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시와 소설 3부작
나는 매일 같은 주파수로 노래를 불렀다.
52Hz.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고독한 음.
그건 마치
혼잣말 같았고,
편지를 부치지 않은 편지 같았고,
꿈속에서 손을 뻗는 것과 비슷했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다.
멈추는 건,
사라지는 것과 같으니까.
언젠가는,
어딘가에
이 주파수를 들을 수 있는
또 다른 존재가 있기를
나는
믿었다기보다는
바랐다기보다는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게 내 방식의
살아 있다는 증명이었다.
나는 새벽 2시부터 6시까지 라디오 방송을 진행한다. 그 주파수가 내게 배정된 지 벌써 오래되었다. 오랜 시간 동안 같은 시각, 같은 주파수로 말을 해왔지만, 과연 누가 듣고 있는지는 여전히 확실하지 않다.
새벽 라디오라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든 시간에, 깨어 있는 소수를 위해 목소리를 내보내는 것. 그것은 바다에 병편지를 던지는 것과 비슷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누군가 주울 수도 있고, 아무도 주우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던지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
스튜디오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습관적으로 창밖을 봤다. 도시의 불빛들이 여전히 켜져 있었지만, 그 불빛들 대부분은 사람이 아닌 기계들을 위한 것이었다. 신호등의 규칙적인 점멸, 간판의 차가운 형광, 가로등의 단조로운 주황빛. 사람들의 불빛은 거의 꺼져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나는 항상 같은 멘트로 방송을 시작한다. 구체적인 호칭이 없는 인사. 그것이 새벽 라디오에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새벽에는 이름보다 존재 자체가 더 중요하니까.
"오늘 첫 곡은 마일스 데이비스입니다."
재즈를 트는 것도 나의 습관이다. 새벽에 재즈만큼 어울리는 음악은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트럼펫 소리는 새벽의 고요함과 절묘하게 어울린다. 그 소리는 외롭지만 절망적이지 않고, 슬프지만 체념적이지 않다. 그냥 새벽이라는 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소리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나는 문자메시지를 확인했다. 새벽 방송의 유일한 소통 수단이다. 전화는 거의 받지 않는다. 새벽의 전화는 대개 취한 사람들의 것이거나,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사람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밤샘 작업 중입니다. 음악 고마워요."
"또 잠이 안 와서 듣고 있어요. 계속 함께해 주세요."
"트럭 운전 중입니다. 졸음 쫓는 데 도움 되네요."
이런 메시지들이 내가 받는 유일한 반응이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이 시간에 깨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어떤 연대감을 공유한다. 그것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종류의 친밀감이다.
마이크 앞에 앉아서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라디오에서 하는 이야기들은 대개 일상적인 것들이다. 오늘 마신 커피의 온도, 지하철에서 본 풍경, 책에서 읽은 문장. 거창한 것은 없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이 새벽이라는 시간에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어제 서점에서 재미있는 책을 발견했습니다. 고래들이 서로 소통하는 방법에 대한 책이었는데, 그중에서 특별한 주파수로 노래하는 고래 이야기가 있더군요. 다른 고래들과 주파수가 달라서 소통할 수 없는 고래 말이에요."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 고래의 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때,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이 주파수로 말을 하지만, 과연 누구와 소통하고 있는지 확실하지 않은 내 상황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우리도 비슷한 것 같아요. 각자 다른 주파수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누군가는 이 채널을 듣고, 누군가는 다른 채널을 듣고, 누군가는 아예 라디오를 듣지 않죠. 하지만 지금 이 시간, 이 주파수에 맞춰주신 여러분들과는 뭔가 통하는 게 있다고 믿고 싶어요."
그때 새로운 문자가 왔다.
"저도 그 고래 같아요. 아무도 제 말을 이해 못 하는 것 같거든요. 그런데 이 방송 들으면 조금 덜 외로워져요."
나는 그 메시지를 읽고 잠시 말을 잃었다. 라디오에서는 침묵이 금기사항이지만, 때로는 침묵이 가장 정직한 반응이기도 하다.
"메시지 감사합니다. 그 고래 이야기를 아시는군요. 저도 가끔 그런 기분이에요.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봐요. 혹시 우리가 특별한 주파수로 이야기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주파수로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끼리만 알아들을 수 있는 거죠."
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라디오라는 게 참 신기한 매체인 것 같아요.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목소리만으로 연결되는 거니까. 어쩌면 이것도 하나의 주파수인 거죠. 새벽이라는 시간, 이 주파수, 그리고 잠들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이 만나는 지점."
그날 밤 나는 평소보다 많은 메시지를 받았다. 그 고래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준 것 같았다. 그들 각자가 자신만의 주파수로 살아가고 있지만, 이 시간만큼은 같은 주파수에 맞춰져 있었다.
방송이 끝난 후, 스튜디오를 나서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찾고 있던 것은 누군가가 내 목소리를 듣는다는 확신이 아니라, 내가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고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자신의 노래를 누군가 들어주기를 바라면서도, 동시에 누군가의 노래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새벽 6시, 해가 뜨기 시작했다. 내 하루는 끝났지만, 도시의 하루는 이제 시작이었다. 사람들이 하나둘 잠에서 깨어나면서, 각자의 주파수로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음 날 밤 다시 이 자리에 앉아서, 새벽을 나눌 것이다.
그것이 내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