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을 용기 _분노와 각성의 서사

서평 같지도 않은 서평을 쓰며


미움받을 용기 _분노와 각성의 서사

서평 같지도 않은 서평을 쓰며


2015.03.12 / 미움받을 용기, 기시미 이치로, 고가후미타케 지음.



아들러는 프로이트, 융과 함께

3대 거장이라고는 하지만 그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나를)비롯 많지 않아..

그나마 '열등감'이라는 키워드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길에서.

필드에서.

책을 통해.

인생을 배웠고.

그리 살아가리라.



40년간 믿어온 원인론의 함정


인과.因果를 생각하다.

흠잡을 원인이 없으면 흠 잡힐 결과도 없다 했던가?

자기 스스로 모욕을 자초하는 행위를 하고, 난 뒤에야 남이 비로소 자신을 모욕하는 것.

원인과 결과는 빛과 그림자다. 그래서.

무릇 현명한 이는 아예 원인을 만들지 않는다.. 그리 배웠다.


그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책하고 그 원인을 나에게 찾았다.

매번 문제가 생기면 나를 탓했다.

내가 조심하지 못해서

내가 말을 잘못해서

내가 눈치가 없어서

내가, 내가, 내가...


리 배워왔어,,,,

그랬더니,,,,,,,,,,

자존이 무너졌다.

자학적이 되었다..


어떤 새끼가 나에게 시비를 걸어와도

"아, 내가 뭔가 잘못했나?" 하며 자꾸 나를 돌아봤다.

어떤 잉간이 나를 무시해도

"내가 그만큼 못나서 그런가?" 하며 움츠러들었다.


씨발~!!! 내가 선비.도 아니고 그렇다고.. 굳이. 굳이. 내가.. 지행일치(知行一致)를 해야 하는 것인가???

더욱더 난. 현명한 인간도 아닌데..


또다시 이런 새. 끼. 들. 때문에 나 자신을 돌아보고 조심하고.. 자중하고.. 자학하고....

그리고, 그리고.. '우울증'에.. '공황장애'로 다시 빠져들어야 하는 가?

참아야 하는가.

울화가 치미는 걸??? 못해!!! 그렇게는...


40여 년을 그리 참고, 조심하고, 흠없이 살아가려 노력했어..

근데 그 결과는 결국 남은 건 이러듯.... 허약한 '멘탈'이야!!! 씨발.~~


아무리 조심해도 시비 거는 놈들은 시비를 건다.

아무리 잘해줘도 무시하는 놈들은 무시한다.

아무리 낮춰도 무시무시하게 내려다보는 놈들이 있다.


그럼 대체 왜 내가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야?

왜 내가 그놈들 눈치를 봐가며 살아야 하는 거야?



아들러의 목적론이라는 충격


원인론. 과 목적론.

결과에는 반드시 그 원인이 있다는 것과.

현재의 목적과 그 목적에 따른 행동에 대한 고찰.

그의 심리학에서는 그 원인론을 부정한다.


이게 뭔 소리야?

과거의 원인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지금 내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위의 글처럼.. 그동안 당연시 했던 생각..

그 원인을 생각하고 그곳에서 그 근원을 찾는...

이 모든 게 헛짓이었다는 거야?


"네가 우울한 이유는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이 아니라

지금 우울할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뭔 개소리야? 했다가

가만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야.


내가 우울한 이유?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게 귀찮으니까

책임지기 싫으니까

실패할 게 두려우니까

그냥 혼자 있고 싶으니까


결국 내가 우울을 선택하고 있는 거였어.



나의 원죄, 노출증


그리고

나의 원죄일지 모르는.. 이 노출증. 이 속살의 드러냄. ㅡㅡ


왜 자꾸 글을 써서 올리는 거야?

왜 자꾸 내 속마음을 까발리는 거야?

왜 자꾸 관심받고 싶어 하는 거야?


그나마 40여 년 동안 채워놓은 마나가 다 떨어져 가는 상황과. 이젠 겨우겨우 버팀.


