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08.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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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e. 운명이라 읽고 인연이라 쓴다.
순간이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 곁에서 남은 길을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인연이라는 것이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고달픈 삶의 길에서 만난 당신이라는 선물을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맺지 못한다 해도 후회하지는 않을 거라고, 그래,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 마흔몇 고개를 넘어오면서 얻은 슬픈 예감이다. 아니, 예감이라기보다는 받아들임에 가깝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사랑이 변해가는 것을, 그럼에도 무언가는 남아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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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당신에게 그를 소개해주려 했다.
이제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취한 듯 만남은 짧았었다. 그때는 새내기였으니, 기억하기로는 채 며칠인가였다. 하지만 그 며칠이 어떤 사람에게는 평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 사이 아주 간간이 소식을 듣고는 있었지만 하루하루가 바빠서 그를 잊고 있었다. 아니, 잊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는 그렇게 현현했던 것이다.
몰랐다. 짧았지만 빗장을 열어 그가 그렇게 들어왔었다는 것을. 어떤 책들은 그렇다. 처음 읽었을 때는 그저 하나의 이야기였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것이 내 안에 어떤 방을 만들어놓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사이 그는 두꺼운 하드커버로, 문학전집 판본으로,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그 자리에 있었던 듯하다. 마치 오래된 친구가 계속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책장 한구석에서 때로는 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때로는 햇빛을 받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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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곳을 전화하여 그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리 찾아갔다.
하루키가 싫어했던 '상실의 시대' 대신 '노르웨이의 숲'에 충실했던 민음사. 2017년 8월 7일에 발매된 그 책을 훑어보던 중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들어온 '특공대'? 어, 이건 뭐지? 주춤거렸다.
'돌격대' 대신 나타난 '특공대'. 그래, 그럴 수 있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어색했다. 번역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긴 하지만, 어떤 단어들은 바뀌면 안 되는 것 같은데.
암스테르담 운하를 보면서 자위하는 '특공대'는 떠오르지 않았다. 첫사랑이 아주 많이 늙어버린 느낌이었다. 세상 풍파에 찌들어버린. 어쩐지 그 단어 하나가 바뀐 것만으로도 레이코의 얼굴이 달라져 보였다.
외면했다. 그래, 다시 문학사상사로 돌아가자. 2000년 10월 2일에 발매된 그 책을 집어 들고 길로 나와 거리를 걸었다. 오래된 연인에게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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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당신은 알 것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지만 30년을 사랑해 왔고 그렇게 살아갈 사람이라는 것을. 녹슬지 않는 사랑을 늘 닦아서, 먼 길 돌아 만나게 되는 날까지 기억할 것이다.
사랑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불타오르는 사랑, 차분히 우러나는 사랑,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사랑. 책을 향한 사랑이 그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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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여인들. 나오코, 하츠미, 미도리, 그리고 레이코.
레이코가 섹스를 청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녀가 쳤던 바흐의 푸가는 1000번째였을 것이다. 998번이나 999번이었다 해도 상관없지만. 지금 흐르는 낡아빠진 스피커 음처럼 말이다.
가끔 그렇게 그녀는 나에게 편지를 보내는 듯했지만 잊고 있었다. 어떤 문학 속 인물들은 그렇다. 책을 덮고 나서도 계속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처럼.
내가 그녀를 사랑한 것은 그녀의 그런 애처로운 나사 빠진 상황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녀의 치유 같은 섹스, 악수 같은 사랑에 반해버렸기 때문이다.
젊고 미숙했던 나는 쾌락을 위한, 번식을 위한, 집착을 위한 것들만 알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소유욕과 질투를. 30년이 흐른 후 이제는 그녀와 같은 사랑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치유 같은.
기억의 공유, 담백한 호감, 정서적 밀착. 이런 단어들이 이제야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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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를 안고 조용히 페니스를 움직였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 안에 넣은 채 이야기를 하니 정말 기분 좋았다. 내 농담에 그녀가 쿡쿡 웃으면 그 진동이 페니스에 전해졌다. 우리는 오래오래 그렇게 안고 있었다."
나는 이제껏 섹스를 통한 일체감을 이만큼 잘 묘사한 문장을 보지 못했다. 이것이 하루키를, 그리고 그녀를 기억하는 이유다.
많은 작가들이 사랑을 쓰지만, 이렇게 순수한 친밀감을 그려낸 경우는 드물다. 욕망과 애정이 구분되지 않는 순간,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순간을 이보다 더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을까.
우발적이라는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참 빈하다. 그렇다고 달리 떠오른 표현이 없다. 빈궁한 어휘력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어떤 순간들은 언어로 다 담아낼 수 없는 법이다.
하지만 기억한다. 때로는 섹스가 진한 친밀감을 표현하고 싶을 때 자연스레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을.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가장 인간적인 순간일 수도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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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하게 기다리는 게 제일이야."
그녀가 속삭인다. 30년을 기다려온 나에게도, 앞으로도 기다릴 나에게도.
어떤 사랑은 기다림 그 자체가 사랑의 형태인지도 모르겠다. 만날 수 없어도, 가질 수 없어도, 그저 그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책장 속에서, 기억 속에서, 그렇게 영원히 존재하는.
2019.05.08. 1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