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독서를 재테크로 연결한 7가지 사례
집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필자에게 집은 자립이다. 자립은 빠를수록 좋지 않을까. 후배 직원들에게 최대한 빠른 나이에 본인 명의의 집을 소유하라고 말하곤 하다. 집을 소유하는 것은 든든한 믿을 구석이 하나쯤 생기는 것과 같다. 근로소득과 함께 자산 증가 속도도 빨라진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은 부모님께 집을 지어 드린 것이다. 그 돈으로 재테크를 하는 것이 좋았을 수도 있다. 사실 이 부분에서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부모님은 세월을 기다려 줄 시간이 많지 않다. 10년 더 빨랐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크다.
■ 우리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2020년 '집짓기'를 마음먹으면서 집에 관한 생각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가장 큰 소득은 집 짓기를 통해 부모님과 대화가 많아진 것이다. 아버지는 결혼하고 자식들이 셋이 태어난 30대 후반에 손수 집을 지으셨다. 아버지한테 '집'은 보금자리, 성실함의 집이었다. 아버지는 왜 도시로 나가지 않았을까? 결혼하여 엄마와 도시로 나와 터를 잡았더라면, 그런 가능성이 많았을 시대인데. 왜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종종 했다. 그 고단한 삶이 시골이든 도시든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못 가게 했을까? 8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의무감이었을까? 그런 질문으로 아버지의 손을 잡는 일이 많아졌다.
엄마는 아버지를 보고 첫눈에 반했단다. 부모님은 중매를 통해서 결혼하였다. 엄마가 아버지를 처음 본 날은 외갓집에서였다. 아버지가 대문을 들어서는 모습을 이모들과 뚫어진 창호지 문으로 보았단다. 엄마는 아버지를 보는 순간 ‘됐다’면서 손뼉을 쳤단다. 아버지는 키가 크고 훤칠했다. 그 당시 180cm가 넘는 키는 흔치 않았다. 2대8 가르마에 진한 눈썹과 갸름한 콧날에 선한 이미지가 좋았다고 한다. 두 분은 이렇게 인연을 맺고 55년을 함께 하고 있다.
엄마한테 집은 '자존심'이었다. '시골집'이 아닌 '도시의 집'을 원했다. 엄마는 결혼 전 중매쟁이를 통해서 ‘아버지가 서울에 직장이 있고, 결혼하면 서울에서 살 것이라고’ 알고 시집왔다. 결혼하고 한 달이 넘었는데 아버지는 서울에 갈 생각도 준비도 없었다고 한다. 엄마는 속은 것이다. 보따리를 쌌다. 하지만 실행할 수 없었단다.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칠 수가 없었기에 저 착한 사람이 망가지면 어떡하나 하는 측은함에 보따리를 다시 풀 수밖에 없었다. 세상 모든 사람은 집에 대한 사연을 갖고 살아간다.
집에 대한 깊은 생각을 안겨준 두 권의 책을 소개한다. 먼저 에드윈 헤스코트의 《집을 철학 하다》는 "집은 당신의 또 다른 인격이다."로 서문을 시작한다. 집에는 살고 싶은 삶이 담겨 있다. 산다는 것은 집에 흔적을 남기는 일이며, 집은 기억을 쌓아 만들기도 한다. 집을 짓기 전에 생각해 봐야 할 것들 ‘27개 삶의 공간에 대한 깊은 생각’을 담았다. 지금부터 각자 살고 있는 집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창문, 책, 다이닝 룸, 부엌, 계단, 지하실과 다락, 침실, 옷장, 욕실, 서재, 베란다, 현관문, 홀, 거실, 벽난로, 문손잡이, 문, 오두막, 수영장, 지붕, 울타리, 거울, 조명, 바닥, 벽, 복도, 천장』까지 집을 짓게 되면 반영해야 할 요소들이다. 두 번째는 이일훈·송승훈의 《제가. 살고. 싶은. 집은….》 건축주 국어 선생님이 독서를 위한 책 나눔의 집을 짓고 싶어 건축가에게 설계를 의뢰한다. 그리고 낡은. 책이 있는. 거친. 돌집. '잔서완석루' 짓는 과정을 책으로 담았다. 건축가와 건축주의 소통 방법은 이메일이다. 건축주는 삶의 방향성, 책을 가까이하고 책 읽는 공간을 공유하는 집을 희망한다. 건축가는 어떻게 짓는가보다 어떻게 사는가를 먼저 묻는 게 건축이라고 여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건축주와 건축가를 존경하게 될 것이다. 필자는 이 책을 통해서 ‘책이 있는 집’을 지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집 지을 땅을 결정하다.
