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5. 5. 22:46
『청명한 날의 허무』
오월 오일. 어린이날이었다.
온 나라가 아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날. 부모의 손을 잡은 아이들이 놀이공원으로, 동물원으로, 유원지로 흩어져가는 풍경이 도처에 그려졌을 그날, 나는 흙먼지가 자욱한 건설 현장 한복판에 서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헤매고 있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다시 또 다른 곳으로, 마치 방향을 잃은 길잡이처럼, 혹은 애초에 길이 없었던 듯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 하는 법이다. 나의 처지에 일을 가릴 여유는 없었다. 좋은 일, 나쁜 일을 나눌 윤리의 잣대도, 그런 것을 운운할 만한 자존심도 사치였다.
생계란, 인간에게 선택의 여지를 허락하지 않는다. 먹고사는 문제 앞에서 모든 철학은 무력해지고, 모든 이상은 제자리에서 무너진다. 그것이 현실의 본질이다.
잠깐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고, 동료들은 그늘을 찾아 흩어졌다. 나는 현장 구석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라이터 불꽃이 튀는 순간,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맑았다.
이토록 청명할 수 있는가 싶을 정도로. 오월의 하늘은 마치 막 닦아낸 유리창처럼 투명하고 깨끗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 아이들이 뛰놀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부드러운 바람이 뺨을 스치고, 계절은 봄에서 여름으로 건너가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무런 예고 없이, 마치 기습처럼 허무감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고요한 아름다움 속에서 도리어 가슴 깊은 곳이 일렁였다. 왜 이런 날씨, 이런 하늘 아래서 허무를 느껴야 하는가. 아름다움은 허무와 이토록 가까운 자리에서 자주 만난다.
담배 연기가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하얀 연기가 청명한 하늘 속으로 스며들다가 이내 흩어져 사라지는 모습이 어쩐지 쓸쓸했다. 그 장면을 바라보다 문득, 정도전이 떠올랐다.
조선의 건국자. 이상과 정치, 유학과 현실 사이에서 조선을 설계한 사내. 그의 유배 시절에 쓴 시 한 수가 마음속에서 울렸다.
“두왕조에 한결같은 마음으로 공을 세워, 책 속 성현의 뜻을 거역하지 않았건만, 삼십 년 동안 애쓰고 힘들인 업적, 송현정자에서 한번 취하니, 결국 헛되이로다.”
그는 자신의 일생을 송현정자라는 지점에서 허물어진 것으로 회고했다. 고려와 조선을 위해 온 생애를 바쳤으나, 단 한 번의 선택, 단 한순간의 결과로 모든 업적이 무너졌다고 여겼다.
그 시는, 조선이라는 국가를 설계한 자의 절망이었다. 그러나 오백 년을 지나 이 땅의 평범한 노동자인 내 가슴에도 그 절망은 깊게 파고들었다.
역사는 참으로 냉혹하다. 거인도, 위대한 자도, 한순간의 실수 혹은 불운으로 파멸에 이른다. 정도전이 그랬고, 최충헌이 그랬으며, 연산군은 말할 것도 없다. 이름을 남긴 그들조차 그러한데, 이름 없는 나는 무엇으로 허무를 견뎌야 한단 말인가.
멀리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공사장 너머, 아마 어린이날을 기념해 나들이 나온 가족들일 것이다. 그 맑고 투명한 웃음소리는 이곳의 소음과 기묘하게 교차했다. 나는 그 아이들과 닮은 시절을 가졌었다. 그때는 세상이 이렇게 고단한 곳인 줄 몰랐다. 하늘이 이렇게 아름다우면서도 허무할 수 있다는 것도 몰랐다.
정도전도 분명 어린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경상도 영주의 들판을 달리며, 어머니의 품을 그리워하며, 나라를 바꾸겠다는 야망이 아니라, 그저 맑은 하늘만을 바라보며 살았던 시절이.
그러나 인간의 영광과 몰락, 시작과 끝, 믿음과 배신은 모두 이 청명한 하늘 아래에서 벌어진다. 하늘은 변하지 않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흔들린다. 왕조가 무너지고 시대가 변하고, 사람은 죽어가고, 기억은 바래간다. 그러나 하늘은 늘 그 자리다.
나는 담배를 끝까지 피우고 꽁초를 바닥에 비벼 끄며 생각했다. 다시 일터로 향해야 했다. 푸른 하늘을 등지고 걸어가며, 다시 한번 속으로 되뇌었다. 정도전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모든 것이 허무해도, 살아야 하고, 살아야 하니 일해야만 했던.
하늘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내가 품은 허무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치 영원의 풍경처럼 고요하게, 무심하게.
오월의 하늘 아래서, 나는 잠시 정도전의 마음을 이해한 듯했다. 시대가 다르고, 운명이 다르며, 이름의 무게도 다르지만, 이 맑은 하늘 아래서 느끼는 인간의 허무함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