온라인 카페에서 받은 칭찬과 관심이

내 자존감의 전부였나 봐.

댓글 하나하나가 내 존재증명이었나 봐.


구겨진 종이처럼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삶을 쳐나가는 이유.

평생.^^.. 인생의 반을 속박 속에 살았다면...

이제 남은 인생은 자유롭게...

내 마음대로 살고 싶다는 그런 생각?? 살고 있다....


하지만 자유롭게 산다는 게 뭐야?

내 마음대로 산다는 게 뭐야?

남들 신경 안 쓰고 사는 게 정말 가능한 거야?



타인의 행복이 나의 패배인 이유


행복해 보이는 사람을... 진심으로 축하할 수가 없는 나.


왜 그럴까?

진짜 나쁜 놈이라서?

아니면 질투가 많아서?


마주치는 고객일 수 있는 잉간들..

(내가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고갱님으로 코스프레^^;;).. 의 난 척. 잘난 척.. 그리고 척. 척..


"저희 매출이 작년보다 30% 늘었어요"

"우리 아들이 SKY 대학에 합격했어요"

"이번에 강남에 집 샀어요"


들을 때마다 속이 쓰려.

왜 나는 안 되는데 저놈들은 잘 되는 거야?


그리고 경쟁자이자 동업자. 업자인 사장들.

오늘 어찌. 뭐 이건 무시하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 있는.

무용담.

여러 카페에서 자랑질.. ^^;; 헉~ 소리 나는 대박. 그리고.. 그 요란함.


"이번 달에 억을 벌었습니다"

"클라이언트가 줄을 서요"

"해외 프로젝트 따냈어요"


아, 짜증 나.

왜 자꾸 자랑하는 거야?

왜 내가 그걸 들어야 하는 거야?


관계를 경쟁으로만 몰아가고 다른 이의 행복을 '나의 패배'로 여기기 때문이라.....


맞아, 이게 문제야.

남이 잘 되면 내가 못한 것 같고,

남이 행복하면 내가 불행한 것 같고,

남이 성공하면 내가 실패한 것 같아.


왜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됐을까?

언제부터 세상을 제로섬 게임으로 봤을까?



권력투쟁의 늪에서


내가 옳다고 믿는다면 다른 사람의 의견이 어떻든 간에 이야기는 거기서 마무리되어야 했는데..

꼭 마지막 칼을 꽂아 숨통을 끊어. 야!

직성이 풀리는.

확인사살까지 단행하는 집요함.

다신 기어오르지 못하게.라는 명목으로 행해지는...


왜 그럴까?

왜 이기고도 또 이기려고 할까?

왜 쓰러진 상대를 또 밟으려고 할까?


온라인에서 누군가와 말다툼이 시작되면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린다.

상대가 항복할 때까지

상대가 도망갈 때까지

상대가 침묵할 때까지


사람이 (권력) 투쟁에 돌입해 타인을 굴복시키려고 하는 것. 투쟁본능. 본능.

정치적 숙제.. 결국 명분을 누가 가지느냐..


그리고 '나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곧 '패배를 인정하는 것'으로 여기게 되는...

이건 어찌 보면 참이야.

결국 처절한 투쟁의 개싸움의 끝이라도 살아남은 자는 기록을 하게 되지..

글을 쓰지.

자신이 옳다고.


떠난 자는 말이 없고...

떠난 자리에 무슨 말(흔적)이 남은 건지 모르고.

그리고 관심도 없고...


남은 자들은 개싸움의 승자를 축하하고 잊어버리지.

관심이 없거든.

누가 옳은지 그른지는 관심도 없는 난독증 환자들,

개싸움의 승자의 눈치를 보게 되지.

이 개가 또한 자신에게 으르렁 대까봐서..ㅋㅋㅋ


그러면 과연 승자는 누구일까??


아무도 없어.

모두가 지는 거야.

이기려고 발버둥 치다가 모두 상처만 남는 거야.


잘못을 인정하는 것,

사과하는 것,

권력투쟁에서 물러나는 것.

