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화뇌동(附和雷同)
나는 누구인가?
가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봅니다.
새벽 산책길에 러닝을 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폼을 제대로 갖추고 달리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숨을 헐떡이며 겨우겨우 뛰는 사람도 보입니다.
저 사람은 왜 달리는 걸까?
건강을 위해서일까?
아니면 유행을 따라가기 위해서?
혹은 누군가에게 러닝 한다고 자랑하고 싶어서일까?
자세히 보니 대부분의 손목에는 스마치 워치가 채워져 있습니다. 자신이 달린 거리를 측정하기보다는, SNS에 인증하기 위한 용도가 더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러닝이 인기를 얻으며 유행이 되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러닝도 유행이라니!
나에게는 유행이란 단어는 낯설게 느껴집니다. 유행을 거부하기보다는, 그저 따르지 않을 뿐입니다.
남들이 해외여행을 가면, 자신도 기를 쓰고 따라가야 체면이 서고 대화거리가 생긴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이들에게 과연 자기 자신이라는 주체성이 존재하는 걸까? 문득 의문이 듭니다.
그들을 보며 부화뇌동(附和雷同)이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릅니다.
남들이 하는 대로 무작정 따라 하는 행동을 뜻합니다. 자신의 취미도 아니고,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남들에게 소외당할까 두려워 억지로 따라 한다면, 그것은 분명 부화뇌동일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며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부화뇌동하는 삶 속에 과연 나라는 영혼이 존재할까? 내가 정말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라면, 그것은 영혼 없는 삶일지도 모릅니다.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억지로 따라 한다면, 과연 즐거움과 행복이 있을까?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지겨워지고 말겠지요. 이는 남들에게 보이고자 하는 욕망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논어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군자는 화합하되 부화뇌동하지 않고, 소인은 부화뇌동하되 화합하지 않는다."
군자는 타인을 자신처럼 여기면 남과 조화를 이루고,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성실히 수행합니다. 그래서 부화뇌동하지 않습니다. 반면 소인은 이익을 좇기에, 이익을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행동을 같이 하지만 진정한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에 부화뇌동하게 됩니다.
"이 행동이 내 가치와 맞는가?"
남의 말에 무조건 따라가기보다는 스스로 질문하고 고민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충분한 정보를 확인하고, 사실 여부와 배경을 꼼꼼히 조사하며 다양한 시각을 접해 균형 잡힌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오늘 하루, 남의 의견에 휩쓸리지 않고 나만의 판단과 생각으로 행동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