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생 우리 친정엄마와 44년생 시어머니는 4월이 되면 이렇게 서로를 애타게 부르기 일쑤다. 고사리, 다 고사리 때문이다.
제주의 4월은 한바탕 고사리와의 밀당이다. 어느 연인들의 사랑이 이리도 애틋할까? 새벽부터 ‘준비~ 땅!’을 하고 있었던 것처럼 고개를 얌전히 외로 꼰 고사리를 누군가 먼저 낚아챌까 조바심 섞인 부푼 마음들이 한라산으로 들판으로 총총 떠간다. 어지간해서는 그 일방적인 마음을 막아설 수 없다. 많은 고사리꾼들이 "아 그 사돈 양반들~"하고 알아볼 정도로 이렇게 사돈끼리 케미를 뽐내는 이들은 흔치 않다.
고사리 장마가 지나면 자가용으로 기동력을 무장한 전문적인 고사리꾼들이 누구도 알 수 없는 자신들의 고사리 밭(부부 사이에도 고사리밭은 알려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으로 출동해서 먼저 고사리를 훑어낸다. 그들이 빠진 자리에 버스를 타고 고사리꾼 2진들이 도착하는데 아무리 한 자리에 아홉 번이나 새로 난다고 하는 고사리라 한들 우리 사돈 팀, 남들이 보면 그냥 할머니 팀 차례까지 오기란 쉽지 않다.
서로 선호하는 고사리도 달라서 친정엄마는 험한 가시덤불을 헤쳐야만 만날 수 있는 굵고 긴 흑고사리를 꺾느라 숲 깊숙하게만 가고 시어머니는 안전한 게 제일이라고 사방이 탁 트인 들판에서 작고 부드러운 백고사리만을 고집하신다. 그러니 함께 갔어도 어느새 서로를 찾느라 목이 쉴 수밖에.
전문 고사리꾼들이 하루에도 몇 근씩을 해서 제주고사리라고 비싸게 팔기도 하지만 우리 사돈 팀들은 많이 꺾어야 작은 가방 하나 정도다. 그걸 짊어지고 와서 바로 삶고 대나무발에 널어 좋은 햇빛에 말리는 적지 않은 과정이 기다린다. 다 마르기도 전에 비라도 올라치면 또 그 고사리들을 방으로 들여 선풍기를 튼다, 보일러를 켠다 해가며 애지중지가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게다가 무리한 무릎이고 다리고 허리 때문에 정형외과를 필수코스로 다녀와야 하는데도 기어이 봄 한 철 고사리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를 딸이자 며느리인 나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이게 다 고사리 코인사 허는 거라(하는 거야). 뭐 팔아서 돈 벌려는 게 아니라 제사 때라도 좀 올리라고 고마운 사람들, 이웃들한테 나누는 재미주게. 그런 걸 고사리 코인사랜 허메(고서리 코인사라고 해). 고사리 꺾어서 재밌고 고마운 사람들한테 나눠주니까 좋고게. 그러니까 안 갈 수가 없주게(없지).”
손인사, 눈인사는 들어봤어도 코인사라니, 코를 땅에 박고 찾아야 하는 데서 온 말일까? 사실 제주 고사리는 '궐채'라고 불리며 임금님께 진상을 올릴 정도로 쫄깃한 맛과 향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춘궁기에 먹거리를 대신하기도 하고 특히 제삿상에는 빠지지 않는 중요한 채소이다. 그런 고사리이기에 '고사리 혼 쿨에 절이 혼 번'이라는 말처럼 고사리 하나 꺾을 때마다 절 한 번을 해야 하는 그 깊은 수고로움이 평소 고미운 지인들에게 마음을 전하는 몇 안되는 일이라고 해마다 고사리철만 기다리던 아기자기한 두 사돈. 내가 결혼한 지 20년이니 그 사이 두 분 어머니는 여기저기 고장나고 녹슬어 예전 같지 않아 해마다 고사리 코인사를 할 수 있을까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 나누던 두 사돈.
"느네 시어머니 고사리 꺾으레 다녀와시냐?"
작년부터 친정 엄마의 4월 안부 전화는 꼭 이 물음으로 시작된다. 코로나와 아픈 다리로 결국은 고사리 코인사 길을 나서지 못하고 계신 친정 엄마. 시어머니와 형님이 꺾어온 고사리가 잘도 아꼽다(아주 귀엽다)며 보고 또 보기에 바쁘시다. 고사리가 많이 났다는데, 나서기만 하면 고사리에 달래에 두릅까지 마음은 온 들판의 초록을 다 가져올 참인데 그저 이웃 삼춘들의 고사리 안부에 만족해야 하는 친정 엄마만 애돌앙(애닮아)하는 아쉬운 4월, 봄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