이런 것들이 과연 패배일까?.


아니야, 이게 진짜 용기야.



미움받을 용기라는 각성


떠나간 자의 소회는.

남이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든 마음에 두지 않고,

남이 나를 싫어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대가를 치르지 않는 한..


자신의 뜻대로 살 수 없었으리라.

'미움받을 용기' 말이다.

나는 용기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미움받는 게 무서웠어.

무시당하는 게 두려웠어.

외면당하는 게 견딜 수 없었어.


그래서 눈치를 봤고

그래서 비위를 맞췄고

그래서 내 의견을 숨겼고

그래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인 척했어.


근데 그렇게 살아봤자 뭐가 남았어?

허약한 멘탈과 뻥 뚫린 자존감뿐이야.


그럼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해?

정말 미움받을 용기를 가져야 하는 거야?



자기중심적 세계관의 함정


자기 자신밖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본인이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타인이란 '나를 위해 뭔가를 해줄 사람'에 불과해!!'.

모든 사람이 나를 위해 행동하는 존재라는...


아, 이거 완전 나 얘기네.


글로 쓰여지는 게시글. 달리는 무수한 댓글들. 당연한 대가인 듯. 던져지는 질문들. 뜬금없이 막 던져지는 글들.

카페는 공짜???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공간.


내가 글을 올리면 당연히 댓글이 달려야 하고

내가 질문하면 당연히 답변이 있어야 하고

내가 관심을 보이면 당연히 관심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손코스프레질하는 잉간들. "어~ 이대로 해줘..!!! (대체 이런 그림들은 어디서 가져오는 걸까??)"

대체 어디로 어느 방향으로 가는 것이 내려가는 거? 상행하행의 모든 기준이 자신인.. ^^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놈들.

모든 걸 자기 기준으로만 판단하는 놈들.


또한 거기에 자유롭지 못한 나...

이런 이기적인 존재인 나 또한..


결국 나도 똑같았어.

내 글이 관심받지 못하면 화가 나고

내 의견이 무시당하면 속상하고

내가 인정받지 못하면 삐지고


이게 바로 자기중심적 사고야.



공동체 의식과 공헌감의 발견


타인으로부터 '좋은 사람이다'는 평가를 받을 필요 없이

주관에 따라 '나는 나름 타인에게 공헌하고 있다'라고 느끼는 것.

그러면 비로소 나는 자신의 가치를 실감하게 된다.

'공동체 의식'이니 '동기부여'니.. '자기 증명'에 관한 말 또한.. 그러하다..


이게 핵심이야.

남들이 인정해 주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가치를 느끼는 거야.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고 스스로 느끼는 것.

내가 이 공동체에 기여하고 있다고 스스로 확신하는 것.


결론. 나의 가치는 나의 주관에 의해 결정되고,

누군가에게 공헌하는 삶이 그 가치로 부결된다.


그럼 지금까지 내가 한 일들은?

내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을까?

내 댓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됐을까?

내 조언이 누군가에게 힘이 됐을까?


남들이 알아주든 안 주든

내가 그렇게 믿으면 되는 거야.



인정욕구의 부정이라는 혁명


아들러의 심리학에 대해 좀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책.


이기적이기보단 개인주의적인 내 모습... 을

내가 진정 원하는 바,

맨탈이 힘들어질 때 마나를 보충하기에 적합하단 생각도 해봤음.


지금 현재, 여기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말과

타인에게 미움을 받아도 자유롭게 살아가라는 말도.. ^^


10명 중 1명은 반드시 나를 싫어할 것이며,

2명은 나를 좋아할 것이고..

7명은 그냥 그런 관계인데,

나는 그중 누구에게 관심을 갖으며 살아갈 것인가 라는 말에

중요한 무언갈 잊고 있었다..


맞아, 이거야.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필요는 없어.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을 필요도 없어.


글을 쓰매(씀에..) 있어.. 칭찬받기를 즐기며 자위하는 것이 아닌..

공허함. 타파!


