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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무는바람 May 05. 2022

<밥, 2>아랫목 사랑 한 그릇

철원의 겨울, 그러고도 신새벽

부대에 비상이 걸리면 

아버지는 그 새벽길을 

칼바람과 함께 걸어야 했다


다녀오마 목소리가 

얇디 얇은 시골집 문풍지에 

어두운 푸른 빛으로 떨리면


60촉 전구 아래 이불 속에선

이 눈길, 이 바람에 

우리 아부지 혼자 어찌 걸어가누

노랗게 어린 걱정이 빙글거렸다


꼬박 만 하루의 비상근무는

하얀 찬바람을 길게 끌고 들어오는

아버지의 작달만한 그림자로 끝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아랫목에 뜨끈한 밥 한 그릇 묻어놓았다

설설 끓는, 하얗게 반짝이는 진주 같은 마음이

이불을 덮어쓴 채 아버지를 기다렸다


누렇게 달뜬 아랫목 장판처럼

따끈한 사랑 한 그릇에

어린 걱정도 엄마의 정성도  

새벽 눈길 탁탁 털어내는 아버지의 고단함도

들어앉는 겨울 바람과 함께 

눈물처럼 녹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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