바닷가 어느 곳에 전원주택을 짓고자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접근성과 관리의 문제, 서울을 떠나서 무엇을 할 것인지 답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집짓기를 실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 나는 바닷가에 집을 짓고 싶어. 제주도는 어때요?”
“이놈아 아무도 없는 곳에 집 저서 뭐 하려고, 한두 푼 드는 것도 아니고 차라리 여기다 져.”
2021년 봄볕이 따스한 주말 오후에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엄마 우리 밤나무 산에 집 지으면 어떨까?”
“한번 가보자.”
엄마가 가리키는 땅 위에 섰다. 편안함이 느껴진다. 발아래 들판이 내려다보이고 볕이 바른 전원주택지로 안성맞춤이다. 그날 집 지을 땅을 여기로 결정했다. 집터를 결정했으니, 시공사를 알아보고 건축 예산을 뽑았다. 인허가 비용, 건축비, 토목공사비, 인테리어와 가구 비용, 취득세 등 내가 충당 가능한 예산 범위 내에서 자금을 조달했다. 오피스텔 한 채와 아파트 분양권 하나를 처분했다. 이렇게 집 짓기는 현실이 되었다.
■ 설계는 엄마 취향을 반영
시공사와 도급계약을 마치고, 시공 사례집을 엄마에게 보여 드렸다. 부모님한테는 집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 기둥이 있고, 지붕에는 기와가 있어야 한다는 보통의 집을 생각하신다. 요즘 유니크하게 설계된 집은 집 같지 않다고 하셨다. 엄마의 의견을 반영하여 ‘지중해풍 전원주택’으로 선정하고, 기본적 설계도 부모님의 의견을 따랐다. ‘기역 자(ㄱ)’ 집은 어두우니 ‘일자(一) 집’을 선호했고, 땅의 모양을 반영하다 보니 남서향에서 15도가량 남쪽으로 틀어 배치도를 그렸다.
2021년 3월 착공하여 그해 12월에 준공했다. 집 한 채 지으면 10년은 늙는다는 말이 있다. 나는 주말에 한 번 내려왔고 공사 감독은 전적으로 엄마가 했다. 감독이랄 게 뭐 있나,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번 새참도 갖다 주고, 이거는 뭐 하는 데 쓰는지 물어보는 수밖에. 골조까지는 빠르게 공사가 진행됐다. 그런데 현장 소장이 연락 두절, 알아보니 시공사로부터 인건비를 못 받아 공사에서 손을 뗐다고 한다. 여름 장마가 오기 전에 지붕 공사를 끝내는 공정이었는데, 차일피일 공사가 미뤄졌다. 시공사 대표는 전화도 안 받고 만나기도 힘들었다. 시공사가 자금난으로 여기서 받은 공사 대금으로 돌려막기를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이러다가는 준공도 못 할 것이고 여기에 많은 신경을 쓰던 엄마의 건강이 나빠질까 걱정되었다.
특단의 조치를 쓸 수밖에. 직영공사를 하기로 마음먹고, 남은 공사비 30% 대금을 직 발주하여 공사를 마무리 한다는 내용으로 시공사 대표와 합의서를 작성했다. 우여곡절 끝에 21년 12월 초 준공허가를 마치고 헌 집에서 새집으로 이사를 하였다. 1층은 부모님 공간으로 인테리어, 가전제품, 가구 일체를 엄마 의견을 모두 반영하였다. 싱크대 높이도 낮게. 일반적인 주방 높이보다 낮으니 자녀들은 좀 불편하다. 나중에도 엄마를 생각하라는 의미로 낮게 했다고 가족들에게 설명했다. 2층은 자녀들 공간으로 내 서재를 들였다. 마룻바닥에 어울리는 원목 책장을 2개 주문했다. 천여 권은 족히 꽂을 만하다. 서울 집의 책들을 매주 이동하여 이곳에 꽂았다. 한 달에 한 번 조카들을 불러서 이곳에서 독서토론도 하고 세상 사는 이치를 가르쳐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희망 사항에 그치고 말 것 같다. 아직 한 번도 조카들과 함께 독서모임을 못 했으니 말이다.