공허함. 을 느끼며 내가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라는 사실을...

나 스스로 자각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그의 심리학에서는 '인정욕구'를 부정한다.

타인의 기대 같은 것을 만족시킬 필요가 없다. 는 말.


허거덕... 이 부분은 정말... ㅎㅎㅎ

나 또한 이런 형식의 자위적인 글쓰기가..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그 욕구가 발로일 수도 있는 사항인데...

그것마저 타인의 기대에 맞춰 사는 거라니..


내가 그 타인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노력한 것이었지,

나 스스로를 위해 노력한 건 아니었으니까. ^^


지금 이 글도 마찬가지야.

누군가의 칭찬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쓰는 거야.


제목과 동일한 글자의 반복은.. 검색상위를 노리는 자에겐 숙명과 같다고 하는데

오늘 반복은 의도적으로 줄여본다.

이건 작은 반항이라..ㅋㅋㅋ



과제 분리의 지혜


'이것은 누구의 과제인가?'라는 관점에서 자신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할 필요가 있네.

모든 인간관계의 트러블은 대부분 타인의 과제에 함부로 침범하는 것-

혹은 자신의 과제에 함부로 침범해 들어오는 것-에 의해 발생한다네.


이게 정답이야.


술 마시는 것 → 남편의 과제

아이가 공부하는 것 → 아이의 과제

친구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것 → 친구의 과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야.


삶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믿는 최선의 길을 선택하는 것' 그뿐이야.!!!!!


자기가 아무리 자기 증명이라 우겨도..

그에 대해 타인이 어떤 평가를 내리느냐 하는 것은 그들의 과제이고,

네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네...

책에서의 철학자는 말하는 듯. 하다.


내가 글을 정성껏 쓰는 것 → 내 과제

사람들이 그 글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 → 그들의 과제


내가 친절하게 대하는 것 → 내 과제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것 → 상대방의 과제


이렇게 나누니까 마음이 한결 편해져.



40대의 깨달음과 혼란


춤을 추고 있는 '지금, 여기'에 충실하면.. 다만, 그걸로 충분하다.

리듬에 몸을 맞긴다는 것..


그곳은, 내가 아는 그곳이 아니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ㅡㅡ"


흐름이 바뀐 것인가?!.

여긴 어디?.. 난 누구까지는 아니지만.. ^^;


그사이 겸손하지 못한 건가?

그사이 혹여 교만했졌던가?


예전, 하동.. 에일린의 뜰.. 그때 가졌던.. 그 조심스러움. 은

대체 어디 갔던가.


온라인 카페에서 조심스럽게 댓글 달던 그때.

누구 기분 상하게 할까 봐 여러 번 고민하던 그때.


언제부터 이렇게 당당해졌지?

언제부터 이렇게 거침없어졌지?


그리고 이 건을 가지고 밀땅했던 황당함이라니..ㅡㅡ;;

(내가 드뎌 미친 거지.. ㅋㅋㅋ ) ←... 결국 이기긴 했어.. 상처뿐인 승리.


승리가 뭐야?

상대방을 논리로 제압하는 게 승리야?

상대방이 말문이 막히게 하는 게 승리야?


애착을 넘은 집착이라니..

그 cool~~ 했던 나 하백.. 어디서 자라난.. 집요함인가??.


하백이라는 닉네임을 쓰던 그때는

정말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려고 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집착하게 됐을까?


이것으로 과제는 마쳐. 끝



토악질 같은 글쓰기의 의미


쓰고 보니 말이야 이게 대체 뭔 소린지 모르겠어.

결코 네거티브한 건 아닌데.


왠지 모를 울화에 잠시 끄적이고 싶었어.

그리고 일단 이리 토악질하고 나니 쩜 편해진 걸로 만족해.


그래, 이게 글쓰기의 진짜 의미일지도 몰라.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나를 위한 글.


그리고 잠시 망설였지만 어쨌든 확인은 누른 거니까?

혹시 알아 잠시 게재하고 지울지?


