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삼척(吾鼻三尺)
코앞의 진실
연말이 다가오면 우리 부서는 결산 준비로 매우 바빠 매일 야근을 합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밀려드는 업무에 모두 정신없이 일합니다.
어느 날, 옆자리 동료가 집에 일이 있다며 자신의 일을 대신 처리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순간 난감했습니다. 내 일도 벅찬데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오비삼척(吾鼻三尺)의 상황이 닥친 겁니다.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그 친구는 “부탁할게.”라는 말만 남기고 퇴근했습니다.
결국 내 코가 석 자인데 남의 일까지 떠안고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하지만 밤을 새우며 일했다고 아침에 퇴근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습니다.
거절하지 못한 대가
그날 이후 깨달았습니다. 내가 ‘노’라고 말하지 못한 것은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거절하면 관계가 나빠질까 두려웠고, 이기적으로 보일까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일처리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상사에게 질책을 들었고, 몸은 망가져 다음 날 업무 효율은 더 떨어졌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 동료가 미안해하기는커녕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에 있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내 코가 석 자인 상황에서 남의 일을 떠안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무책임한 짓이라는 것을.
거절하는 용기
그 후로 나는 거절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비슷한 상황이 닥쳤을 때,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내가 할 일도 감당하기 힘들어. 다음에 여유가 있을 때 도와줄게.”
처음에는 어색하고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상대방은 이해해 주었고, 오히려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했습니다.
내 상황을 명확히 전달하는 것은 관계를 해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서로를 존중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처리하고 나니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그제야 스스로 자처하면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 코 석 자를 먼저 챙기는 삶
오비삼척이라는 말은 자신의 처지가 어렵다고 한탄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먼저 책임을 지라는 지혜입니다.
자신의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관계를 의식하며 다른 사람을 돕겠다는 것은 허울 좋은 위선일 뿐입니다. 진정한 배려는 내 몫을 다하고 난 후에 가능합니다.
요즘 나는 매일 아침 오늘 반드시 해야 할 루틴을 실행하며 오늘 할 일을 메모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완수하기 전까지는 다른 일에 쉽게 눈을 돌리지 않습니다. 언뜻 융통성이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이것이야말로 나 자신에게 책임지는 태도입니다.
내 코 석 자를 먼저 챙길 수 있을 때, 비로소 세상을 향해 손을 내밀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그것이 바로 오비삼척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자기 계발의 출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