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을 남기지 않기

'제로 플라스틱'의 삶을 결심하다

한국으로 떠나기까지 약 20여 일이 남았다. 짐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지만 하나씩 들춰 짐 정리를 시작하니 쓰지도 입지도 않은 묵은 짐들이 한아름 나왔다. 이미 2년 반 전에 짐 정리를 하고 한국을 떠났건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짐들은 뭐지? 이 짐이 과연 우리 가족을 위해 그 쓸모를 충분히 했는지 아니면 제 구실을 못한 체 집구석 어딘가에 쓸모없이 자리만 차지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한국에선 이 짐들을 버리기 위해 돈을 냈을 것이다. 그야말로 사는 데도 돈, 버리는 데도 돈이 드는 세상이다.


태평양에는 우리나라 면적의 약 15배에 이르는 쓰레기 섬, 일명 '태평양 대쓰레기장(Great Pacific Garbage Patch, GPGP)이 있다고 한다. 오늘 내가 버린 쓰레기도 그동안 버렸던 쓰레기도 모두 이곳으로 갔을 테다. 그 양이 어느 정도 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버려야지'라고 생각했던 물건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 쓸모는 있지만 요즘 스타일이 아니란 이유로 버리려 했던 소파, 윗 가죽이 낡아 너덜너덜해진 식탁의자, 튼튼해서 아직 쓸만하지만 둘 곳을 찾지 못했던 티테이블까지. 결국은 새로 사는 대신 가지고 가 수명이 다할 때까지 쓰기로 했다. 소파는 분위기를 바꾸고 싶을 땐 위치를 바꾸거나 소파 커버를 씌우고 해진 식탁의자는 AS를 받을 생각이다. 티테이블은 자리도 많이 차지하지 않기에 소파 앞에 놓아 심플한 인테리어를 연출할 수 있을 것 같다. 마냥 새로운 가구, 새로운 물건으로 집안을 다시 채우려 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얼마 전에 읽은 밀라논나(본명 정명숙)님이 쓴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란 책에서 인상 깊은 구절을 읽었다. 그녀는 의상 디자이너로 한국인 최초로 밀라노에 패션 디자인 유학을 떠났고 페라가모, 막스마라 등 핫한 외국 브랜드를 우리나라에 소개했던 장본인이다. 화려한 삶을 살 것만 같던 그녀는 내 예상과는 정반대였다. 옷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일을 하는 그녀는 정작 자기 옷은 잘 안 산다고 한다.


옷뿐만 아니라 가구, 식기 등 많은 물건을 수명이 다 할 때까지 알뜰하게 쓴다. 전자기기도 꼭 필요 불가결한 가전제품만을 사용한다. 내가 지구 상에 왔다 갔다는 흔적을 가능한 한 남기지 않고 깔끔히 뒷정리를 다 끝내고 떠나려 노력한다.