■ 운필각이라 이름 짓다.
2021년 엄마는 여든 살이 되셨다. 준공이 5개월 늦어졌지만, 팔순 생신 선물로 전원주택에 입주하셨다. 집 명의도 엄마 소유로 해드리고 싶었다. 결론은 건축 허가상의 문제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서운하셨을 것 같다. 부모님 성함의 가운데 글자인 '운'과 '필' 한 글자씩을 따와서 ‘운필각’이라 이름 지었다. 항시 부모님을 생각하자는 의미를 담았고 가족에게 최선을 다해준 감사함을 담았다. 짓고 보니 이름도 운치 있고 멋스럽다. 집은 부모님의 자존심이다. 45년 전 우리가 살던 헌 집은 아버지가 직접 지으셨다. 내가 어릴 적이라 기억은 나지 안지만 동생이 그 집에서 태어났다. 여름밤 옥상에 누워 별을 볼 때면 낮 동안 햇볕을 받은 옥상 시멘트 바닥의 온기가 등에 전달되어 따뜻했다. 마당에는 10m가 넘는 큰 살구나무가 있었다. 4월이면 살구나무꽃이 떨어져 마치 눈이 내린 듯 마당을 하얗게 덮었다. 그 당시 초인종과 전화기가 우리 집에 처음 놓였다. 4남매는 집에대한 자부심이 컸다. 하지만 40년을 훌쩍 넘긴 헌 집은 많이 불편했다.
집을 짓기로 결정했을 때 이왕이면 엄마의 자존심을 세워 드리고 싶었다. 2층으로 지은 것도 그런 의미가 있다. 멀리서 보면 꽤 커 보인다. U자형으로 산에 둘러싸인 꼭짓점에 집 한 채가 자리 잡았고, 소실점 효과로 매우 돋보인다. 푸르른 녹음과 황토색 기와는 보색 대비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래서인지 보는 사람마다 집 잘 지었다고 한마디씩 하니 부모님이 좋아하신다. 집을 지으니 4남매가 이곳에서 자주 모인다. 조카들도 좋아한다. 헌 집에서는 우리도 자고 가는 일이 별로 없었다. 춥고 불편하니까. 집을 지으며 부모님과 가까워졌다. 부모님의 삶이 나한테 투영된 듯하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아버지도 내 나이 적에 하셨을 것이다. 아버지의 굽은 허리가 세월이 고단했음을 보여준다. 매주 운필각에서 보내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 엄마의 일기
새집에 입주하는 날 엄마는 일기 쓰기를 마음먹었다. 형은 칸이 넓은 노트와 볼펜 여러 자루를 사 왔다. 노트 첫 장에 형은 엄마에게 감사의 편지를 썼고, 그다음 장부터 엄마의 일기는 시작한다. 새집에 들어오는 날의 느낌, 형과 내가 샘터를 만드는 과정, 형이 장독대를 만든 일, 시집오던 날, 우리 학교 다닐 때 모습, 고란이로부터 텃밭을 지키려는 노력, 저녁 창밖 풍경, 엄마 학창 시절, 외갓집 외할머니와 이모들, 나무와 꽃 심기에 관한 내용 들이다.
