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청산일기〉Part.5

Part.5 – 낯선 바닥 위의 첫 잠

〈우주의 청산일기〉

Part.5 – 낯선 바닥 위의 첫 잠 by 망치든건축가



이사 첫날 밤이었다.


불은 아직 어색한 각도로 떨어지고, 창문은 먼지가 얇게 낀 채 조용했다. 에어컨도, 커튼도, 인터넷도 없었다. 이사짐센터 직원들이 마지막 짐을 내려놓고 간 지 두 시간쯤 지났을까. 집 안은 이상한 정적에 싸여 있었다.


나는 그냥 바닥 위에 이불 하나를 펴고 누웠다.


딱딱한 마루 바닥이 등을 통해 전해져왔다. 이 집에서 처음 느끼는 감촉이었다. 차갑고, 평평하고, 아직 내 몸의 온기를 모르는 표면. 이전 집에서는 침대가 있었고, 매트리스가 있었고, 내 몸에 맞춰진 푹신함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없었다.


삐걱대는 벽, 낯선 냄새, 그리고 아주 희미한 소리들.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고, 윗집에서는 누군가 의자를 끄는 소리가 났다. 복도 쪽에서는 형광등의 미세한 윙윙거리는 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모든 소리가 낯설었다. 이전 집의 소리들 - 옆집 아이의 피아노 소리, 아래층 아주머니의 TV 소리, 길 건너편 공사장의 기계음 - 그런 것들과는 완전히 다른 음향이었다.


세상이 조금 비스듬하게 기울어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기울어져 있는 것 같았다. 지난 몇 년간 익숙해졌던 공간의 감각이 완전히 리셋된 기분이었다.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 부엌으로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현관문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몸이 아직 기억하지 못하는 새로운 지도 위에 떨어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은 편안했다.


텅 빈 공간에는 오히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있었다. 벽에는 아직 액자도 걸리지 않았고, 선반에는 아무 물건도 놓이지 않았다. 과거의 흔적들이 완전히 지워진 깨끗한 상태. 마치 새하얀 도화지 같은 공간에서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라이언은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평소라면 내 침대에서 함께 잠들었을 텐데, 오늘은 거실 모서리의 박스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고양이에게는 이 모든 변화가 나보다 훨씬 더 충격적일 것이다. 냄새로 세상을 인식하는 동물에게, 모든 냄새가 바뀐다는 것은 세계 전체가 교체되는 것과 같으니까.


"괜찮다, 라이언아." 나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천천히 적응하자."


마치 처음부터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이 집엔 아직 나의 흔적이 없었고, 그렇기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도 살아갈 수 있었다. 건축가가 아무것도 없는 대지에 선 것처럼.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고, 어떤 방향으로든 나아갈 수 있는 그런 상태.


천장을 바라보며 나는 이전 집의 마지막 밤을 떠올렸다.


그때도 바닥에 누워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끝의 감각이었다면, 지금은 시작의 감각이었다. 같은 자세, 같은 이불이었지만 완전히 다른 의미였다. 끝을 준비하는 마음과 시작을 맞이하는 마음 사이의 차이.


불 꺼진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가 짓고 싶은 건 결국 어떤 구조였을까.


복잡한 설계도도, 거창한 컨셉도 아니었다. 어쩌면 아주 단순한 거였는지도 모른다. 조금 덜 외롭고, 조금 더 따뜻한. 그런 공간. 그런 시간. 그런 관계.


건축을 공부할 때 배웠던 것들이 떠올랐다. 공간이 사람을 만든다는 것, 사람이 공간을 만든다는 것. 그 순환 관계에 대한 이론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감각이었다. 이 바닥의 차가움, 이 공기의 냄새, 이 침묵의 질감.


새집의 첫날 밤은 늘 특별하다. 모든 것이 가능성으로 남아 있는 시간. 아직 습관이 형성되지 않았고, 아직 패턴이 굳어지지 않은 상태. 내일부터 시작될 새로운 일상들이 이 공간에서 어떤 모습을 갖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창밖으로는 남서쪽 하늘이 보였다.


이전 집에서는 볼 수 없었던 방향이었다. 동향에서 남서향으로. 아침 햇살 대신 오후 햇살을, 새벽빛 대신 노을빛을 보게 될 것이다. 같은 태양이지만 완전히 다른 시간대의 빛. 그것만으로도 내 하루의 리듬이 조금씩 바뀔 것이다.


시계를 보니 밤 11시 47분이었다.


첫날 밤의 마지막 시간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내일 아침이면 이 집에서의 첫 아침이 시작될 것이다. 새로운 햇살이 새로운 각도로 들어와 새로운 그림자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날 나는 이불과 벽 사이의 작은 틈에서 오랜만에 아주 깊게 잠들었다.


꿈에서 나는 넓은 들판을 걷고 있었다. 지평선까지 아무것도 없는 평원에서, 나는 천천히 걸으며 어디에 집을 지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발걸음은 가벼웠고, 바람은 따뜻했다. 그리고 멀리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이 되어 깨어났을 때, 나는 그 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았다.


새로운 시작이란 결국 이런 것이었다. 모든 것이 가능한 들판에서, 자신만의 집을 짓기 시작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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