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색 공원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나에게 알맞은 삶

지기금지(知己今止)

by 무공 김낙범

멈추지 못한 삶

40세가 되던 해, 나는 완전히 탈진해 있었습니다. 잦은 회식과 폭음으로 인해 몸이 견디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회식에 빠질 수는 없었습니다.

약국에서 술 해독제와 위장약을 미리 복용한 뒤 술자리에 나갔습니다. 건배가 거듭되며 술에 취했고, 술기운에 이끌려 계속 마셨습니다.

마님은 술을 그만 마시라고 했지만, 술자리에서 술잔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술잔을 거절하면 뒤따라오는 후폭풍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기금지(知己今止), 자신을 알고 지금 멈춘다는 뜻인데, 멈추지 못하는 자신을 원망하며 몸을 혹사시켰습니다. 이대로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자신을 아는 순간

어느 날 퇴근길, 갑작스러운 어지럼증으로 쓰러졌습니다. 응급실로 실려가 위내시경 검사를 받은 결과, 십이지장 출혈이었습니다.

그날 하루 종일 석탄 같은 흑변을 봤는데, 그것이 바로 십이장 출혈로 인한 혈변이었다고 합니다. 과도한 음주로 인해 십이지장이 견디지 못하고 천공이 생기며 출혈이 발생한 것입니다.

출혈을 막기 위한 응급 수술을 받고 일주일가량 입원했습니다. 병실에 누워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그 질문 끝에, 외적 성공에만 집착하며 나를 돌보지 않았던 자신을 탓하게 되었습니다. 몸의 신호를 외면했고, 가족과 함께 할 시간도 잃었습니다. 취미도 없었고, 진정한 친구도 없이 오직 술을 함께 마시던 동료들만 있었습니다.


멈추는 용기

의사의 조언을 듣고 결단했습니다. 이제는 나 자신을 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그리고 회식 자리에서 술잔을 거절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처음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술잔을 받지 않으면 따돌림을 당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남의 눈치를 보기보다는, 오직 나 자신으로 살아야 한다는 결심이 앞섰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술잔을 거절해도 따돌림은 없었고, 오히려 일찍 귀가할 수 있었습니다.

체력이 회복되기 시작했고, 가족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가장 놀라운 변화는 마음의 평온이었습니다. 관계를 정리하기 시작했고, 오직 나 자신의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는 오직 멈춤이 주는 효과였습니다.


멈춤이 만드는 삶

그 이후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업무에 자신감이 붙었고, 대인관계는 더욱 깊어졌습니다.

그렇게 얻은 것들은 건강, 가족과의 시간, 진정한 휴식, 성찰의 시간이었습니다. 부족할 줄 알았던 삶은 사실 매우 풍요로워졌습니다.

지기금지(知己今止), 자신을 알고 지금 멈춘다는 말의 역설은 이것입니다. 멈출 때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 숨을 쉴 때 비로소 더 나아갈 에너지가 생긴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멈출 줄 아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나에게 알맞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지금 멈추어야 하지 않을까?" 스스로 자신에게 물었을 때, 정직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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