이것도 과제 분리야.

내가 올리는 것 → 내 과제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 것 → 그들의 과제


하루에도 변덕이 죽을 쑤니. 불혹의 나이가 부끄럽다.

지천명이 되면 편해질까?

아듀 발정의 세월아~

피 뜨거운 40대.. 금방 지나길 빌어봐.


40대라는 게 이런 건가 봐.

20대처럼 무작정 돌진할 수도 없고

60대처럼 초연할 수도 없고

어정쩡한 나이.


낮부터 깨어있었더니..

졸 힘들어.

꼭 늦잠 잔 하루살이처럼... 하루도 버겁네..


빨리 밤이 왔으면 좋겠어.

이 생경스런 풍광이 아닌 익숙함이 그립다.


밤이 되면 마음이 편해져.

낮에는 모든 게 너무 선명해서 견디기 힘들어.



서평 아닌 서평의 결론


ps.

대체 이글이 왜 이리 망가졌지??

서평 같지도 않은 서평.. ㅡㅡ;;


하지만 이게 진짜 서평일지도 몰라.

책을 읽고 내 삶에 적용해 보고

혼란스러워하고 화내고 깨달아가는

이 모든 과정이 진짜 독서 아닐까?


미움받을 용기.

아직 완전히 체득하지는 못했지만

조금씩 연습해보려고 해.


10명 중 1명은 나를 싫어할 거야.

그래도 괜찮아.

나머지 9명이 있으니까.


아니, 그것도 틀렸네.

1명이 싫어하든 10명이 싫어하든

중요한 건 내가 나를 사랑하는 거야.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있다고

스스로 느끼는 거야.


이것도 연습이 필요한 일이겠지?

40년 넘게 몸에 밴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시작은 했어.

이 책을 읽고, 이 글을 쓰고,

이렇게 토악질하면서.



2015.07.17 17:28 천수답에서 밤 걷는 하백. 씀.


ps2.

아들러 할아버지, 고마워.

덕분에 조금이나마 내가 미친 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세상이 이상한 거였어.

원인론에 갇혀서 자학하며 살아온 내가 바보였던 거야.


이제 목적론으로 살아보려고 해.

과거의 상처 때문에 우울한 게 아니라

지금 우울할 목적이 있어서 우울한 거니까.

그럼 그 목적을 바꾸면 되는 거 아냐?


과제 분리도 연습해 볼게.

남들이 내 글을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그들의 과제고

나는 그냥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쓸게.


미움받을 용기도 조금씩 가져볼게.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으려고 하다가

결국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것보다는

몇 명에게라도 진짜 사랑받는 게 낫잖아.


그리고 인정욕구도 조금씩 내려놓을게.

칭찬받기 위해 글 쓰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혹시나 도움이 될 누군가를 위해.


40대라는 게 이런 건가 봐.

20대의 무모함도 60대의 초연함도 없는

어정쩡하지만 그래서 더 치열한 나이.


피 뜨거운 40대 맞아.

아직도 가슴이 뛰고

아직도 화가 나고

아직도 꿈이 있어.


그래, 이게 나야.

완벽하지 않고

때로는 미치기도 하고

자주 후회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야.


미움받을 용기.

조금씩, 천천히.

연습해 볼게.


ps3.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혹시 나처럼 40년 넘게

원인론의 감옥에 갇혀 살았다면


이제 좀 화내도 돼.

이제 좀 자기 마음대로 살아도 돼.

이제 좀 미움받아도 돼.


세상이 당신을 어떻게 평가하든

그건 세상의 과제야.

당신의 과제가 아니야.


당신은 그냥

당신이 믿는 최선의 길을

걸어가면 돼.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ps4.

마지막으로


씨발, 진짜 시원하다.

40년 만에 처음으로

이렇게 속 시원하게 욕해봤어.


미안, 아들러 할아버지.

당신 이론을 빌려서

욕을 정당화하고 있네.


하지만 이것도 내 과제야.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당신의 과제고.


나는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


그걸로 됐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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