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 14. 13:35
# 오후의 낙엽 태우기
*2012. 2. 14. 13:35
후우
깊은 한숨 같은
가벼운 내쉼
뭐 별것 있나요
이 오후의 작은 시간에
점심식사 후
언제나 찾아오는
고요한 시간
언제나 느끼는 단상
Peace
햇살이 비스듬히 내려앉는
이 조용한 시간에
오늘이
102주기인가
1910년 2월 14일
그 차가운 겨울날
안중근 의사
장군으로 불려야 할 분의
선고일
이 나라의 치욕의 날
총성이 울린 하얼빈 역
그 후 뤼순 감옥에서의
마지막 날들
감히 비길 수 없다면
감히 입을 열 수 없다면
할 말은 없다
다만 고개 숙여
조용히 추모할 뿐
오늘도 변함없이
나는 낙엽을 태운다
기다란 대롱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
하늘로 올라가는
작은 기도처럼
연기가 바람에 흩어지며
만드는 작은 무늬들
그것이 내 마음의
무늬와 닮아 있다
어느 시인은
가을마당을 쓸며
낙엽 태우고는
거기서 커피 볶는 냄새를
맡는다고 하는데
나는 여기서
무슨 냄새를 맡을 수 있을까
삶의 무게일까
시간의 냄새일까
아니면 그리움의 향기일까
잠시 몸의 가벼워짐을 느끼면
잠시 마음의 평온함을 느끼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큰 것을 바라지 않아도
작은 것에 만족할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 아닐까
나는 오늘도
낙엽을 태우며
광합성을 한다
몸에서 청명함이 피어오르고
나의 몸은 따스함에 젖는다
식물이 햇빛을 받아
녹색의 에너지를 만들듯이
나는 이 작은 여유 속에서
마음의 에너지를 만든다
폐 속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공기
그것이 내 몸 전체로 퍼져나가며
만드는 작은 평화
이것이 나만의
광합성이다
역시
오늘 햇살은 좋다
2월의 햇살치고는
너무나 따뜻하고
너무나 부드럽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려는
그 경계에서 만나는
특별한 햇살
그래
그것으로 족한 것을
무엇에 그리 큰 영화를 보겠다고
무엇에 그리 큰 성취를 이루겠다고
아등바등하는가
이것도
점심시간에 느끼는
작은 사념일 뿐
하지만 이 작은 사념이
때로는 큰 깨달음이 되고
때로는 살아갈 힘이 된다
작은 것들이
모여서 큰 것이 되고
작은 순간들이
모여서 인생이 된다
나는 다시금
치열하게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 치열함 속에서도
이런 작은 여유를
잊지 않을 것이다
이는 나에 대한
맹서이므로
작은 여유 속에서도
삶에 대한 의지를 다진다
큰 꿈을 꾸되
작은 행복을 놓치지 않고
높은 곳을 바라보되
발밑의 꽃을 밟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역사 앞에서는 작지만
일상 앞에서는
당당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안중근 의사의 큰 뜻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내 자리에서 내 역할을
성실히 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님들
식사 맛나게 하셨나요
오늘 하루
행복하세요
작은 것에서 큰 기쁨을
찾을 수 있는
그런 하루 보내세요
날씨가 조금은
포근해졌어요
작은 햇살 하나가
이렇게 큰 위로가 되는
그런 날입니다
바람도 부드럽고
공기도 맑은
그런 오후입니다
이런 날에는
모든 것이 고마워집니다
햇살도
바람도
이 작은 여유도
천수답에서
비를 기다리는 제사장
그분을 추모하며
그분의 뜻을 기리며
작은 일상 속에서도
큰 의미를 찾으며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