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르코르뷔제를 처음 만난 날

_1989년 어느 건축학도의 기억*

# 르코르뷔제를 처음 만난 날

— 1989년 어느 건축학도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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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나는 스무 살 건축학도였다.


그 시절의 기억들은 대부분 흐릿해졌지만, 여전히 선명한 것들이 있다. 낡은 제도판 위에 삼각자와 샤프를 올려두고, 선 하나 그을 때마다 숨을 고르던 그 순간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단순한 도구 사용법을 익히는 시간이 아니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대학 강의실에서 처음 들은 이름 중 하나가 르코르뷔제였다. 교수님은 그를 "근대건축의 아버지"라 소개했고, 우리는 낯선 그의 이름을 노트 맨 앞에 받아 적었다. 아직은 그 이름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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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을 처음 본 건 슬라이드 강의 시간이었다. 캔버스 위에 투사된 하얀 박스 같은 집—사보아 주택. 땅 위에 떠 있는 듯한 기묘한 형태, 얇은 기둥 위에 얹힌 상자 같은 건물.


누군가가 작게 중얼거렸다. "저게 진짜 사람이 사는 집 맞아?"


나도 비슷한 의문을 품었지만, 이상하게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직선과 곡선이 주고받는 리듬, 수평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 계산된 여백 속에서 풍경을 받아들이는 그 창의 위치까지…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어떤 예술 작품들은 그렇다. 처음 보는 순간부터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직감하게 만든다. 이해하기 전에 먼저 느끼게 하고, 그 느낌이 이해로 이어지기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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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곧 외우듯 "근대 건축의 5원칙"을 배웠다. 필로티, 옥상 정원, 자유로운 평면, 수평 연속창, 자유로운 입면. 처음엔 그것이 단지 '새로운 형식'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은 단순한 양식이 아니라 '사고의 틀'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르코르뷔제는 건축을 통해 삶의 구조를 다시 설계하려 했고, 인간의 신체를 기준 삼아 공간을 비례와 질서로 풀어냈다. 그것이 그의 '모듈러'였다. 하나의 체계, 하나의 언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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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다시 접한 그의 또 다른 작품은 롱샹 성당이었다. 그 곡선의 지붕, 불규칙하게 뚫린 창, 기도하듯 서 있는 형태는 이전의 기계적 합리성과는 전혀 다른 감정의 세계였다.


거기엔 침묵이 있었고, 빛의 성찰이 있었으며, 인간의 고요한 내면을 감싸는 따뜻함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르코르뷔제는 단지 '기계처럼 사는 집'을 말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기능에서 시작해 시적 공간에 이르렀고, 결국 건축은 인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어떤 예술가들은 그렇다. 평생에 걸쳐 하나의 주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하면서, 결국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도달한다. 르코르뷔제에게 그 질문은 아마도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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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그 시절의 스케치북도, 번들거리던 트레이싱지도 모두 추억이 되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도시의 어딘가에서, 빛과 그림자가 만든 단순한 면과 선을 마주할 때면… 나는 여전히 1989년의 그 강의실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날 처음 본 사보아 주택의 이미지 속에서, "집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는다. 어떤 질문들은 그렇다. 한 번 마음에 들어오면 평생 우리를 따라다니며, 삶의 국면이 바뀔 때마다 조금씩 다른 대답을 속삭여준다.


건축이 우리에게 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단순히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선사하는 것. 그리고 그 관점이 우리의 일상을 조금씩 변화시켜 나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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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코르뷔제 #건축에세이 #사보아주택 #론샹성당 #건축학과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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