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 많은 비가 쏟아진 토요일입니다.
잠이 안 올 때 유튜브 빗소리 영상을 틀어 놓고 잠을 청한 날이 많아 빗소리는 꽤나 낭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의도까지 달려가야지라고 생각한 건 금요일 저녁이었습니다. 뱃살을 빨리 빼고 싶었고, 며칠 전 동네 달리기를 한 번도 한 쉬고 편안하게 달린 경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 예보가 없던 토요일인데 일기예보는 야속하기만 합니다. 아침부터 비가 내립니다. 배낭을 어깨에 메고 우비를 뒤집어쓴 채 집을 나섰습니다.
시내까지는 비를 관망하며 걸었고 안양천 진입지점 신호등에서 잠시 대기했습니다. 이제는 달려야 할 시간입니다. 우비는 꽤나 거추장스럽습니다.
우비를 벗어던졌고 전혀 그칠 기색이 없는 하늘이라 온몸으로 비를 맞기로 했습니다.
처음엔 잘 달렸습니다.
모자챙을 타고 흐르는 빗물이 얼굴을 적시니 뭔가 새로운 각오라도 생긴 듯 전투적인 생각에 마음마저 굳건해집니다. 그렇게 광명역 화창교를 지났고 금천구청 철산교 고척돔 신정교까지 달렸습니다.
처음엔 의지의 한국인이었지만 속도는 점차 떨어집니다. 빗물에 운동화가 처벅거립니다. 그럴수록 스피드는 초라해지기만 합니다. 의지의 한국인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꾀죄죄한 모습만 천 변 큰 미러등에 비칠 뿐입니다.
신정교에서 뛰는 걸 멈췄습니다. 23킬로 지점입니다. 포기하는 순간은 편하고 좋습니다. 맘속으로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타협점을 찾게 됩니다. 어쩌면 그건 스스로의 위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목교까지 걸었고 5호선 지하철에 몸을 실었습니다.
여의도에 도착하니 여전히 비는 흩뿌리다 못해 폭우처럼 쏟아집니다. 황순원의 소나기에는 맑고 순수한 여자아이가 나오는데 오늘은 보이지 않습니다. 화장실 거울에서 빗물에 젖은 얼굴을 보니 제가 가여워지고 자꾸만 미워집니다. 윤동주는 그 사내가 우물 속에서 그리워진다고 했는데 제 모습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의도 목욕탕에 들어가니 살 거 같습니다. 패잔병이 따뜻한 집으로 돌아온 기분이 이런 게 아닐까 모르겠습니다.
트레이러너 구간 달리기를 시작한 후배와 우중주를 하신 선배님께서 목욕탕에 계셨고 한분 두 분씩 목욕탕으로 들어오십니다.
석가탄신일이자 3일간 연휴, 우천이었음에도 많은 분들이 여의도에서 달리기를 했습니다 .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모두들 달리기를 하셨으니 얼마나 저녁이 맛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