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Hz 고래의 바다」2"/3

2부. 시와 소설 3부작

52Hz 고래의 바다


바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건 단지
모든 걸 숨길뿐이다.


나는 어느 날
나와는 다른 진동을 가진
작은 고래를 만났다.


그 아이는 나를 보았고,
나는 그 아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아이는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같은 방향으로 유영했다.
소리를 나누지 않았지만
조금 느린 파동이
조금 낮은 울림이
우리 사이를 채워주었다.


그것이 말보다 따뜻하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침묵 사이의 언어


나는 수화 통역사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수어 통역사. 소리를 볼 수 있고, 침묵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한다. 물론 그것은 비유적인 표현이다. 하지만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 때로는 정말로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오늘은 평범한 월요일이다. 한 주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지만, 내게는 특별할 것 없는 하루다. 오전에는 대학교 강의실에서, 오후에는 법정에서, 저녁에는 결혼식장에서 통역을 해야 한다. 각각 다른 종류의 언어가 필요한 장소들이다.


첫 번째 일정은 오전 시간, 시립대학교 사회학과 강의실이었다. 청각장애인 학생 한 명을 위한 통역이었다. 그 학생은 지난 학기부터 함께 수업을 들어온 청년이었다.


그는 흥미로운 학생이었다. 다른 청각장애인 학생들과 달리, 그는 수화만으로 소통하는 것을 선호했다. 구화나 필담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에게 수화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그의 모국어였다.


강의가 시작되자 나는 자연스럽게 교수의 말을 수화로 옮기기 시작했다. "오늘은 사회연대론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손가락이 공간을 가르며 단어들을 만들어냈다. 기계적, 유기적, 연대, 사회. 추상적인 개념들이 구체적인 손의 움직임으로 변환되었다.


그런데 중간쯤에 교수가 갑자기 농담을 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이 이론은 마치 김치찌개 같아요. 여러 재료가 어우러져야 맛이 나죠." 강의실에 웃음이 번졌다.


나는 잠시 멈칫했다. 이런 농담을 어떻게 수화로 옮겨야 할까? 김치찌개라는 단어는 쉽다. 하지만 그 뒤에 숨은 의미, 우리가 누구나 알아챌 수 있는 친근함과 유머는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나는 '김치찌개'를 수화로 표현한 다음, 얼굴 표정으로 웃음의 뉘앙스를 더했다. 그리고 손동작으로 '여러 재료가 섞인다'는 의미를 강조했다. 학생이 미소를 지었다. 그는 농담을 이해했다.


강의가 끝난 후, 학생이 내게 말했다. 아니, 정확히는 수화로 표현했다.


"통역사님, 고마워요.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요."


"뭔가요?"


"농담을 수화로 옮길 때, 어떤 기분이에요? 뭔가 달라지는 게 있나요?"


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의 질문은 단순해 보였지만, 사실은 매우 복잡한 것이었다.

"음...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요. 농담이라는 건 단순히 말의 의미만으로는 전달되지 않잖아요. 목소리의 톤, 얼굴 표정, 타이밍, 그리고 그 순간의 분위기까지. 그런 것들을 수화로 옮기려면... 마치 번역이 아니라 새로운 창작을 하는 기분이에요."


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통역사님이 하는 건 단순한 통역이 아니라, 하나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거네요."


그 말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그동안 내가 하는 일을 단순히 '전달'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는 그것을 '재탄생'이라고 표현했다.


두 번째 일정은 오후 시간, 지방법원이었다. 교통사고 관련 소송에서 청각장애인 당사자를 위한 통역이었다. 법정에서의 통역은 다른 곳보다 훨씬 정확성이 중요했다. 하나의 단어, 하나의 뉘앙스가 판결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사자는 중년 여성이었다. 그녀는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뒤에서 온 차에 추돌당했다. 상대방 변호사는 그녀가 신호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피고인께서는 당시 신호등을 정확히 확인하셨습니까?" 상대방 변호사가 물었다.

나는 그 질문을 수화로 옮겼다. 그녀가 답했다.


"네, 확인했어요. 파란불이 빨간불로 바뀌는 걸 분명히 봤어요."


나는 그녀의 답변을 음성으로 전달했다. 그런데 상대방 변호사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청각장애인이시잖아요. 다른 사람들처럼 차 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까, 더 조심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 순간 나는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통역사는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된다. 나는 그 질문을 그대로 수화로 옮겼다.


그녀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가 답했다.


"저는 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눈으로 보는 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해요. 그리고 신호등은 소리가 아니라 빛으로 확인하는 거예요."


나는 그녀의 답변을 전달하면서, 그녀의 목소리가 되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화는 단순히 손의 움직임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담긴 언어였다.


세 번째 일정은 저녁 시간, 웨딩홀이었다. 신랑이 청각장애인인 결혼식이었다. 이런 경우에는 보통 사회자의 멘트와 축사를 통역한다.


신랑은 서른 대 초반의 남성이었고, 아주 행복해 보였다. 신부는 건청인이었지만, 수화를 유창하게 할 수 있었다. 그들이 처음 만난 곳은 수화 동아리였다고 들었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그들을 지켜봤다. 신랑과 신부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손을 잡는 모습, 그리고 가끔 나누는 짧은 수화 대화. 그들에게는 소리가 없어도 충분한 소통이 있었다.


축사를 하는 신랑의 친구가 말했다. "너를 보면서 배우는 게 많아. 너는 말은 못 하지만, 가장 많은 말을 하는 사람이야."


나는 그 축사를 수화로 옮기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신랑이 웃었다. 그의 웃음에는 소리가 없었지만, 그 어떤 웃음소리보다 환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지하철에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오늘 하루 동안 세 가지 다른 바다를 항해했다. 교실이라는 바다, 법정이라는 바다, 그리고 결혼식장이라는 바다. 각각의 바다에서 나는 다른 종류의 고래를 만났다.


그 청년은 지적 호기심이라는 주파수로 소통했고, 그녀는 정의에 대한 갈망이라는 주파수로 말했으며, 신랑은 사랑이라는 주파수로 노래했다. 나는 그들의 서로 다른 주파수를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수화라는 것은 참 신기한 언어다. 소리가 없지만 소리보다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 손의 움직임, 얼굴 표정, 몸짓, 그리고 그 사람의 마음까지. 모든 것이 언어가 된다.


집에 도착해서 거울을 보며 나는 혼자 수화로 말해봤다. "오늘도 고생했어." 거울 속의 나도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나 역시 특별한 주파수의 고래였다는 것을. 소리와 침묵 사이에서, 두 세계를 연결하는 고래.


그리고 그것이 나쁘지 않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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