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2012. 5. 8. 3:13

#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책상에 앉으면 팩스기가 보인다.


그 팩스기는 삼성전자에서 만든 것으로, 회색빛 플라스틱 몸체에 작은 액정창이 달려 있다. 언제 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2000년대 초반쯤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팩스가 필요했다. 중요한 서류들을 주고받을 때, 이메일보다 팩스가 더 신뢰할 만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팩스기는 컴퓨터 모니터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마치 오랜 세월 함께 일해온 동료처럼. 실제로 우리는 함께 일했다. 밤늦도록 서류를 주고받고, 마감 시간에 쫓겨 급히 팩스를 보내던 날들이 있었다. 팩스기는 그때마다 성실하게 종이를 삼키고 토해냈다.


하지만 이제 팩스기는 할 일이 없다. 마지막으로 팩스를 받은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몇 년은 족히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팩스기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전원이 켜진 채로. 녹색 불빛이 깜박이며 언제든 팩스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알려준다.


가끔 팩스기가 나를 보는 것 같다. 물론 팩스기에게 눈이 있을 리 없지만, 그럼에도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팔짱을 끼고 못마땅한 듯이. 너는 바쁘게 키보드를 두드리는데 나는 왜 이렇게 한가하냐고 묻는 것 같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더 이상 팩스를 보낼 일이 없다고 설명하고 싶지만, 팩스기는 기계이므로 내 말을 알아들을 리 없다.


밤이 깊어간다. 유독 오늘 밤은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것 같다. 시곗바늘이 평소보다 무거워진 것처럼. 밤의 시간은 낮의 시간과 다르다. 같은 60분이라도 밤의 한 시간은 더 길고 더 깊다. 밤은 생각할 시간을 준다. 낮에는 바쁨 속에 묻어둘 수 있었던 것들을 꺼내어 들여다볼 시간을.


프린터가 종이를 토해낸다. 드르륵, 드르륵. 작은 소음이 고요한 사무실에 울려 퍼진다. 20장, 30장, 끝없이 나오는 종이들. 내일 회의에서 사용할 자료들이다. 하지만 그 자료들이 정말 읽힐까? 회의 테이블에 놓인 채로 한 번도 넘겨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프린터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한다. 팩스기처럼.


창 너머로 도시의 불빛들이 보인다. 24시간 편의점의 형광등, 늦은 밤까지 불을 밝힌 사무실들, 아직 잠들지 않은 아파트 창문들. 각각의 불빛 뒤에는 사람이 있다. 나처럼 밤늦도록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잠들지 못하는 걸까. 일 때문일까, 걱정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습관 때문일까.


야식을 먹었다. 편의점에서 사 온 김밥과 우유. 하루 여섯 끼를 목표로 삼았다고 했지만, 사실 목표라기보다는 그냥 그렇게 되는 것이다. 배가 고파서 먹는 게 아니라,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먹는다. 씹는 행위 자체가 시간을 소모시켜 준다.


혼자 먹는 야식은 쓸쓸하다. 책상에서 혼자 먹는 김밥은 집에서 가족과 함께 먹는 저녁밥과는 전혀 다른 음식이다. 같은 김밥이라도 다른 김밥이다. 음식의 맛은 함께 먹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가족과 함께 먹는 식사도 그리 다르지 않다. 평화롭고 조용하고 온화한 분위기 속에서도, 어쩐지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어쩌다 보니 한 자리에 앉게 된 것 같은 묘한 거리감이 있다. 같은 밥을 먹고, 같은 반찬을 나누어 먹지만, 각자의 마음속에는 다른 생각들이 흐르고 있다.


눈앞에 있어도 마음은 멀다. 가족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형제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가슴속의 거리는 물리적 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때로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가슴속은 세계의 끝처럼 멀다.


하루키의 책이 생각났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책꽂이에 꽂혀 있는 그 책을. 몇 번을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새롭다. 두 개의 세계가 교차하는 이야기. 현실과 환상이, 의식과 무의식이, 이곳과 저곳이 뒤섞이는 이야기.


우리는 모두 두 개의 세계를 산다. 하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세계이고, 또 하나는 혼자만의 세계이다. 낮에는 첫 번째 세계에서 살고, 밤에는 두 번째 세계로 들어간다. 지금 이 순간도 나는 두 번째 세계에 있다.


비가 내리고 있다. 아니, 내리고 있었다. 창문에 맺힌 물방울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지금 내리는 이 비는 어제 내렸던 비와는 다르다. 작년에 내렸던 비 와도 다르고, 내년에 내릴 비 와도 다를 것이다. 모든 비는 다르다. 같은 하늘에서 내려도, 같은 구름에서 나와도 다른 비다.


그때 내렸던 비가 생각난다. 몇 년 전, 아니 몇십 년 전에 내렸던 비. 먼지를 먹고 회색 거리를 적시던 비. 그 비는 아무것도 씻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먼지를 도시 곳곳에 더 깊숙이 스며들게 만들었다. 그 비를 맞으며 걸었던 거리들이 생각난다. 그때의 내가 생각난다. 지금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었던 그때의 나가.


컴퓨터 앞에 앉아서 나는 기억들과 마주한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밤이 되면 하나둘씩 고개를 든다. 낮에는 바쁨 속에 묻어둘 수 있었던 것들이 밤의 정적 속에서는 선명해진다. 지금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기억들. 하지만 기억은 나보다 빠르다. 아무리 도망쳐도 따라온다.


프린터가 갑자기 끔찍한 소리를 낸다. 뭔가 걸린 듯한 소리. 종이가 걸렸다. 기계도 지친다. 사람처럼. 오랫동안 일하다 보면 어딘가 걸리고, 어딘가 막히고, 어딘가 고장 난다.


그래서 이만 글을 멈춘다. 종이 걸림이라는 핑계로. 사실은 더 이상 쓸 말이 없어서. 아니, 쓸 말은 많지만 쓸 수 없는 말들이어서.


천수답에서 비를 기다리는 제사장. 나는 그런 제사장이다. 메마른 일상에서 어떤 은총을 기다리는 제사장. 그 은총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비를 기다리는 것일 수도 있고, 편지를 기다리는 것일 수도 있고, 전화를 기다리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냥 기다림 자체를 기다리는 것일 수도 있다.


팩스기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녹색 불빛을 깜박이며. 언젠가 누군가 팩스를 보내주기를, 자신에게도 다시 할 일이 생기기를 기다리면서. 나처럼.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난 '쉬운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