 먼저 떠올릴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고작 짜장면을 먹으러 가자니. 허탈하면서도 웃음이 새어나왔다.
“짜장면이 그렇게 먹고 싶었어?”
“응. 첫 번째로 가고 싶은 곳은 짜장면 먹으러, 그리고 두 번째가 동물원이야.''
동물을 무척 좋아하는 첫째는 동물을 후순위로 밀어낼 정도로 짜장면에 진심 어린 눈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거기에 짜장면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다고 생각한 둘째는 한 술 더 뜨며 말했다.
“난 한국으로 떠나는 날까지 짜장면 먹으러 갈 거야. 그 정도로 먹고 싶어."
그동안 엄마가 해준 비슷한 음식 맛에 질렸던 걸까? 난 사회적 격리 기간 동안 짜장면을 먹고 싶다고 외치는 아이들에게 궁여지책으로 비슷한 음식을 제안했다.
“지금은 짜장면 먹으러 갈 수 없으니 대신에 짜파게티 먹을까?”
“싫어. 그건 짜장면이 아니잖아.”
맞다. 중국집에서 짜장 소스가 풍성하게 올려진 막 나온 짜장면을 대하는 기분과 집에서 수프로 맛을 낸 짜장면을 대할 때의 느낌은 엄연히 다르다. 어린아이지만 그 맛을 확연히 구분해내는 모습에 나는 살짝쿵 놀랐다. 그래서 또 다른 제안을 했다. 얼추 짜장면과 비슷한 면요리를 마트에서 본 기억이 난 거다.
“그럼 짜파게티 말고 비주얼이 짜장면과 비슷한 거 뭐 있던데 그거 사서 먹어볼까?”
아이들의 '한 번 먹어 볼게'라는 말에 짜파게티보다는 비주얼이 중국집 짜장면과 비슷한, 정체가 살짝 애매모호한 짜장면을 끓여 아이들에게 선보였다.
“이건 짜장면과 비슷하긴 한데 중국집에서 먹는 짜장면보다는 맛이 없어.”
비주얼에 속은 아이들은 한 젓가락을 들고 나서야 이것 또한 자기가 좋아한 짜장면 맛이 아니란 걸 알아챘다. 젓가락을 든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고 아이들을 위해 만든 음식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또 내 차지가 되고 말았다.(엄마들의 살은 보통 이런 식으로 찐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날이 돌아왔다. 식당 출입이 가능하고 맞이한 첫 주말에 우리 가족은 당연히 짜장면을 먹기로 했다. 먹으러 가기 며칠 전부턴 첫째와 둘째 입에선 짜장면 얘기가 수시로 흘러나왔다.
“엄마, 우리 주말에 짜장면 먹으러 가지? 와 신난다. 드디어 짜장면 먹으러 간다. 야호!!”
“엄마, 난 짜장면하고 탕수육도 먹을 거야.”
"엄마, 근데 언제 주말 와. 빨리 먹으러 가고 싶어."
아이들의 짜장면 타령에 못 이겨 우리 가족은 예정시간보다 일찍 아이들이 고대하는 그곳으로 가기 위해 서둘러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그랩을 탔다. 내 시선은 그동안 그리웠던, 보고 싶었던 풍경들에 잠시 멈춰 섰다. 태풍으로 계속 비가 내렸던 하노이는 어느새 가을에 성큼 다가가 있었다. 꽃과 나무가 바람에 흐느적거리는 모습, 오랜만에 둘러보는 동네 풍경,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는 식당, 빗방울을 튀기며 활기차게 지나가는 오토바이, 오토바이를 타면서 능숙하게 비옷을 꺼내 입는 베트남 사람들까지. 예전엔 이런 모습은 아무 생각 없이 스쳐가는 일상이었다. 사회적 격리를 3달 동안 하다 보니 그 일상을 무탈하게 누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이지 알았다. 이렇게 짜장면을 먹으러 가는 길 또한 '행복함' 그 자체란걸.
주말에 외식을 고대한 이는 비단 우리 가족만이 아니었나 보다. 식당 주변 카페와 음식점에는 많은 사람들이 보였고 평소 단골로 가던 중국집도 어린이를 포함한 가족 손님으로 북적였다. 밀려오는 손님에 사장님 얼굴에도 오랜만에 웃음꽃이 만발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짜장면, 탕수육이 등장했다. 3개월 만에 보는 비주얼이다. 아이들의 동공은 오로지 짜장면을 향해 흔들리고 있었다. 간절히 바라던 대상을 코앞에서 마주할 때 뿜어져 나오는 설렘이 동공에서 느껴졌다. '다 먹어버리겠다'는 굳은 의지와 함께 면을 뚫고도 남을 레이저가 발사됐다. 달콤한 짜장 냄새는 내 콧속 끝까지 파고들어 뇌를 자극했다. 이 자극은 어쩌면 아이들보다 내가 더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순간 어린 시절 내가 떠올랐다. 30년 전 짜장면 먹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어린 내 모습을.
30년 전만해도짜장면은 함부로 '고작'이란 말을 붙일 수 없는 아무 날이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졸업식이나 생일날, 밥을 할 수 없는 이삿날과 같이 특별한 날에만 먹는 귀한 음식이었다(탕수육은 꿈도 못 꿨다). 먹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한꺼번에 그 욕구를 해결해서 일까. 짜장면을 먹는 날이면 난 입이 찢어지게 기뻐했고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어른이 먹는 양만큼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어른이 되면서 짜장면은 음식 순위에서 자연스레 뒷전으로 밀려났다. 친구들과 약속을 잡으면 우린 짜장면보다 좀 더 우아하게 면을 돌돌 말아먹는 스파게티나 칼질이 필요한 스테이크, 피자 등을 먹었다. 짜장면은 어느 순간 흔하디 흔해 아무 때나 먹을 수 있고 계속 입 주변을 닦아줘야 하는 먹기 불편한 음식으로 치부한 적도 있었다.
3개월 만에 맛본 짜장면은 '세상에서 짜장면이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했던 어린 나를 다시 소환했다. '맛있다'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했고 양파와 면은 입안에서 서로 엉키며 살살 녹았다. 아이들이 왜 그토록 짜파게티와 집에서 끓여먹는 짜장면을 거부했는지 한 입을 맛 본 순간 이해가 됐다.
30년 전 나를 떠올리게 한 이 짜장면은 30년이 더 지나면 또 어떤 맛으로 기억될까? 세월이 흘러도 어린 시절에 맛본 짜장면이 기억나듯 우리 아이들이 고대하며 먹은 이 짜장면을 어른이되어서도 기억할지도 모른다. 짜장면은 세월을 거스르고 추억을 소환하는 맛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