이 구절을 읽고 나는 지구 상에 얼마나 많은 흔적을 남겼을지 생각해봤다.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쓰레기는 그렇다 쳐도 굳이 남기도 않아도 되는 쓰레기를 남기진 않았는지, 더 쓸 수 있는 물건들을 버리고 새로운 물건으로 채우려 하지 않는지를 생각하니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지난 하노이 생활을 돌이켜보면 그야말로 부끄러움 투성이다. 쓰레기 종량제 봉투가 없다는 이유로 '얼씨구나 좋다 하고' 마구 쓰레기를 버렸다. 여기서는 비닐 안에 쓰레기를 꾹꾹 눌러 담을 필요도 테이핑을 할 필요도 없다. 아파트 각 층에 쓰레기를 버리는 공간이 있기에 추운 겨울이 돼도 외투를 껴입고 1층까지 내려가서 쓰레기를 버려야 하는 수고로움도 없다. 그저 마트에서 무료로 받아온 커다란 비닐(품목별로 나눠서 담아 준다. 한 번 장을 보면 내 손에는 2~3개의 비닐이 들려있다)에 내가 버리는 모든 쓰레기가 한계 없이 채워지면 입은 차림 그대로 복도를 몇 걸음 걸어 쓰레기장 문을 열고 버리면 그만이다. 절차가 가벼우니 쓰레기를 대하는 내 자세도 가벼움으로 치달았다. 아무리 많은 쓰레기를 버려도 '남들도 다 이러고 사는데 뭘'이라며 심각성을 알지 못했다. 쓰레기 종량제 봉투의 위력을 실감했다. 난 종량제 봉투의 테두리를 벗어나면 한없이 쓰레기를 생산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대태평양 쓰레기섬(GPGP)에는 약 80퍼센트가 플라스틱이라고 한다. 이 플라스틱 조각을 비단 바다 생물만 위험할까? 몇 년 전 기사에서 치약 속에 들어있는 작은 알갱이가 사실은 녹지 않고 바다를 오염시키는 미세 플라스틱이란 사실에 놀란 적이 있었다. 치약뿐 아니라 매일 바르는 화장품, 바디용품에도 미세 플라스틱이 들어간다고 하니 사람도 플라스틱의 덧에서 벗어나긴 힘들어 보인다. '사람이 버린 미세 플라스틱, 결국 사람 입속으로 되돌아온다'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우리 집에도 플라스틱이 한 아름 쌓여있다. 대부분을 차지하는 게 바로 생수병이다. 정수기를 설치했지만 하노이의 물상태가 안 좋다 보니 주로 끓여먹는 용도로 정수물을 사용하고 바로 마실 때는 생수를 이용했다. 초반에는 큰 페트병에 들은 생수를 사 컵에 따라먹고 외출할 땐 텀블러에 담았다. 하지만 물을 덜어 먹어야 하니 잘 안 마시게 되고 외출할 때마다 텀블러에 덜고 다시 텀블러를 세척하는 일이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접근하기 쉬워 물을 자주 마시고 외출할 때도 편리하단 이유로 작은 생수를 주로 이용했다. 냉장고 한 칸에 쌓아두니 언제든지 쉽게 물을 꺼내 마셨고 외출할 때도 편리했다.


역시 편리함 뒤에는 그 대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매일마다 십여 통의 생수통이 쌓였다. 하노이에는 분리수거를 따로 하지 않지만 페트병만은 할 수밖에 없었다. 이도 단지 환경을 생각했다기 보단 쌓여가는 쓰레기 부피를 감당할 수 없어서였다. 비워도 비워도 쌓이는 생수통을 보면서 마음 한 구석에서 스멀스멀 죄책감이 몰려왔다. 어디 그뿐인가. 코로나로 인해 더욱 신경 쓰는 손 세척에 빨리 동이 나는 손세정제, 샴푸, 린스, 바디워시, 치약 튜브, 빨래 세제, 주방세제, 청소용품 등 모두가 플라스틱에 담겨있다. 난 그동안 플라스틱이 없으면 씻지도 청소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플라스틱은 썩는 데 100년, 분해하는데 500년이 걸린다는 데 그럼 내가 죽어서도 그 흔적은 계속 떠돈다는 얘기 아닌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뭔가 결심이 필요했다.


그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남 얘기로만 여기던 '제로 플라스틱(Zero plastic)'란 단어가 요즘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다. 완전히 플라스틱 없는 삶을 살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한국에서 사용할 살림살이를 미리 담아놓았던 장바구니를 모조리 비웠다. 그리고 플라스틱을 대신할 제품을 찾아보기로했다. 손 세정제, 바디워시 대신 두 가지를 같이 할 수 있는 비누로, 샴푸는 샴푸바로, 주방세제 대신 설거지 바로, 화장실, 주방 청소는 독한 청소용품 대신 레몬수와 베이킹소다를 활용할 생각이다. 그리고 이제 더이상 작은 생수병은 사지 않기로 했다. 외출할 때도 커피를 사 먹을 때도 텀블러를 이용기로.


불편함은 어쩌면 부지런해질 수 있는 기회인지도 모른다. 흔적을 가능한 한 남기지 않고 떠나려는 밀라논나님의 말을 되새겨 봤다. 흔적을 남기지 않고 자연 그대로를 보존하는 삶. 어쩌면 후세대들이 현세대들에게 가장 바라는 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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