엄마의 일기를 엮어 제목을 붙이면 책이 될 수 있을 거 같다. 제목은 '엄마의 정원'으로 하고 삽화는 형이 그리면 좋을 것 같다. 형은 미술을 배운 적은 없지만 꽤나 그림을 잘 그린다. 엄마의 글, 형의 삽화, 동생은 편집 디자인, 나는 사진과 홍보를 담당하면 좋을 것 같다. 작년 봄에 딱새 한 쌍이 싱크대 후두 속에 집을 짓고 알을 깠다. 환풍기 출구 쪽으로 들어온 것이다. 알이 부화하여 새끼가 되었는지 짹짹 소리가 나고 어미 새는 부리나케 먹이를 갖다 바친다. 엄마는 요놈들이 다 커서 집을 나갈 때까지 싱크대 환풍기 사용을 금하였다. 집에 들어온 생명이니 보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엄마가 실제로 경험한 이야기 중에 '은혜 갚은 고양이'가 있다. 가슴 따뜻한 내용이라 간략히 내용을 적어보면 이랬다.
오랜 가뭄으로 논물도 메말라가던 어느 봄날 아주 바짝 마른 고양이 한 마리가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기에 물과 생선 대가리 등 먹을 것을 놓아주니 와서 먹고 가더란다. 이렇게 한 두 달 우리 집에 와서 동냥하던 고양이가 새끼를 한 다섯 마리 몰고 나타난 것이다. 엄마 말로는 임신했던 암 고양이였던 모양이다. 아무튼, 동냥하던 고양이가 새끼들까지 줄줄이 달고 나타났으니 어미 젖뗄 때까지는 물과 음식을 제공해야 했다. 그랬는데 어느 날부터 이상한 일이 반복해서 벌어졌다.
발단의 배경은 헌 집 대문 앞에서였다. 아침 문을 열러 나갔는데, 대문 한 복판에 손바닥만 한 개구리가 얌전히 누워 있었다. 다음날은 쥐가 아무런 상처도 없이 자고 있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단다. 이번엔 다람쥐가 같은 자리 같은 형태로 누워 있었다. 그런데 4일째 되는 날 문제가 생겼다. 여전히 대문 한가운데 알 수 없는 푸루줍줍 한 뭔가가 동그랗게 또아리를 틀고 있어서 발로 건드렸더니 그놈이 뱀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뱀이 아무 상처도 없이 또아리를 틀고 죽어 있는 것도 이상하고, 누가 대문 한가운데 매일같이 개구리와 쥐, 다람쥐, 뱀을 놓고 갔나 생각해 보니 집에 오던 고양이가 생각나더란다. 나름 힘들 때 도와준 엄마한테 은혜를 갚고자 고양이가 사냥한 것을 먹지 않고 갖다 바친 것이라는 엄마의 해석이다. 이 새끼 딱새는 어미 새가 되어 무엇을 물어다 엄마에게 바칠지 궁금하다.
지금까지 세상을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부모님께 집을 지어드린 것이다. 10년만 더 빨랐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80이 넘은 엄마는 텃밭에 뭐라도 심어 자식들 나눠주고 싶은 마음과 예쁘게 정원을 가꾸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고 말씀하신다. 엄마한테 내 것이란 욕망이 생긴 것이다. 내 집, 내 텃밭, 내 정원은 엄마를 즐겁게 한다. 집을 짓고 나서 엄마는 삶의 의욕이 더 커진 것이다. 건강이 언제까지 허락할지 좀 더 빨리 이 공간을 만들었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도 크다. 그리고 고민거리도 하나 있었다. 시골에 집 지을 돈으로 재투자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반문하기도 했다. 부모님의 시간은 더 이상 기다려 주지 않으니 집을 지은 것은 잘한 결정이다.
임야를 대지로 변경하니 땅값도 많이 올랐다. 집이 지어짐으로 인해 도로포장이 되고 전기와 수도가 들어오게 되면서 방치된 임야가 농원으로 바뀔 잠재력이 보인다. 사람의 접근이 자연을 훼손 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사람의 활동이 자연에 활기를 불어넣어 더 많은 사람의 품으로 보내줄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집 한 채가 주변의 경관과 토지 이용에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주변 지역이 산업단지로 변하고 있다. 마을 입구 도로가 4차선으로 확장 중이다. 부동산 개발 압력의 확산은 토지의 활용 가치를 크게 해준다. 부모님 성함의 가운데 자를 따서 지은 운필각은 운필 정원을 만들고, 운필 농원으로 커질 것이다. 이곳에 운필 도서관, 운필 카페, 운필 게스트하우스, 운필 미술관이 만들어지는 것을 부모님과 함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