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청산일기〉Part.8

Part.8 – 첫 불을 켜는 밤


〈우주의 청산일기〉


Part.8 – 첫 불을 켜는 밤 by 망치든건축가




이사한 집에선 인덕션이 사라졌다.


전 주인이 빌트인 인덕션을 뜯어가는 바람에, 부엌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솔직히 당혹스러웠다. 이사 가면서 빌트인을 뜯어간다고? 식기세척기도 있었으면 그것도 가져갔을 양반 같았다.


할 수 없이 내가 야외에서 삼겹살 굽던 소형 블루스타를 부엌으로 가져와 임시로 설치했다. 한때 야외공간에서 중심이었을 법한 그것은 이제 묘하게 조용하고 단단한 기척으로 싱크대 한켠을 지키고 있었다. 철제프레임 표면에는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여기저기 작은 얼룩들, 손때가 묻은 손잡이, 가스 밸브의 미세한 흠집들.


처음엔 당황했다.


제대로 된 가스레인지에 익숙해진 나에게 블루스타는 마치 구시대의 유물처럼 느껴졌다. 뜨겁고 낯선 불꽃, 켜는 방식도 까다롭고, 한순간에 '불편한 집'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손잡이를 돌려도 불이 켜지지 않아서 몇 번이나 다시 시도해야 했다.


"클릭, 클릭, 클릭."


점화 버튼을 누를 때마다 나는 작은 스파크가 튀는 소리에 움찔했다. 가스로 조리하는 것에 익숙해진 몸이 이 원시적인 불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어릴 때 석유풍로를 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불 위에 삶의 첫 냄비를 올렸다.


인스턴트 된장국이었다. 건더기 없는 국물이지만, 그 안에선 묵은장을 살피는 내 손끝과 싱크대에 등을 기댄 자세와, 조용한 부엌의 온도가 서서히 끓어오르고 있었다.


작은 냄비에 물을 붓고, 조그만 봉지를 찢어 가루를 넣었다. 무언가를 잊은 듯, 혹은 이미 알고 있는 듯한 소리로 가루가 물속으로 떨어졌다. 인스턴트 된장국은 간단했지만, 이상하게도 의식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불꽃은 작고 푸르렀다.


가스불의 파란 혀가 냄비 바닥을 핥고 있었다. 전기 인덕션의 붉은 열선과는 완전히 다른 색깔이었다. 더 살아있는 것 같았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가스를 조절하면 즉시 반응했다. 과거의 것인데, 오히려 지금의 나와 닮아 있었다.


나는 그 불꽃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나도 저런 상태인지도 모른다고. 예전 것 같지만 여전히 타오르고 있는, 그런 존재.


물이 끓기 시작했다. 작은 거품들이 냄비 바닥에서 올라오고, 된장 냄새가 부엌에 퍼지기 시작했다. 그 냄새를 맡는 순간 나는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다. 이 낯선 집이 조금씩 내 집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


쓸모를 다했다고 여긴 구조들이 다시 나를 데우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이상한 위로를 느꼈다.


블루스타 가스레인지는 아마 20년도 넘은 것 같았다. 요즘 나오는 매끈한 인덕션이나 최신 소형 가스레인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투박했다. 하지만 그 투박함 속에 뭔가 든든한 것이 있었다. 오래된 것들만이 가질 수 있는 신뢰감 같은 것.


나는 된장국을 젓가락으로 저어주었다.


인스턴트 가루가 완전히 녹으면서 맑은 갈색 국물이 되었다. 건더기는 없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된장국다웠다. 첫 번 한 숟가락을 떠서 맛을 봤다. 짜지도 않고 싱겁지도 않은, 딱 적당한 간이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건 단순히 배고픔을 달래는 음식이 아니라는 것을. 이 집에서 처음으로 불을 켜고, 처음으로 무언가를 끓이고, 처음으로 만들어낸 온기라는 것을.


라이언이 부엌 입구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라이언에게 있어서 나는 덩치만 커다란 멍청한 고양이일 뿐일 것이다. 고양이는 요리하는 사람을 관찰하는 습성이 있다. 무엇인가 떨어질 수도 있고, 맛있는 냄새가 나면 조금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된장국에는 고양이가 먹을 만한 것이 없었다. 그래도 라이언은 계속 앉아서 내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쩌면 고양이도 이 순간의 의미를 아는 건 아닐까. 새로운 집에서의 첫 요리, 첫 불, 첫 온기. 그런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나는 그날, 이사 온 집에서 처음으로 밥을 먹었다.


식탁도 제대로 차리지 않고, 싱크대에 기대선 채로 후루룩 마신 된장국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식사일 테지만, 나에게는 건축보다 먼저 세워야 하는 온도의 구조였다.


집이라는 것은 벽과 지붕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행위들, 끓이고 먹고 쉬고 자는 일상의 반복들이 진짜 집을 만든다. 설계도에는 나와 있지 않은, 하지만 가장 중요한 구조들.


된장국을 다 마시고 나서 나는 가스불을 껐다.


파란 불꽃이 사라지자 부엌은 다시 조용해졌다. 하지만 이제는 이전과 다른 조용함이었다. 뭔가 생명이 깃든, 살아있는 침묵이었다. 냄비에서는 아직도 미세한 김이 올라오고 있었고, 공기 중에는 된장 냄새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냄비를 씻으면서 생각했다. 내일도 이 가스불을 켤 것이고, 모레도 켤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이 낯선 부엌이 내 부엌이 되어갈 것이다. 이 투박한 가스레인지가 내 요리의 파트너가 되어갈 것이다.


블루스타의 손잡이를 닦으며 나는 속으로 말했다. "잘 부탁한다."


그것은 새로운 동반자와의 첫 인사였다. 앞으로 몇 년 동안 함께 수많은 끼니를 만들어갈 파트너에 대한 인사. 비록 낡고 투박하지만, 여전히 뜨겁고 신뢰할 만한 불을 만들어내는 그 가스레인지에 대한 감사.


그날 밤, 나는 부엌에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가스불을 켜봤다.


"클릭, 클릭, 푸르르."


이제는 익숙해진 소리였다. 파란 불꽃이 피어오르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껐다. 내일 아침, 이 불 위에서 커피를 끓일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또 다른 무언가를 만들 것이다.


새로운 집에서의 첫 불이 켜졌다. 그리고 그 불은 앞으로도 계속 타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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