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2. 21. 9:19
#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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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심심찮게 듣게 되는 말이 있다.
"사람은 고쳐서 쓰는 게 아니다."
이 말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다가온다. 뭔가 힘이 있다는 느낌. 마치 오래 써서 무뎌진 칼날을 다시 갈아내려다가 그만두게 만드는 그런 힘. 포기하게 만드는 힘이라고 해야 할까.
이 말은 스카이캐슬에서 노승혜 역의 윤세아가 쓴 반성문의 일부였다.
"연장은 고쳐서 쓸 수 있지만, 사람은 고쳐서 쓰는 게 아니라는 말을 무시하고... 반성합니다."
드라마 속 대사였지만, 그 문장은 묘하게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었다. 때로는 허구가 진실을 더 정확히 말하는 법이다. 특히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 하는 진실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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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변하지 않을 사람.
생각해 보면 우리는 늘 누군가를 고치려 든다. 저 사람이 이랬으면 좋겠다고, 저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마치 고장 난 시계를 들여다보듯 다른 사람의 내부를 관찰하고, 어디가 잘못되었나 진단하려 든다.
엄마는 아빠에게 담배를 끊으라고 말하고, 아빠는 엄마에게 잔소리를 줄이라고 말한다. 친구는 나에게 더 적극적으로 살라고 하고, 나는 친구에게 좀 더 신중하라고 한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는 의사이고, 누군가에게는 환자다.
하지만 시계와 사람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시계는 고쳐지지만 사람은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 아니, 정확히 말하면 고쳐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바뀌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드물게, 아주 조금씩, 그리고 대부분은 우리가 바라는 방향과는 다른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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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남을 바라볼 때 어떤 완벽한 그림을 바라지 말자고. 내 인생, 네 인생을 바라볼 때 부처님처럼 너그럽듯이, 그 마음의 반의 반만 가지고 남을 바라보자고.
사실 부처님처럼 너그럽게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우리는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자신에게는 가혹하게 굴면서 남들은 왜 나만큼 노력하지 않는가 하고 원망한다.
그 마음의 반의 반이라도 남에게 베풀 수 있다면, 세상은 조금 더 살 만한 곳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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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이 사람 쳐내고, 저래서 저 사람 쳐내다 보면 마지막에는 혼자가 된다. 내가 내쳐질 때 나를 위해 함께 싸워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두렵다.
사람들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일이 얼마나 쉬운지 알고 있다. 그 사람의 단점 하나쯤 찾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다. 문제는 그렇게 지우고 나서 남는 것들이다. 텅 빈 연락처, 조용해진 카톡방, 그리고 점점 작아지는 내 세계.
그리고 어느 날 깨닫게 된다. 완벽한 사람들만 남겨두려다 보니 아무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 완벽한 사람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 자신도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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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가 다른 사람을 고치려 드는 이유는 그 사람이 변하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그 사람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다. 포기하는 대신 고치려 드는 것. 하지만 그것도 결국은 포기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진짜 사랑은 고치려 들지 않는 것이다. 그 사람이 지금 이 모습 그대로도 충분히 사랑받을 만하다고 여기는 것.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는 오늘 아침에야 깨닫는다.
친구가 있다. 늘 지각을 하는 친구다. 몇 번을 말해도 고쳐지지 않는다. 예전에는 그것 때문에 화가 났다. 나를 무시하는 것 같고, 약속을 가볍게 여기는 것 같아서. 하지만 최근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그 친구와 함께 있으면 즐겁다. 지각하는 것만 빼면 정말 좋은 사람이다. 그럼 그 하나 때문에 이 모든 좋은 것들을 포기해야 할까?
이제는 그 친구와 약속할 때 시간을 넉넉히 잡는다. 그리고 기다리는 시간에는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다. 그 친구를 고치려 하는 대신, 내가 적응하는 법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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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정말 고쳐서 쓰는 게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관계를 포기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고치는 대신 이해하려 노력할 수 있다. 바꾸려 하는 대신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때로는 그런 수용이 그 사람을 조금씩 변화시키기도 한다. 강요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변화를.
9시 19분, 또 하나의 작은 깨달음이 지나간다.
창밖에는 2월의 차가운 바람이 불고, 사람들은 목도리를 단단히 동여매고 거리를 걷는다. 모두 자신만의 사연을 안고, 자신만의 속도로. 그 모습이 왠지 아름답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다.
2019. 2. 21. 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