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청산일기〉Part.9

Part.9 – 낡은 가스불과 새벽의 온기

〈우주의 청산일기〉

Part.9 – 낡은 가스불과 새벽의 온기 by 망치든건축가



새벽이었다.


불을 껐는데도, 부엌엔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가스불의 푸른 혀는 이미 사라졌지만 나는 그 불 위에서 피어난 온도를 오래도록 느끼고 있었다. 야외에서 삼겹살을 굽던 소형 블루스타가 만들어낸 열기는 인덕션의 그것과는 질감이 달랐다. 더 직접적이고, 더 살아있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다섯 시였다.


이삿짐 박스 너머로 미세하게 새어드는 빛, 한밤의 정적, 그리고 식탁도 없이 싱크대에 기대앉아 먹은 인스턴트 된장국의 여운. 그것들이 부엌 공간에 겹겹이 쌓여 있었다.


그건 그냥 국이 아니라, 내가 이 집에서 처음으로 만든 '시간'이었다.


된장국을 끓이는 데는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물을 끓이고, 가루를 넣고, 한 번 저어주는 것으로 끝.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이 집의 부엌과 첫 대화를 나눈 것 같았다. 낡은 가스레인지의 성격을 파악하고, 가스 밸브의 적당한 세기를 가늠하고, 냄비와 불꽃 사이의 거리를 조절하는 법을 배웠다.


낡은 블루스타는 말이 없었다.


클릭클릭, 점화음만이 이따금 삶의 시작을 알렸다. 그 소리가 왠지 누군가 아침 인사를 건네는 것 같았다. "좋은 아침." 그런 의미의 클릭클릭. 야외에서 삼겹살을 구울 때는 그저 기능적인 도구였는데, 부엌으로 자리를 옮기고 나니 어딘지 모르게 인격체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같은 가스레인지인데 공간이 바뀌니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된 것 같았다. 야외에서는 그저 고기를 굽는 도구였지만, 부엌에서는 생활의 동반자가 되었다. 어쩌면 장소가 사물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아무도 없는 부엌에서 오래된 온기에 잠시 몸을 기댔다.


싱크대 모서리에 엉덩이를 걸치고, 팔꿈치를 조리대에 올린 채 그대로 서 있었다. 밖에서는 새벽 다섯 시의 정적이 흐르고 있었지만, 부엌 안에는 여전히 미세한 활기가 남아 있었다. 방금 전까지 무언가를 끓이고 있었다는 증거들 - 냄비에서 피어오르는 잔여 김, 공기 중에 떠도는 된장 냄새, 가스레인지 위의 작은 물방울들.


그건 기계의 열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이 만든 작고 단단한 온도였다.


전기 인덕션은 스위치를 끄면 즉시 차가워졌다. 열선이 붉은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하면서 모든 온기를 단숨에 거두어들였다. 하지만 가스불은 달랐다. 불꽃은 사라져도 철제 프레임과 냄비 받침대에는 한동안 열기가 머물렀다. 마치 숨을 고르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 온도 속에서 나는 느릿하게, 혼자의 일상이라는 구조를 짓고 있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공간이었다. 그 안에서 나는 조금씩 다시 건축되고 있었다. 새로운 집에서의 새로운 나, 새로운 리듬, 새로운 습관들. 그것들의 첫 번째 벽돌이 바로 이 새벽의 된장국이었을지도 모른다.


라이언이 거실에서 그루밍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혀로 털을 핥는 작은 소리들이 조용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부엌까지 전해졌다. 고양이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하루를 정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새로운 집에서의 첫날밤을 견뎌낸 자신을 보상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라이언의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이 공간에 적응하고 있다고. 나는 요리를 통해서, 라이언은 그루밍을 통해서. 같은 집에 살지만 우리만의 리듬과 의식을 가지고 있다.


창밖으로는 아직 어둠이 남아 있었다.


남서향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짙은 남색이었다. 동향이었던 이전 집에서는 이 시간이면 이미 새벽빛이 스며들기 시작했을 텐데, 여기서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어둠이 더 오래 머무르는 만큼, 이런 고요한 시간도 더 길어지는 것이니까.


부엌의 형광등을 끄고 복도의 희미한 불빛만 남겨두니, 공간이 완전히 달라 보였다. 낮에는 그저 기능적인 조리 공간이었지만, 새벽에는 뭔가 명상적인 분위기가 되었다. 블루스타의 검은 실루엣이 마치 작은 제단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냄비를 설거지하면서 마지막으로 가스레인지를 바라봤다.


"고마웠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야외에서 고기를 구울 때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인사였다. 하지만 지금은 자연스럽게 나온 말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새로운 관계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도구와 사용자가 아니라, 공간을 함께 만들어가는 동반자로서의 관계.


그날 새벽, 나는 아무도 없는 부엌에서 오래된 온기에 조용히 감사했다.


그것은 단순한 열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온도였다. 새로운 집에서의 첫 요리, 첫 식사, 첫 정리가 만들어낸 작은 성취감.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서도 충분히 따뜻할 수 있다는 확신.


이 온기가 식기 전에, 나는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내일 아침이면 다시 이 부엌에서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커피를 끓이고, 토스트를 굽고, 라이언의 밥을 준비하면서. 그렇게 조금씩, 이 낯선 공간이 내 일상의 중심이 되어갈 것이다.


새벽 다섯 시 삼십 분, 나는 부엌의 불을 모두 껐다. 하지만 온기는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을 것이다. 내일 아침까지, 아니면 그보다 더 오래.


혼자의 일상이라는 구조가 한 층씩 쌓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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