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단상: 시즌2 ⑦ ― 지하의 구조』

_기억은 아래로 스며든다

『퇴근길 단상: 시즌2 ⑦ ― 지하의 구조』

― 기억은 아래로 스며든다



퇴근길, 나는 오늘 지하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는 1층까지만 운행됐고, 지하로 가는 문은 자동으로 닫히지 않았다.

그 문 너머엔 콘크리트 벽과 노출된 배관, 바닥에 얼룩진 물기,

그리고 약간 눅눅한 공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곳을 쓰레기 분리수거장이라 불렀고,

누군가는 기계실, 혹은 전기실이라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걸 구조의 ‘무의식’이라 부르고 싶었다.

보이지 않지만 모든 걸 지탱하는 층.


누구도 머무르지 않지만, 모두의 삶이 통과하는 곳.



설계자로 일하던 시절, 나는 지하를 기능적으로만 다뤘다.

전기실, 통신실, 저수조, 배관 통로.

도면의 끝에서 밀려나듯 존재하는 공간.

무언가를 쌓는 곳이 아니라, 무언가를 숨기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감정도 기억도, 결국 그 아래에서 시작되는 것 같았다.



지하는 낮지 않다.

도시는 수직으로 쌓이지만, 기억은 반대로 스며든다.


누군가 흘리고 간 말, 잊힌 이름, 지워지지 않은 냄새.

그건 위로 올라가지 않는다.

모두 아래로 내려가, 가장 어두운 층에 모인다.


지하의 공기가 축축한 이유는

사람들이 감춰놓은 감정이 아직 증발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한동안 그 공간에 가만히 서 있었다.


기계음은 일정했고, 형광등은 미세하게 깜빡였다.

천장은 낮았고, 숨은 짧아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가라앉았다.


세상은 위에서 돌고 있지만,

삶의 무게는 아래에서 받쳐지고 있다는 실감.

그건 도면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종류의 감각이었다.



누군가 옥상에서 도시를 내려다본다면,

나는 지하에서 도시의 바닥을 느낀다.


그 바닥은 단단하지 않다.

물렁하고, 젖어 있고, 아직도 누군가의 체온을 기억하고 있다.


이곳은 설계가 끝나는 지점이 아니라,

기억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퇴근길, 나는 지하의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는 소리는 옥상에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와 비슷했다.


어느 것도 머무르지 않지만,

모든 것이 스쳐 지나가는 공간.

말하지 않아도, 설명되지 않아도,

남겨진 감정이 벽에 스며들어 남는 구조.



옥상에서 바람은 위로 흘렀고,

지하에선 기억이 아래로 침전된다.


구조는 어디에서나,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다.





2025.06.22.


도시의 바닥에서,

기억의 무게를 잠시 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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