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쉬운 남자'

2012. 5. 8. 4:13

# 난 '쉬운 남자'



나는 쉬운 남자다.


이것은 고백이 아니라 선언이다. 아니, 사실은 고백이다. 아니, 정확히는 변명이다. 변명 같은 고백 같은 선언이다.


'쉬운 남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대체로 당황한다. 쉬운 여자는 알겠는데 쉬운 남자는 뭐냐고 묻는다.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쉬운 거다.


쉽다는 것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첫째, 순진해서 잘 속는다. 둘째, 성적으로 개방적이다. 셋째, 접근하기 쉽다. 넷째, 이용하기 쉽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나다.


불혹을 넘어선 중년 남자가 '나는 쉬운 남자다'라고 말하는 것은 꽤나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토끼를 쫓는 앨리스 같다. 아니, 토끼를 쫓는 중년 남자 같다. 더 이상할 것도 없다.


한국에서 쉽다는 것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쉬운 여자는 문란하다는 뜻이고, 쉬운 남자는 만만하다는 뜻이다. 나는 문란하면서 만만한 남자인 셈이다. 완벽하다.


쉬운 사람에게는 네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한다. 첫째, 쉬워 보이는데 실제로는 어려운 사람. 둘째, 어려워 보이는데 실제로는 쉬운 사람. 셋째, 쉬워 보이고 실제로도 쉬운 사람. 넷째, 어려워 보이고 실제로도 어려운 사람.


나는 당연히 셋째다. 쉬워 보이고 실제로도 쉽다. 단순 명쾌하다. 복잡한 게 싫다.


가끔 사람들이 묻는다. "왜 그렇게 살아요?" 나는 대답한다. "재미있어서요." 그러면 그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이해했다는 표정이 아니라 포기했다는 표정으로.


직장에서는 착한 사람이 되려고 했다. 착한 사람은 살아남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착한 사람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이용당한다는 것을. "그 사람 착하긴 한데..." 이 말 뒤에는 항상 "쓸모없다"가 숨어 있다.


그래서 나는 착한 대신 쉬운 쪽을 택했다. 쉬운 사람은 적어도 재미있다. 예측 가능하지만 지루하지 않다. 만만하지만 미워할 수 없다.


경쾌함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경쾌한 남자가 되고 싶다. 무거운 것들을 가볍게 만드는 남자. 복잡한 것들을 단순하게 만드는 남자. 어려운 것들을 쉽게 만드는 남자.


야마모토 후미오가 말했다. "가족은 이미 나의 일부이기에 함께 있어도 외롭다." 맞다.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은 타인이다. 낯선 사람이다. 쉬운 사람이다.


카페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본다. 모두 외로워서 나왔으면서 서로에게는 엄격하다. "왜 이 늦은 시간에 나오셨어요?" 나는 그냥 웃는다. 뭐라고 할까. "당신은요?" 그냥 웃는다.


나는 앞으로 더 쉬운 남자가 될 것이다. 더 경쾌한 남자가 될 것이다. 더 재미있는 남자가 될 것이다.


쉽다는 말에 움찔하지 않을 것이다. 쉬운 것이 나쁜 게 아니다. 어려운 척하느라 감정을 숨기고 기회를 놓치는 것이 더 나쁘다.


인생은 짧다. 재미없게 살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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