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6 – 책장을 버리고 온 날
Part.6 – 책장을 버리고 온 날 by 망치든건축가
책장을 버리고 왔다.
이사 직전까지도 망설였지만, 결국 트럭에 실리지 못한 건 내가 아닌, 책장이었다. 몇십 년인가를 가지고 다니던 오래된 화이트 5단 책장 3개와, 일부 베란다에 유배되어 서 있던 결로에 의해 망가진 책장 2개. 총 다섯 개의 책장이었다.
그 중 거실에 있던 세 개는 여러 번의 커스텀을 거친 것들이었다. 못을 더 박고, 판자를 덧대고, 뒷면을 보강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한때는 거실의 중심이었고, 내 지적 정체성의 상징이기도 했던 그 가구들은 결국 이사업체 직원의 "이거들 어떻게 할까요?" 라는 질문 앞에서 포기되었다.
"그냥 두고 가겠습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나는 무언가 중요한 것을 포기하는 기분이었다. 단순히 가구 하나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생활 방식 자체를 포기하는 것 같았다.
그 결과는 명확했다.
거실 한가운데, 열여섯 개의 이삿짐 박스가 층층이 쌓였다. 커다란 박스들이었지만, 책은 무게가 있어서 반만 채워져 있었다. 이사업체에서 "책 박스는 끝까지 채우면 안 됩니다"라며 절반 정도의 높이까지만 채워놓은 것들이었다. 꽉 채우면 무게 때문에 들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각 박스마다 묘한 빈 공간이 있었다. 아래쪽 절반은 빼곡히 들어찬 책들, 위쪽 절반은 텅 빈 허공. 생각보다 많았다. 한 권 한 권 쌓일 때는 몰랐는데, 박스로 나누어 세어보니 이렇게나 많은 책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안엔 내가 읽었던, 혹은 읽지 못한 문장들이 아직도 종이 냄새를 풍기며 갇혀 있다.
첫 번째 박스를 열어보니 대학교 때 읽었던 건축 이론서들이 들어 있었다. 『건축의 언어』, 『공간의 시학』, 『장소의 현상학』. 페이지 곳곳에 형광펜으로 그어놓은 밑줄들, 여백에 적어놓은 메모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20대의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문장들, 감명받았던 구절들.
하지만 지금 다시 보니 그 밑줄들이 조금 부끄러웠다. 왜 그런 뻔한 문장에 밑줄을 그었을까. 왜 그런 당연한 이야기에 감동했을까. 10년이라는 시간이 만든 거리감이었다.
두 번째 박스에는 소설들이 들어 있었다. 하루키의 책들, 밀란 쿤데라, 이탈로 칼비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대부분 20대와 30대 초반에 읽었던 것들이었다. 그때는 이런 책들을 읽는 것이 지적인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책들은 끝까지 읽지 못했다. 책갈피가 3분의 1 지점에 꽂혀 있는 『율리시스』, 절반도 못 읽은 『마의 산』. 언젠가는 다시 읽겠다고 생각하며 책장에 꽂아두었던 것들. 하지만 결국 그 언젠가는 오지 않았다.
책은 무겁다.
그건 비단 물리적인 무게만은 아니다. 책 속에는 지난 계절의 내가 있고, 놓친 질문들과 덮어둔 감정들이 함께 눌려 있다. 읽다가 만 소설에는 중단된 시간이 들어 있고, 밑줄 친 철학서에는 젊은 날의 고민이 침전되어 있다.
세 번째 박스를 열 때는 조금 주저했다. 무엇이 나올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그 안에는 그녀와 함께 읽었던 책들이 들어 있었다. 『노르웨이의 숲』, 『연애소설 읽는 시간』, 『시간여행자의 아내』. 책등에는 그녀의 이름이 적힌 포스트잇이 아직 붙어 있었다.
그 책들을 보는 순간, 함께 서점을 돌아다니던 주말 오후들이 떠올랐다. 각자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고, 카페에서 나란히 앉아 읽던 시간들. 때로는 인상적인 구절을 서로에게 읽어주기도 했다.
"이 문장 좀 들어봐."
그런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남아 있었다.
책장을 버린다는 건 어쩌면, 나의 기억을 한 겹 걷어내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책장이 있을 때는 그 책들이 내 일상의 배경이었다. 거실에 앉아 있으면 자연스럽게 시야에 들어오는 책등들, 그 제목들이 만들어내는 풍경. 그것들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무언중에 증명해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모든 것이 박스 안에 갇혀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었다. 마치 기억이 무의식 속으로 가라앉는 것처럼.
그렇지만 지금 이 거실은 나에게 그렇게 묻는다.
"당신은 이 무게를 어떻게 다시 배치할 것인가요?"
나는 아직 그 박스들을 모두 열지 못했다. 열여섯 개 중에서 겨우 세 개만 확인해본 것이다. 나머지 열세 개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어떤 기억들이, 어떤 시간들이 압축되어 있을까.
무언가를 꺼내려면, 어디에 둘지 먼저 정해야 하니까.
새로운 책장을 사기 전까지는 이 상태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책장을 살 것인가. 이전과 같은 5단짜리를 살 것인가, 아니면 더 작고 실용적인 것을 선택할 것인가. 책을 분류하는 방식도 다시 정해야 한다. 장르별로 나눌 것인가, 크기별로 정리할 것인가, 아니면 읽은 순서대로 배치할 것인가.
새로운 책장을 들이기 전까지, 나는 이 쌓인 박스들을 잠시 구조물처럼 바라보기로 했다.
일종의, 미완의 도서관처럼.
라이언이 박스 사이를 탐험하고 있었다. 고양이에게는 이 박스들이 새로운 놀이터인 것 같았다. 종이 냄새를 맡고, 틈새에 숨고, 높은 곳에 올라가 주위를 둘러보는. 어쩌면 고양이의 관점에서 보면 이 상태가 더 흥미로울지도 모른다.
인간은 완성된 것을 선호하지만, 고양이는 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정돈된 책장보다는 쌓인 박스가, 고정된 구조보다는 임시적인 배치가 더 재미있는 것이다.
그날 밤, 나는 박스들 사이에서 저녁을 먹었다.
간단한 된장국이었지만, 주위를 둘러싼 박스들 때문인지 마치 비밀기지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린 시절 이불로 집을 만들고 그 안에서 과자를 먹던 기분. 임시적이지만 나만의 공간이라는 느낌.
그 안에서 조용히 나의 우주는 다시 한번 구조를 고민하고 있었다.
어떤 책들을 다시 꺼낼 것인가. 어떤 책들은 이대로 박스 속에 남겨둘 것인가. 새로운 공간에는 어떤 새로운 책들을 들일 것인가. 과거의 독서 이력과 미래의 독서 계획 사이에서, 나는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했다.
책장을 버리고 온 날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새로운 방식으로 책과 관계를 맺기 위한 첫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