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18. 5:33*
*망치든건축가 hyojoon*
*2012. 7. 18. 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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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33분의 깨달음
멀리 동녘 하늘에서 뿌연 하늘이 어둠을 걷어낸다. 이제 또 하루가 시작되려 한다.
오늘 계단을 오르다 숨이 차올랐다. 헉 헉. 이놈의 저질 체력은 정말 한심하다.
그런데 그 순간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죽는 날이 언제인지 모르지만, 결국 죽는다면 그날을 향해서 나는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까먹으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참 웃긴 일이다. 매일매일 죽음을 향해 걸어가면서 그것을 '살아간다'라고 부르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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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마일리지 계산법
하루하루를 그렇게 소진하면서 쌓아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비행기도 날아다닌 거리만큼 마일리지가 쌓인다. 그럼 지금껏 살아온 인생살이 마일리지는 얼마만큼일까?
웃긴 건 비행기 마일리지는 나중에 무료 항공권으로 바꿀 수 있는데, 인생 마일리지는 뭘로 바꿀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경험? 지혜? 추억? 아니면 그냥 주름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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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만 갈 수 있는 인생
그렇게 하루하루를 까먹으며 소진하며 나에게 쌓인 것은 어차피 앞으로밖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살이인 것을.
뒤돌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만나보고 싶다. 노하우 좀 전수받고 싶다.
"앞만 보면서 열심히 살자!"
좋은 말이다. 하지만 헛웃음이 나올 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앞만 보면서 살다 보면 가끔 전봇대에 머리를 박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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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 쑤는 인생의 미학
앞만 보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 돌아보면 후회요, 바르지 못한 선택과 모양 빠지는 작태. 자조의 연속이다.
그런데 오늘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 와중에서도 여기까지 살아온 걸음이 그렇게 결코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그래, 나는 지금 멋지게, 근사하게 하루를 죽 쑤고 있는 것이다.
'죽 쑤다'는 표현이 참 좋다. 밥을 해 먹듯 하루를 쑤어 먹는 것이다. 가끔 설익기도 하고, 가끔 태우기도 하지만, 그래도 매일 뭔가를 만들어내고 있으니 나름 요리사인 셈이다.
그래, 그렇게 멋지게 근사한 하루하루를 까먹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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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종료
글을 마무리하는 순간 어느덧 날은 밝았다. 그를 기다린 밤의 고독은 그렇게 접혔다.
새벽 5시 33분에 시작해서 새벽 6시쯤 끝난 이 글도 하나의 '죽'이다. 별로 맛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를 시작하기에는 충분한 영양가가 있을 것이다.
평안하시길. 천수답에서 제사장 드림.
P.S. 오늘도 계단을 오를 때는 숨이 찰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것도 인생 마일리지를 쌓는 과정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